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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안심하긴 일렀지만 한고비를 넘긴 것은 다행이었다.
"다친 사람 없소?"
일 각 여를 달린 후 천천히 말을 몰며 고개를 돌린 사군명이 재빨리 동료들을
훑어보았다.
모두들 멀쩡한 표정인걸 보면 더러 피를 묻힌 사람이 있긴 해도 자신의 경우
처럼 적의 피인 것으로 보였다.
하나 마차 뒤에서 들려오는 천두염의 음성에는 고통이 배어있었다.
"제길랄…… 등판이 얼얼합니다!"
사군명이 뒤로 달려가자 행렬이 멈추었다.
"맞는 순간 묵직한 게 유성추(流星錘)에 당한 모양입니다."
정신없이 달리는 중에도 마차 뒤로 따라붙는 자들을 경계하던 천두염이 등뒤
에서 날아든 유성 추에 당한 것이다.
말등에 엎드린 천두염에게 금창약을 뿌린 고승후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모여든
일행을 안심시켰다.
"달리는 속도가 빨랐던 게 다행이었소."
맞상대하는 상황에서 격중됐다면 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이었을 테지만 고승후
의 생각대로 질풍처럼 달리는 속도가 충격을 완화시킨 것이다.
"이제 됐으니 어서 출발합시다!"
천두염이 이를 악물고 사군명을 재촉했다.
고통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더 이상 지체 할 수는 없었다.
사군명이 안타까운 시선을 거두고 일행에게 출발을 명하려 할 때, 마차 앞에
서 구태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적이 몰려온다!"
어자석을 지키기고 있는 그의 눈에 까맣게 몰려오는 흑마방 무리들이 잡힌 것
이다.
일행은 황급히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사군명이 선두로 나섰을 때 과연 멀리서 관도를 메우고 달려오는 적들의 모습
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 전 싸움에서도 죽은 자는 잘해야 오륙 명.
시간을 끌면 처음 그들을 막았던 자들이 쫓아와 앞뒤로 협공을 당할 판이었다
.
다시금 단천검을 움켜쥐고 전속돌파를 명하려던 사군명은 육십 여장 앞에서
갑자기 적들이 멈추자 덩달아 주춤했다.
"이런, 젠장…… 목책(木柵)이오!"
마차 위에서 전방을 살핀 팽상문이 낭패스러운 일성을 토했다.
과연 앞에서 달려오던 자들이 갈라지자 끝을 뾰족하게 깍은 나무를 엇갈리게
연결해 관도에 늘어놓는 모습을 일행 모두가 볼 수 있었다.
폭이 칠팔 장에 달하는 관도를 메운 목책의 높이는 대략 오륙 척.
표사들의 말 다루는 솜씨면 통과할 만한 높이였지만 마차가 문제였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고승후라고 별다른 답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목책을 부수거나 마차를 포기하거나…….
다른 선택은 없었다.
목책을 부수려면 적지 않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고, 마차를 포기하자니 설운경
의 안전이 걱정이었다.
결단을 도운 것은 설운경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차린 그녀가 마차에서 내린 것이다.
"해연이 제일 가벼우니 해연의 말을 타겠어요."
이제까지 마차 안에 꼼짝 않고 있는 것이 표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면 지금은 마차를 포기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방법이었다.
"군주님……!"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귀찮다고 날 떨어뜨리지나 말려무나."
울상이 된 해연에게 농담을 건네고 치렁거리는 치맛자락을 단단히 올려 묶는
설운경의 모습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되었다.
"좋습니다. 빨리 준비합시다!"
말없는 눈길로 설운경에게 깊은 감사와 미안함을 전한 사군명이 신속하게 지
시를 내렸다.
"팽선배는 마차 안에 놈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주시고 구선배는 마차에서
말을 풀어 주십시오. 두 필은 마차를 끌고 두 필은 팽선배와 구선배가 탑니다
."
일단 결정이 됐으면 신속한 행동이 필수였다.
설운경이 해연의 말에 올라타는 사이 구태열은 재빨리 두 필의 대완구를 마차
에서 풀어 안장을 얹었다.
"됐습니다. 마차는 지금 가고 십장의 거리를 두고 쫓아가면 됩니다."
마차에서 나오는 팽상문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머물렀다.
아마도 흑마방의 무리들은 마차와 두 필의 대완구를 포기하게 만든 대가를 톡
톡히 치르게 될 모양이었다.
구태열은 지체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어서들 가거라!"
두두두두……!
