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 ost - 손디아의 ‘어른’을 듣고>
이 곡은 제가 힘들었던 순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에게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노래를 들으며 공감하고 위로 받았습니다. 이 감상문을 쓰며 이 곡을 다시 듣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스무 살이 되어 정말 ‘어른’이 되었는 가?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아졌나? 이렇게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또한 저에게 한 가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바로 ‘저에게 음악은 삶의 동반자구나!’ 라는 깨달음 입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힘을 얻고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이야기를 쓰니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이 감상문을 읽는 분들도 잠시 한 템포 멈추어 잠시 ‘나’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곡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른을 주제로 하여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공감과 힐링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무 해를 살아가면 누구나 어른이 됩니다. 그래서 이 곡이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가사를 곱씹으면 이 곡이 더 슬프게 다가옵니다. 삶과 미래가 불안하고 두렵고 어른이 되어 감당할 것은 늘어갑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이미 상처로 가득차 더이상의 공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리치지도 못하고 지쳐 쓰러져있는 사람의 속마음을 노래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위의 가사는 이 곡의 시작부분입니다. 다시 읽어도 마음이 찡해집니다. 특히 아플만큼 아팠는데 아직 더 남은 것 같다는 부분이 공감됩니다. 저는 중학교, 고증학교를 다니며 아마 대학이라는 목표 한 가지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땐 대학에 가면 낭만 가득한 행복한 미래가 주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만 보며 포기한 것도 많았습니다. 대학에 온 지금 저는 예전과 똑같이 아프고 어쩌면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구나.” 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그래도 가사 속 내용처럼 제 작은 세상이 끝내 웃길 바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힘든 순간도 있겠지만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도 분명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또 한 걸음 나에게로 걸어간 것 같습니다.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 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이 가사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부분입니다. ‘웃는 사람들 틈의 이방인’ 이라는 단어만 봐도 외롭다는 감정이 밀려들어옵니다. 웃는 사람과 배제된 이방인인 ‘나’ 자연스레 비교가 됩니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밀려들어 올때 비교만큼 나를 갈아먹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교로 더 우울해지고 가사처럼 혼자만 아프고 모든 걸 잃은 기분이 들 것 입니다.
저는 이 곡을 감상하며 누구에게나 나무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누구나 나를 이해해주고 아껴주며 듬직하게 그 자리에 있어줄 누군가가 있는 삶을 바랄 것 같습니다. 주변에 친구, 가족 소중한 사람이 있지만 저는 아직도 삶은 혼자 나아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도움을 받아 기대어 가는 순간도 어쩌면 꼭 필요한 것 일까요? 정답도 모르겠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래도 저에겐 기댈 수 있는 음악이 있어서 조금은 더 잘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저에게 힘든 순간 위로가 되어준 음악처럼 기댈 수 있는 것들이 여러 사람들 곁에 가득 존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