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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제6번 교향곡(전원)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하고 흥겨운 느낌
2악장 개울가의 정경
3악장 시골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천둥과 폭풍우
5악장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감사와 상쾌한 기분
[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무대를 찾아]
* 일리에 콩브레 마을
일리에 콩브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일리에는 실재하는 마을의 이름이었고, 콩브레는 허구의 마을 이름입니다. 콩브레는 <되찾은 시간>과 함께 생겨났습니다. 일리에가 콩브레가 되면서 일리에 콩브레라는 새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일리에 콩브레는 현실과 소설이 만나는 곳이고 잃어 버렸던 시간이 함께 사는 주소입니다.
일리에 콩브레에 가면 사람들이 소설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사는 것 같습니다. 오가는 주민들이 모조리 작중 인물 같아 보입니다. 길거리의 건물 하나하나도 무슨 무대장치처럼 착각됩니다.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해 세워 놓은 세트 같기만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 마을이 주역입니다.
* 콩브레 마을, 생 자크 교회의 종탑이 보입니다
일리에 콩브레는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113km, 성당이 유명한 샤르트르에서 25km, 중세 때의 집들이 많이 남은 인구 3천 5백명의 이 조용한 마을은 밀밭 사이로 르와르 천(川)이 가느다랗게 휘어져 돌아가는 들판 가운데에 있습니다.
"멀리 철길에서 바라보면 교회 하나로 요약되는 마을, 양털 같은 회색 집들 위로 양떼를 모는 양치기 처녀 같은 교회의 콩브레"로 프루스트가 묘사했듯 마을의 중심 광장에 생 자크 교회의 종탑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이것이 소설에서 나오는 <생 탈레르 교회>입니다.
이 광장 가의 11번지가 프루스트의 아버지인 드리앙 프루스트의 생가(生家). 파리 변두리의 오퇴이유에서 태어난 프루스트는 어릴 때 방학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 이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왔고 왕고모 집에서 지낸 그때의 추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편(全篇)을 이룹니다.
* 프루스트의 왕고모 집(기념관)
소설 속의 나(어린 프루스트)가 다니러 왔던 <콩브레 마을(실제 당시의 이름은 일리에)의 <레오니 고모(실제로는 왕고모 아미오 부인)>집은 교회 광장에서 1백m 남짓, 명의(名醫)이던 아버지를 기념하여 길 이름을 붙인 독퇴르 프루스트 가(街) 4번지입니다.
목조 2층 건물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 그려진 가구와 장식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소설의 삽화를 보는 듯합니다. 집 뒤에는 뜰이 있고 뒷문 앞에 키큰 마로니에가 한 그루, 그리고 잔디밭에 장미나무가 하나, 이 모두 소설 속에 살아 있는 나무들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무계단은 어린 프루스트에게 미움의 계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밤마다 "잘자라"라는 말과 함께 입맞춤을 해주기 전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던 소년은 어머니가 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어머니가 밤 인사를 하고 곧 내려가 버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일리에 콩브레(illiers combray) 가는 길
프루스트가 침실로 쓰던 2층 정원쪽 갓방에는 침대 머리에 소설에 등장하는 등불과 조르지 상드의 작품 <프랑스와 르 샹피>가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가 올라와 잠 못 자는 프루스트에게 읽어 주던 책입니다.
복도 건너 한길 쪽이 레오니 고모의 방. 탁자 위에 보리수 찻잔과 나란히 과자가 한 봉지. 마들렌 과자입니다. 쿠키의 일종인 이 마들렌 과자야말로 프루스트의 의식의 세계를 터뜨린 뇌관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레오니 고모의 방에 아침 인사를 가면 홍차나 보리수차에 담가주던 마들렌.
* 마들렌 과자
이 조그만 과자로부터 방대한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전개됩니다
이 과자의 향기와 맛의 기억이 <나>에게 콩브레 시절의 추억의 문을 열어줍니다. 저녁 식사 전에 심부름을 가던 교회 광장, 물건을 사러 다니던 한길, 스완네 집 정원의 꽃, 비본천(川)의 수련(水蓮)...이런 모든 것들이 마들렌 과자가 담긴 한 잔의 차에서 튀어나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모퉁이에 과자점이 하나 있습니다. 진열장에 <레오니 고모가 마들렌 과자를 사 가던 집>이라고 크게 써서 내걸었습니다. 프루스트가 먹던 마들렌을 이 집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의 맛을 통해 콩브레의 온 거리를 되생각해 내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독자들은 마들렌 한 조각으로 프루스트의 작품 세계를 되씹게 됩니다.