마차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자 사군명이 설운경과 해연 앞에 바짝
붙어 섰고 다른 일행도 신속히 그 뒤를 따랐다.
설운경과 해연을 중심으로 밀착된 원진.
행여 눈먼 칼이 설운경을 다치게 하는 것도 막겠다는 의지였다.
"갑시다!"
사군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행은 한 무리가 되어 내달렸다.
여유를 부린 것이 아니니 표사 놈들의 움직임이 빠른 탓이었다.
첫 번째 매복지는커녕 두 번째 매복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 들려오는 폭
음을 들은 가갑귀와 추형은 두 번째 매복을 단단히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특하게도 두 번째 매복조를 이끄는 총타직속 제 삼향주(第三香主) 원찬(元
璨)이 수하들을 놀리면 뭐 하냐며 만든 목책은 능히 한몫 할만 했다.
거기에 자신들이 이끌고 온 수하들을 합해 칠십여 명이 있으니 놈들의 행운도
여기서 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 기다려도 될 것을 조급한 마음에 수하들에게 목책을 들게 하고 달려간지
일 각 여.
드디어 표사 놈들을 발견한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멈춰서 있던 놈들이 마차를 앞세우고 달려왔지만 목책이 있는
이상 놈들은 멈출 것이었다.
"마차는 그냥 두고 말을 탄 놈들을 노려라!"
가갑귀의 외침에 수하들이 자욱히 일어나는 흙먼지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순간, 추형의 머릿속으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스쳤다.
맹렬히 달려오는 마차에 마부가 없었다!
"혹시……?"
추형이 몸을 날리며 외쳤다.
"피해라! 마차가 폭발한다!"
처음 놈들과 싸운 청화교도들이 당했을 때부터 표사 놈들이 쓰는 화기는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조금 전에도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을 듣지 않았던가.
수십 명이 일시에 몸을 날리느라 아수라장이 될 때 마차는 코앞까지 들이닥쳤
다.
콰과광!
마차에 실은 온갖 화탄이 터지고 그 위력에 단단한 마차까지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아이쿠!"
철편에 살가죽이 뚫리고 나뭇조각에 뼈가 부러진 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자
욱한 연기 속에 요란하게 울렸다.
"막아라! 놈들을 막으란 말이다!"
"저기 온다!"
가갑귀와 추형은 고수였다.
사방으로 비산하던 파편이 멈추고 진탕된 공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수하들을
독려하며 달려오는 적을 맞는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놈들, 어딜 가느냐!"
묘도(苗刀)를 움켜쥔 가갑귀가 부서진 목책을 넘어오는 사군명을 향해 뛰어
올랐고, 추형은 바로 뒤 고승후의 복부를 노리고 언월도(偃月刀)를 쓸어갔다.
목책을 넘으려 도약한 순간 눈앞에서 묘도가 번뜩이자 사군명은 황급히 허리
를 뒤로 젖혔다.
"이런……!"
졸지에 목표를 잃고 허공에 떠 버린 가갑귀가 경호성을 울릴 때 사군명을 뒤
따르던 왕충삼의 검이 가갑귀의 다리를 쓸었다.
쉬익!
순간, 가갑귀는 재빨리 몸을 웅크리며 우측으로 몸을 틀었다.
"차아합!"
달리는 말 위에서 전개한 왕충삼의 검이 정확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가갑귀의
대응은 가히 일류고수라 하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
신속하게 몸을 틀며 혼신의 힘을 다해 언월도를 쳐낸 고승후는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으나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목책을 넘었다.
하나 육척이 넘는 언월도는 추형에게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튕겨지는 탄력을 이용해 작은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꾼 언월도는 막 목축을
넘은 말의 뒷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히히히힝!
갑자기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한 말이 주저앉는 바람에 고승후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굴렀다.
고승후도 고승후였지만 뒤따르던 해연이 문제였다.
다리가 잘린 고승후의 말이 하필 좌측으로 쓰러진 바람에 앞길이 막힌 해연의
말도 주춤거리며 앞발을 치켜든 것이다.
"어맛!"
해연의 뒤를 따르던 팽상문은 재빨리 말고삐를 잡아채 충돌을 피했으나 잔뜩
흥분된 상태에서 갑자기 놀란 말을 다룰 만큼 해연의 기마술은 뛰어나지 않았
다.
이미 오 장 이상 앞섰던 사군명이 뾰족한 비명소리에 황망히 말머리를 돌릴
때, 가갑귀 역시 다급한 외침을 토했다.
