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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월척
월척이란 글자 그대로 한자가 넘는 모든 사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월척이란 용어가 유독 낚시꾼의 전용어처럼 된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월척은 다른 물고기에 붙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왔다. 꼭 붕어에만 월척이란 명칭을 대명사처럼 사용한다.
허긴 이해가 될 듯 말듯 고개가 꺼덕여 지는 짐작은 있다.
잉어는 일 년만 커도 한자가 넘게 자라지만 붕어가 자를 넘겨 크려면 최소한 10년은 걸린다. 월척 중 대월척인 36cm이상 자라려면 17년 이상 긴긴 세월을 살아남아야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사사오입하면 강산이 두 번 바뀌어야 36cm가 된다는 뜻이다.
그 귀하디귀한 36cm가 되기 위해 붕어는 포식자들의 눈을 피해야하고 도치씨같은 낚시꾼도 피해야하며 외래어종인 베스도 피해야한다.
첩첩물속을 헤쳐 겨우 목숨을 부지한 턱걸이월척이라도 이감독에겐 젊은 시절 팔아먹어버린 결혼예물보다 더 귀한 것일텐데, 이감독에게 37.5cm급을 걸게 해준 도치씨는 도끼3자루 몽땅 준 산신령보다 고마운 사람이다. 아니 축복과 은혜의 전도사다. 왜냐면 이감독은 18년 낚시를 죽자 살자 했지만 월척 운은 없었다. 같이 간 동료회원이 바로 옆에서 월척을 두 마리나 끄집어내는데도 그냥 멀거니 구경만 하거나 운 좋으면 뜰채 대준 것이 전부인 이감독이다.
이렇게 이감독은 18년이란 장구한 조행세월을 보내며 월척에 대한 부러움으로 살았다. 그는 월척 운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가짜 어탁을 걸어 두고 대리만족으로 오늘까지 살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두드리는 곳에서 열리지 않던 행운이 엉뚱한 곳에서 오는 수가 있다. 요행은 아니다.
이감독에게도 그런 행운이 전혀 예견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이감독에게 월척행운을 가져 온 사람은 일면식도 없던 도치씨다. 도치씨는 이감독의 평생 월척 꿈을 단 한번, 단 하룻밤 만에 쌍으로 이루게 해주었다. 그래서 도치씨는 이감독의 산신령이 아닐 수 없었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아야 한다. 월척이 동네 애 이름이 아니니까.
13년 전, 곡우 엿새 지난 4월26일 토요일.
모든 정통낚시는 곡우가 지나야 시작되고 처서가 지나면 끝난다. 무슨 말이냐면 자연의 모든 이치는 때가 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먹고 싸는 것도 때가 맞아야 건강하고, 밤새 깨지기만 하던 고스톱도 때가 맞아야 흔들고 스리고, 피박에 배판 때릴 수 있다.
낚시는 더 때가 중요하다.
민물이든 바다낚시든 물때를 무시하면 꽝이다. 자연의 이치와 조화에 맞춰야 풍성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인간이야 시도 때도 없이 처먹지만 물고기는 때 맞춰 섭이활동을 한다.
해 뜨면 먹고 해지면 주무시는 놈.
바람 자면 먹고, 바람 불면 단식하는 녀석도 있으며.
비 오면 돌아다니고 달뜨면 숨는 어른도 있다.
엄동설한 한파 닥치면 웅크리기 바쁜 나약한 체질.
또는 산사태나 해일이 지나가고 나면 뒤집어진 환경에 발 빠르게 경제활동을 하는 약삭빠른 어군도 있다.
이 시기를 적절한 타이밍으로 겨냥하는 낚시인이야 말로 진정한‘꾼’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보통사람들은 이런 자연조건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이런 조건을 맞추다 보면 쫄쫄 굶어야 하니까.
또 각설하고.
곡우 지나 보리가 고개를 숙이면 낚시가 시작되어 가을 나락이 고개를 숙이면 정통낚시는 끝나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사시사철 낚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한겨울 밤낚시도 있고 얼음낚시도 있으며 지나가는 고기 훌쳐서 잡는 훌치기낚시도 있다.
허지만 이런 낚시는 진정한 낚시꾼의 정통수렵은 아니다.
그러니까 2002년인가? 2003년인가? 하여튼, 한 창 보리가 익어 벨 날만 기다리던 봄이었다.
도치씨가 이감독에게 큰소리 팡팡 친 날이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도치씨가 어묵공장을 하면서 수출용제품을 촬영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이감독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질척질척 비 오는 봄날이었다.
촬영을 하기 전 제품 설명을 하다 우연히 이감독의 책상 뒤에 걸려 있는 월척어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낚시 좋아하시봅니다?”
“하하하. 아! 저 년 요? 그때 저년 걸고 한 며칠 앓아누웠습니다. 미친년처럼 어떻게 날뛰는지 끌어내다 오른팔에 엘보elbow가 왔거든요.”
도치씨는 이감독의 설명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 놀라는 도치씨를 보고 이감독이 말했다.
“강사장님도 낚시한번 해보세요. 저런 년한테 걸리면 별수 없습니다. 낚시꾼의 운명이죠. 하하하하.”
도치씨가 난감해서 말했다.
“저건! 저건!”
도치씨가 벽에 걸린 어탁한지에먹으로붕어를눌러뜬그림을 보고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자 이감독이 엉뚱한 말을 했다. 이감독은 어탁의 호칭에‘년’자를 붙이자 도치씨가 어색해서 그러는 줄 알았던 것이다.