프루스트는 14세 때이던 1885년을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듬해 레오니 고모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20여 년 후 일리에 마을은 콩브레 마을로 재생되었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은 고모가 죽자 소설 속의 하녀 프랑스와즈(실명은 에르네스틴 갈루)가 1912년 고모부가 죽을 때까지 지키다가 그 후로 두 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1946년 레오니 고모의 손녀 제르멘이 도로 사들여 프루스트의 사설(私設) 기념관이 되었고, 1971년 정식 기념관으로 개관했습니다.
* 기념관 내부,레오니 왕고모의 침대
손녀는 1977년 죽으면서 이 집을 프루스트 애호가 협회에 기증했습니다.
일리에 콩브레에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인물이나 장소의 이름도 모두 작중(作中)의 이름으로 불리고 실명(實名)으로는 오히려 통하지 않습니다. 프루스트의 고모 아미오 부인은 <레오니 고모>이지 본명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오니 고모의 집 모퉁이는 네거리입니다. 왼쪽으로 꼬부라지면서 소설 속의 <스완네 집 쪽>이고 똑바로가 <게르망트 쪽>이 됩니다. <스완네 집 쪽>으로 빠져나가면 탕송빌 마을에 이르고 <게르망트 쪽>을 찾아가면 르와르 천(川)의 수원(水源)인 생테망에 닿습니다.
* 기념관 내부,어린 프루스트의 침대
<스완네 집 쪽>으로 가다가 르와르 천(川)-소설 속의 비본느 천-을 건너 마을을 막 빠져나가는 곳에 <프레 카틀랑>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공원>으로도 불리는 이 공원은 소설에서 스완네의 정원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프루스트의 고모네 개인 소유였습니다.
소년 프루스트는 이 정원의 나무 그늘을 자주 찾아와 책을 읽었고 사색을 했습니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묻었던 곳입니다. 한쪽 모퉁이에는 돌 의자가 하나 남아 <프루스트의 자리>로 전해집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정원
2헥타르나 되는 넓은 공원은 키 큰 산사나무들이 줄을 서서 긴 울타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이 산사나무 울타리를 잊지 못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신선할 때는 이 나무의 향기가 좋다고 합니다. 5월에는 분홍색과 하얀색의 꽃이 핍니다.
* 정원 내부
여기서 3km쯤 더 나가면 외딴 곳에 나타나는 것이 탕송빌 성관(城館). <스완네 집>의 모델이었다는 커다란 저택입니다. 넓은 정원의 꽃밭이 아름답습니다. 한때는 이집트 왕이 살았다는 전설의 집인데 지금은 바루라는 건축가가 주인으로 있습니다.
일리에 콩브레 마을과 그 근교는 이렇게 도처에 프루스트의 추억이 깔리고 그래서 걸음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이 밟힙니다. 프랑스의 작가 프랑스와 모리악은 "태초에 2천의 주민을 가진 조그만 마을 일리에가 있었다. 그것이 마침내 수많은 독자의 정신적 고향인 콩브레가 되었다"고 썼습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끝맺고 죽은 곳은 파리 시내 아믈랭 가(街) 44번지. 개선문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입니다. 프루스트 때는 방을 세주는 집이었는데 40여 년 전부터 호텔이 되어 현재는 <위니옹 오텔 이트왈>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 1907~1919년까지 프루스트가 살았던 파리의 집
프루스트는 1919년 10월부터 3년 동안의 마지막 인생을 이 집의 컴컴한 방에서 천식병에 시달리면서 대작과 씨름하면서 죽기 며칠 전에 <끝>자를 썼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직후인 1919년 11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편인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에서가 콩쿠르 상을 수상함으로써 숨어 있던 그의 이름이 일약 세상에 나오는 집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와 모리악은 이 프루스트의 방을 방문한 인상을 <프루스트네 집 쪽으로>라는 글에 적으면서 "아믈랭 가(街)의 셋방은 음침하고 조그마했다. 벽난로는 새까맣고 침대에는 모포대신 외투가 걸쳐져 있었다. 방 안에는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무일물(無一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방이 지금은 호텔의 4층 34호실. 이 프루스트의 방은 눈여겨 보는 투숙객도 드물지만 일부러 찾아가 문을 열어 보았자 그 후로 두 번이나 고쳐져 감회를 달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탕 하는 소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마지막 낱말인 <탕(Temps,시간)>의 어음(語音)이 먼 과거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려 방 안에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 파리 <페르 라 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프루스트의 무덤
[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년)의 유일한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초시간적(超時間的) 인상주의의 수법으로 의식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소설 기법에 혁명을 가져온 금세기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의 하나입니다.