"계집이 다쳐선 안 된다! 반드시 생포하라!"
"비켜라!"
사군명은 앞을 가로막는 흑마방의 무사들에게 가차없는 살검을 휘두르며 설운
경에게 향했다.
다행히 서수림이 해연의 옆에 붙어 흥분해 날뛰는 말을 진정시켰고 설운경 주
위에 표사들이 둘러섰다.
일행과 합류한 사군명은 지체없이 설운경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뒤에 태웠다.
"멈추지 마시오! 길을 열어야 하오!"
해연의 뒤에 탈 때부터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설운경은 억센 손길이 허
리를 휘감고 몸이 번쩍 들리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나 그녀의 두려움과 경악은 얼굴을 묻은 넓은 등을 타고 울리는 음성을 듣
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군명의 외침에 화답하듯 싸움은 혼전으로 치달았다.
"누구 마음대로 간단 말이냐!"
자칫 다리를 잘릴 뻔했던 가갑귀가 호통을 치며 전면으로 떨어져 내리자 폭발
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흑마방의 무사들은 성난 이리떼처럼 달려들었다.
"쳐라!"
"놈들을 모두 죽여 버려라……."
사방에서 흉악스런 함성을 지르며 창칼을 휘두르는 자들을 향해 표사들은 눈
부시게 싸웠다.
"이놈!"
재상 가의 후예답게 호통을 지르는 왕충삼의 검이 번뜩이면 적의 팔이 땅바닥
에 떨어졌고, 말과 한 몸이 된 서수림이 이리저리 영활하게 도를 휘두르면 사
방에서 피가 튀었다.
"으아아악!"
"크허어……."
흑마방의 무사들이 곳곳에서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지는 데는 그들이 탄 말도
큰 몫을 했다.
이리저리 발길질을 하며 움직이는 거대한 몸체 자체가 적에겐 위협적인 무기
이고 훌쩍한 높이는 말을 탄 사람의 목이나 가슴을 비롯한 치명적인 부위를
방어하는 방패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승후는 가장 위태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뛰어난 기마술을 지닌 동료들이 적과 싸우는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그가 공격
당할 방위를 많이 차단해 주긴 했지만 적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저놈부터 없애라!"
아무래도 만만해 보였는지 그의 목숨을 노리는 공세가 치열하게 이어졌다.
휘이익!
머리를 양단 낼 듯 내리치는 도를 피하자 다리를 끊어 놓으려는 검이 바람을
갈랐다.
"차아핫!"
발끝에 공력을 모아 뛰어오른 그에게 마침 옆으로 다가온 팽상문이 손을 내밀
었다.
"내 손을 잡으시오."
팽상문의 손을 잡고 방향을 틀면 말 등에 올라타는 것은 충분했다.
"허헉, 고맙네!"
하나 그 순간 하필이면 구태열의 발길에 걷어 채인 자의 몸뚱이가 팽상문이
탄 말에 부딪혔고 움찔한 말이 한 걸음 내디딘 바람에 팽상문은 손은 멀어졌
다.
"이런……!"
안타까운 탄식을 토한 팽상문이 눈앞에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는 사이 고승후
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비켜라, 놈은 우리가 맡는다!"
수하들을 헤치고 다가서는 가갑귀와 추형의 기세는 사군명을 긴장시키기에 충
분했다.
놈들의 우두머리임에 틀림없는 두 사람이 풍기는 기도는 이제까지 상대했던
자들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추형과 가갑귀 역시 행여 수하들이 설운경을 해칠까하는 걱정만 아니라면 나
서고 싶지 않았다.
표사 놈들이 저마다 적지 않은 수하들을 베어 넘겼지만 그 중에도 사군명의
칼에 쓰러진 자는 벌써 열 명이 넘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려면 설운경을 손에 넣어야 했고, 설운경을 손에 넣으려면
사군명을 쓰러뜨려야 했다.
거치적거리는 수하들이 물러서고 폭발의 잔해와 시신들이 즐비한 싸움터에 작
은 공간이 생기자 두 사람은 사군명과 맞섰다.
"순순히 계집을 내놓으면 네놈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가갑귀가 자기라면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제안을 했으나 대답은 살벌한 검광(
劍光)이었다.
"닥쳐라!"
쉬이익!
등에 꼭 붙은 설운경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련만 사군명의 검은 가갑
귀의 목줄기로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이크!"
쓰러지듯 물러나며 머리를 젖힌 가갑귀의 신형이 비틀거릴 때, 사군명의 검세
는 신속하게 변화했다.
