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정리해서 글 한 편으로 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다른 원고들과 일정들에 치어서 짬이 안 나서... 공유하기 위해 간단히 메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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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불가능'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었을 무렵엔 나는 사실 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말도 어쨌건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교육을 하기가 불가능하다'라는 말처럼 쓰이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여하튼 '교실 붕괴'라든지 '교권 추락' 같은 말보다는 좀 더 중립적이고, 학생들의 입장도 담을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에 좀 더 좋게 평가했던 듯하다. 그러나 근 몇 년 교사단체 등에서 쓰는 걸 보면 그 말에 담긴 문제의식이나 대안적 관점 같은 건 사라지고 그냥 '교실/교단 붕괴'랑 별 차이 없게 쓰이는 것 같고, '교육이 가능한 학교 만들기' 같은 기괴한 말도 그렇고 그냥 교권 담론의 하위 분류처럼 소비되는 것 같다.
여하간 올해 '교권 추락' 관련 사건이나 담론들을 보면서 이것 자체가 교육 불가능 담론이 경고하고 예언한 바로 그런 파국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교육 불가능론이 견지한 총체적인 문제의식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정부는 교권 회복 원년 어쩌구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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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77호에 실렸던 글 모음 https://communebut.com/Article/?&bmode=view&idx=16451790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이라는 제목은 [교사 / 노동 / 교육 불가능]이라는 3개 키워드로 나눠 읽을 수도 있고, [교사, 노동, 교육(의) / 불가능]이라고 3가지가 모두 불가능하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의도한 제목인데, 교육 불가능론 관련 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기대했으나 일단은 이정도이고, 교사들의 경험담과 청년 노동자 관련 비평과 연결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글이라고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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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교육 불가능론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좋은 교육은 좋은 사회에서만 가능하다"이다. 그리고 이 문장을 부정형으로 바꾸면 "나쁜 사회에서는 교육이 불가능하다"일 것이다.('나쁜 교육이 가능하다'가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서 '사회가 나빠지는 것 이상으로 망가지면 교육에선 학생-교사가 죽는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교육이고 보편교육이라는 것이다. 학생과 그 친권자 집단은 특정 연령대(사실 친권자/보호자는 연령대도 훨씬 다양하다), 모든 계급의 온갖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회의 해체 및 악화는 학교와 관계 맺는 학생-친권자들에게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회의 사법화, '진상-갑질'의 증가, 원자화가 학교에도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교사는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나 상처, 문제점에 노출되는 직업이다. 이건 대중을 대면하는 모든 서비스직의 공통점이지만, 학교 교사만의 특수성은 학생들과 하루 6~12시간을 부대끼며 생활한다는 점이다. 그러니 당연히 갈등의 소지가 더 크다.
나는 지금 불거진 문제를 이처럼 사회의 악화와 교사 노동의 특수성이 만나는 문제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교권의 추락 같은 게 아니라, 나빠진 사회에 대한 경각심과 그 와중에 학교 현장의 종사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이다.
덧붙여서, '나쁜 사회'가 만들어진 원인이 교사 개개인에게 있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학교 교육은 한국 사회가 이토록 나빠지도록 하는 데 수십 년 동안 적잖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런 점에서도 학교는 사회의 일부이고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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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으로 들어가서도 유의미한, 논의돼야 할 문제들인데 충분히 주목받지 않는 게 많다고 느낀다. 가령 오늘의 교육의 글 중 정은경의 글에서 표현된 '독박 노동'의 현실은 학교에서의 역할 분담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나는 이번에 듣게 된, 특히 초등에서 교사가 입직하자마자 바로 학급을 맡는 경우도 흔하단 이야기가 좀 놀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교조 운동을 오래 해 온 다른 활동가에게서는 '과거에는 그래도 전교조에서 교과 모임도 하고 동학년 교사 모임도 하고 그런 노력이 많았고 힘들어하는 교사들을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챙기고 했는데 전교조 조직이 약화되면서 분회가 없는 학교도 더 많아지고 문제의 정도가 더 심화된 것 같다'라는 인상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일지는 회의적이긴 하지만,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화와 협력이란 측면에선 대안을 이야기할 때 참고할 만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학대 제도 관련해서 너무 급한 입법이 아니었느냐 하는 이야기도 많다. (아동학대 관련해서 체벌금지라거나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한참 됐으니 이게 '급하다'라고만 말하는 건 좀 문제가 있긴 한데-) 아동학대 관련 기준을 마련하거나 학교의 처리 절차를 만드는 문제에서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리고 1차적 책임은 당연히 교사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정부에게 있을 텐데, 그 이야기를 하려면 2013년 이후로 전교조는 법외노조 상태였고 정부와 협의가 불가능한 여건이었다는 지적을 해야 한다.
다만 1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과 별개로, 교총을 포함해서 교사단체나 교사집단 전체가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전문가적 식견과 관점을 가지고 적절한 의견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는 좀 의문이고 이건 전문가를 자임한다면 더욱 교사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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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불가능'과 '독박 교실', 두 가지가 거시적-미시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는 데서 유용한 열쇳말임에도 주류 정책 논의나 언론에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 누가 좀 이야기해 주면 좋겠는. 더 세부적인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할라나.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