7편으로 나누어져 총 4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소설은 제1편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제7편 <되찾은 시간>까지 각 편마다 독립된 제목을 가지면서 전체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1909년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후 죽음 직전까지 손질을 계속하여 끝을 맺었습니다. 제1편이 1913년에 나온 이래 작가가 죽은 후인 1927년에 전편의 간행을 보게 되었습니다.
[ 교향곡 제6번 F장조(전원 교향곡) 이야기 ]
* 산책하는 베토벤
로맨틱한 설레임과 유려한 정서! 아름답고 우아한 표현! 봄바람 같은 포근함!
베토벤은 자연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책을 즐겼고 들판과 숲, 냇가와 새들은 그의 친구였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려워질수록 청각 장애로 실의에 빠진 그를 어루만져 주는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산책길을 걸으며 "신이여, 나는 숲 속에서 행복하다.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하고 감사했습니다. 그의 교향곡 제6번(전원)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자연에 대한 감동과 사랑을 담은 작품입니다.
베토벤은 30세이던 1800년경부터 매년 여름이면 비엔나의 북서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교외인 하일리겐슈타트, 뫼들링, 바덴 등지에서 지냈습니다. 청각 장애가 온 이후로는 더욱 자연에 파묻힌 생활을 즐겼습니다.
* 산책길
하일리겐슈타트는 그가 32세 때이던 1802년 가을, 귓병이 점점 심해지면서 절망 끝에 베토벤이 유서를 쓴 곳이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아침저녁으로 그가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그때 그가 거닐던 길은 지금도 <베토벤의 산책길>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전원>은 <운명>, <합창> 등과 함께 그의 교향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38세 때인 1806년 여름, 바로 이곳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완성한 중기 교향곡 중 하나입니다.
초연은 그해 12월 22일 교향곡 <운명>과 함께 비엔나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며, <운명>처럼 로브코비츠 공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되었습니다.
* 베토벤이 유서를 썼던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집
이 곡은 <운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으며,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운명>이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는 남성적인 곡이라면 <전원>은 말 자체로 자연을 표현하며 여성적인 곡이기 때문에 강한 대조를 이루죠. 이러한 양극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베토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그린칭으로 빠지는 골짜기 부근에서 제2악장 <냇가의 정경>의 착상을 얻었습니다. 그는 1823년 제자인 신들러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을 때 "당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메추라기, 방울새, 나이팅게일, 뻐꾸기 등이 내 작곡을 도와주었네."라고 그리움에 젖어 회상했다고 합니다.
* 산책길 숲속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같은 현악기의 음이 반주로 흐르다가 이윽고 플루트가 나이팅게일, 오보에가 메추라기, 클라리넷이 뻐꾸기 소리를 냅니다. 베토벤은 이미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자기가 듣지 못하는 새소리를 자신의 음악을 통해 듣고 있었던 것이죠.
이 곡은 베토벤 자신에 의해서 <전원>이라고 이름이 붙여졌고, 각 악장에도 그 내용을 나타내는 표제가 적혀 있습니다.
이 곡은 모두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3악장부터 제5악장까지는 쉬지않고 연주됩니다. 고전파 교향곡에서 악장이 5개라는 것은 드문 일이며, 3개의 악장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또한 악기 편성은 악장마다 자유로이 증감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베토벤이 고전파와 낭만파의 양쪽을 아우르는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레이징(음악의 흐름을 유기적인 의미와 내용을 지닌 자연스러운 악구로 구분하는 일)이 명확한 이 곡은 모든 악장이 아름답지만, 특히 제2악장을 듣노라면 샘물같이 유연하고 맑은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베토벤이 구상한 이상 세계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눈먼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그의 내면에서 빛나는 그림을 영적인 노래로 나타내듯이, 귀가 먼 베토벤이 그려 낸 묘사해 낸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눈물이 저절로 샘솟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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