"받아라!"
횡으로 쓸어가던 검이 우뚝 멈추며 그대로 전면으로 내뻗는 것이다.
앞의 공세가 허초였거나, 검의 수발이 경지에 이른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한
변화였다.
"으으허……!"
창졸지간에 위경(危境)에 처한 가갑귀의 심장이 단천검에 뚫리려는 순간, 추
형이 휘두른 언월도가 사군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감히 누굴 노리느냐!"
말 등을 박차고 그대로 쏘아 가면 언월도를 피하고 가갑귀의 목숨을 취할 수
있지만 허리를 감싸고 기댄 설운경의 등이 언월도에 노출될 상황이었다.
사군명은 가갑귀를 포기하고 언월도를 막았다.
빛살처럼 빠르게 거둬지고 언월도를 막아내는 검의 눈부신 속도.
챙……!
단천검이 언월도의 날에 부딪히는 순간, 사군명의 심중에 아차 하는 탄식이
스쳤다.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은 공세는 아까 놈들이 외친 대로 적들도 행여 설운경
이 다칠까봐 조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이다.
만약 그대로 가갑귀의 목숨을 취했어도 설운경이 언월도에 당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아쉽게도 가갑귀를 없애지는 못했지만 놈들의 속셈을 안 이상 싸움은 훨씬 수
월하게 풀릴 것이 확실했다.
"살길을 열어 주려는 사람한테 암수를 쓰다니……."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며 가갑귀가 신중하게 다가섰다
호되게 당한 뒤라 그런지 전신의 공력을 일으키고 주의를 집중시킨 모습이었
다.
사군명은 서서히 옆으로 움직이는 두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신중하게 생
각을 정리했다.
'설운경이 있고 높이에서 불리하니 일단 허공으로부터의 공격은 가능성이 적
다.
같은 이유로 뒤쪽은 당연히 아니고 측면 또한 몸을 틀 경우 설운경이 위험에
처하니 배제해도 좋을 것 같다. 전면이 가능하지만 고개를 쳐든 말의 머리가
상당부분을 가리는 장애가 될 테니 그 또한 쉽지 않을 터. 하면, 말을 먼저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언월도를 움켜쥔 추형의 눈길이 가슴을 향한 언월도의 방향과 달리 아래쪽을
흘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추형과 반대쪽에서 도약이라도 할 듯 잔뜩 움츠린 가갑귀의 모습.
사군명은 짐짓 비스듬하게 든 검으로 가슴과 목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가갑귀와 추형의 눈길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두 사람은 일제히 기합을 지
르며 몸을 움직였다.
"이얍!"
"타아핫!"
사군명은 확신에 찬 모험을 걸었다.
사선으로 쏘아오는 가갑귀에게 등을 돌리며 상체를 잔뜩 숙인 후 말의 앞발을
노리고 날아드는 추형의 언월도를 올려친 것이다.
챙강……!
"이크!"
추형의 언월도가 여지없이 동강나며 맑은 금속성을 울릴 때 가갑귀는 묘도를
회수하느라 질겁하며 경호성을 발했다.
사군명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언월도를 동강내고도 전혀 기세가 꺾이지 않은 단천검에 공력을 쏟아 엉거주
춤 허공에 떠있는 가갑귀의 몸뚱이를 베어 버린 것이다.
"으아악!"
가갑귀의 몸뚱이를 가르는 검의 감촉이 전해짐과 동시에 말에게 박차를 가하
자 설운경이 가갑귀의 피를 뒤집어쓰는 험한 꼴은 면할 수 있었고 추형의 목
은 사군명의 검이 닿을 거리에 놓이게 되었다.
극히 짧은 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자루만 남은 언월도를 들고 멍해있던 추형이 정신을
수습하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목으로 파고드는 서늘한 검날의 감촉이었다.
슈우욱!
"……!"
추형이 지르지 못한 비명은 그의 수하들이 발악적으로 토하는 경악성이 대신
했다.
"호, 호법이 죽었다!"
"집법당주가 당했다!"
태산처럼 믿었던 우두머리를 잃은 흑마방 무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차마 도망가지는 못한다 해도 슬슬 뒷전으로 물러서는 자가 있는가 하면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자도 있었다.
하나 공포에서 비롯된 발작적인 살기는 전혀 위협적인 공세로 이어지지 못했
고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삼을 뿐이었다.
"이놈 죽어라!"
"끄아악!"