“아? 저년이 어떻게 여잔 줄 알았냐구요? 간단하죠. 입질 올 때는 파악이 안 되지만 일단 걸고 나서 끄집어낼 때 당장 알 수 있습니다. 수놈은 그냥 찌익 끌려 나오는데 암놈은 앙탈이 심하거든요. 앙탈보다 발악에 가깝죠. 이리 끌고 가고 저리 뒹굴고 완전 별 지랄 다 떱니다. 그런 거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려고 발버둥치는 건 다 일반인가 봅니다. 그렇게 안 생각하십니까?”
도치씨는 발등이 찍힐 만큼 깊은 한숨을 팍 쉬었다.
천천히 이감독을 쳐다보고 경멸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도치씨가 낚시꾼허풍은 좋아하지만, 이감독 같은 사기허풍은 아주 경멸하기 때문이다.
이감독과 의사가 통하지 않고 답답해진 도치씨가 어탁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감독님 이건요. 붕어가 아니고 잉어입니다.”
“에이, 무슨 그런 실례를 대놓고 하십니까? 붕어 맞아요. 토종붕어요. 감정증인도 세웠는데요? 그 밑에 증인 사인 안보여요?”
“이 증인이 누군지 모르지만요. 이건요. 고작 일년생 잉어입니다. 잉어라도 제일 하급잉어인 양식잉어네요. 자연산 잉어는 이렇게 몸체가 가늘고 양식잉어는 요기가 요로케 동그랗거든요.”
도치씨는 어탁위의 그림 윤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리고 이놈은요. 입의 수염도 교묘하게 잘랐네요. 잉어는 주둥이가 두툼하지만 붕어는 갸름하고 꼬리가 화살촉처럼 생겨야 하구요. 그래서 이건 야바위어탁입니다.”
도치씨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이감독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럼 내가 사기낚시 했단 말입니까?”
“누가 사기낚시 했다고 그럽니까? 이 어탁 자체가 야바위라는 거죠. 야바위라는 뜻이 뭡니까? 눈 뜬 사람 앞에서 속이는 거 아닙니까? 사기하고 틀리죠.”
이감독. 당장 얼굴이 매 꼲은 메주덩어리처럼 되어 도치씨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래 뵈도 한평생 낚시만 한 사람이오. 낚시꾼 중에서 최고참이란 말이오. 알겠소?”
최고참이란 말에 도치씨도 벨이 뒤틀렸다.
“조령이 몇 년이나 됐는데 최고참이라 그러십니까?”
이감독은 자신의 조행캐리어를 묻는 도치씨가 불쾌했지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18을 강조해서 말했다.
“씹 빨18 년요. 씹팔년이면 산전수전 다 겪고 알거 다 아는 사람이오.”
기껏 숫자 18을 말하는데 이감독 얼굴이 골아빠진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상대가 나이이력을 묻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잘못 들으면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 이감독 나이에 18년 낚시했다면 상당한 세월인데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도치씨가 조령을 묻자 속이 발칵 뒤집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찾아 온 손님이라 꾹꾹 눌러 참고 자신의 캐리어에 대해 확실하게 학습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18이란 숫자를 강조했다.
허지만 듣는 도치씨의 입장은 달랐다.
“그런데 내가 물은 건 조령낚시햇수인데 왜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내가 언제 욕했소?”
“금방 씨팔년이라 그랬잖아요?”
“하! 별 웃기는 인간 다 상종하네? 씹팔년을 씹팔년이라 그러지 팔 씹년이라 그러요? 그러는 당신은 뭐라 그러요?”
“열여덟해라 그러든지 텐 에이, 아니면 열하고 여덟이라 그래야죠. 좋은 말 많잖아요?”
“진짜 열 받네?”
“누가 열 받는데요? 틀린 걸 바로잡아 주려는데 뭐가 열 받아요? 그만합시다. 감독님하고 시비할 마음 없어요. 촬영이나 해주세요.”
이감독은 세팅하려던 어묵을 한쪽으로 밀쳐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냅다 소리 질렀다.
“남의 월척 가지고 시비하는 인간하고 촬영은 못해! 다른데 가보쇼. 오늘 재수 옴 더럽게 붙었어!”
결국 촬영은 중단됐다.
그러나 인간매사 상전벽해 전화위복이란 게 있다.
화가 나서 스튜디오를 뛰쳐나가려던 이감독은 도치씨의 말 한마디에 당장 그 자리에 꿇어앉고 말았다.
오늘처럼.
첫댓글 도치씨가 사람을 압도하는 마력이 있나봅니다.
낚시에 대해서는 박사학위를 주어도 마땅하겠슴니다.
즉말하자면 작가님말도 되겠슴니다.
오늘 아침 날씨가 춥슴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주말 열어가세요..
ㅎ
전 젠틀맨님이 도치씨하고 많이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는데...원 별 실례를 다하세요?...ㅋㅋㅋ
도치씨 정도만되면 전 벌써 죽은 목수움입니다.
오늘밤도 편안히 보내세요
우아영의 용서는 어찌되었을까
이야기는 16년전으로 돌아갔군요..
오래된 친구임을 알수있군요..
차츰 차츰 모든 게 밝혀질겁니다
도치씨도 인간인데 별 수 있겠습니까?
멋진밤되세요
도치씨 낚시광이군요.
붕어와 잉어의 식별볍 잘배워 갑니다.
오늘밤 밤낚시 한번 가보시지요....ㅎ
멋진 달이 참 보기 좋은밤입니다
18이란 숯자가 맘에 드는가 보죠.
그래서 우리나라말이 우습나봅니다.
제미있게 잘보앗슴니다.
우리가 흔히 18번이라잖아요?
18 싫어하는 사람 없을걸요?
ㅎ
고운밤되세요 지금 들으니 음악이 죽이네요
아 찍고 한번 돌고 싶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