사군명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자들에게 가차없이 죽음을 선사했고
불과 반각도 지나지 않아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를 따르시오!"
숨쉴 틈 없이 이어지는 적들의 공세에 지칠 대로 지친 표사들에게 사군명의
자신 있는 외침은 천상(天上)의 성음(聖音)처럼 들렸다.
진(陣)은 깨진지 오래이고 표사들은 저마다 고립되어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
이미 크고 작은 상처로 혈인(血人)이 된 고승후를 비롯한 표사들은 새로운 힘
이 솟는 것을 느끼며 사군명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마치 쟁반 위에 점점이 떨어진 물방울이 하나로 뭉치듯 하나둘 접근하는 표사
들에게 오장에서 칠장 남짓한 사군명과의 거리는 아득한 거리로만 여겨졌다.
가장 먼저 사군명의 뒤에 붙은 해연이 얼굴에 튄 피가 입 속으로 흘러드는 것
을 개의치 않고 안타깝게 외쳤다.
"빨리들 와요, 제발!"
최흘이 죽은 이후 그녀는 표사들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고 최소한 표행이 끝
날 때까지는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해연의 쌍도는 안타까운 주인의 심중을 대변하듯 날카로운 한 광을 뿌리며 적
의 몸뚱이를 유린했다.
하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사군명에게 줄어든 위협은 고스란
히 표사들에게 옮겨졌다.
특히 천두염과 고승후는 겹겹이 적에게 둘러싸여 목숨이 경각에 달린 형편이
었다.
"형님!"
가슴속에 담아두기만 했을 뿐, 이제껏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호칭으로 고승
후를 부른 팽상문이 고승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돼, 됐네. 그냥 가게…… 크흑!"
눈길도 마주치지 못하고 애써 팽상문에게 외친 고승후의 어깨로 또 다시 날카
로운 도가 스쳤다.
눈이 뒤집힌 팽상문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려 할 때, 틈을 놓치지 않은
흑마방 무사의 장도가 그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딜!"
슈캉!
등어리가 후끈하는 느낌과 함께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자 팽상문이 멈칫했다
. 다행이 살갗이 베이는데 그쳤으나 자칫했으면 뼈가 갈라지는 중상을 입을
뻔한 것이다.
"죽으려고 작정했소? 고선배를 구하는 게 아니라 같이 죽는 길인 줄 모르시오
!"
어느새 팽상문의 말고삐를 움켜쥔 구태열이 맹렬하게 팽상문을 나무랐다.
그때, 쥐어짜듯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서진 목축에서 가장 가까운 곳, 한쪽 발이 무릎아래부터 잘리고 가슴 아래
로는 온통 피를 뒤집어쓴 천두염이 말하는 소리였다.
"고, 고선배와 내가 아직 사, 살아있을 때…… 이, 이놈들을 한 놈이라도 부,
붙잡아 둬야…… 갈 수 있을 때 어, 어서……."
천두염이 진짜 도인이라도 되는가.
함성과 비명으로 요란해 전혀 들리지 않아야 마땅할 미약한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분명히 그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사군명 쪽도 사군명의 검이 미치는 범위만 허술할 뿐 뒤에 붙은 일행에게는
치열한 공세가 이어졌다.
하나 사방에서 적을 맞던 그들에게 한쪽만 막으면 되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감
당하고도 남았다.
고승후와 천두염을 빼면 고립된 사람은 팽상문과 구태열 둘뿐이었다.
팽상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머리를 돌려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비키지 않으면 모두 죽인다!"
팽상문과 구태열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혈로(血路)를 헤치는 속도는 조금전
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야 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 분노로 터뜨리는 살기와 공포에 질려 이성이
마비된 자의 살기가 다른 점이었다.
"됐어요!"
해연의 외침에 힘차게 검을 내치고 언뜻 고개를 돌린 사군명의 눈에 팽상문과
구태열이 따라 붙은 것이 보였고, 이미 쓰러져 난도질당하는 고승후와 깊숙
이 박힌 칼을 옆구리에 매단 채 말에서 떨어지는 천두염의 모습도 보였다.
혈관을 터뜨릴 듯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까닭 모를 서러움이 단천검을 통해
폭발되었다.
"죽어라, 이놈들!"
오십여 구의 시체 속에 소중한 동료 두 사람을 남긴 사군명 일행이 포위를 뚫
고 달리기 시작할 때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늦은 봄 내리는 비치고는 굵고 거센 빗줄기를…….
<제3권에 계속>
첫댓글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독 ㄳ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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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깁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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