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낮추는 자가 높아지고, 남에게 주면
복이 돌아오며, 지는 자가 이기고, 죽어야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자살이나 자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
진짜 죽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 육성(肉性)이 죽어야 영이 삽니다 (거듭남의 역설)
• 거듭나기 전에는 육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영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육성과 영성 사이에 치열한 영적
갈등과 부딪힘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런과정에서 예수님을 믿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 김익두 목사의 부고장: 과거 깡패였던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를 만난 후 "
김익두 사망"이라는 부고장을 돌린 일화가 있습니다. 옛사람인 육성이
완전히 죽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내 안의 옛 성품과 육성이 죽을 때,
비로소 내 안의 영이 살아 숨 쉬기 시작합니다.
2.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역사적 사실)
• 영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습
니다. 세속 학자들은 기절설, 환상설, 도적설, 착각설, 신화설 등을 주장
하지만 모두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셨고, 확실하게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 그런데 재생과 부활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나사로.
야이로의 딸등이 죽엇다가 살아났는데 이것을 부활이라고 설교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활이 아니라 재생입니다 재생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깨어났다가 결국 다시 죽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의
'부활(Resurrection)'은 다시는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으로 변화
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재생이 아닌 부활의 종교이며, 이 부활은 오직
완전한 죽음을 통과할 때만 주어집니다.
3. 부활을 체험한 자는 날마다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제자도의 역설)
• 연합의 비밀 (로마서 6:3~5):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장사 되었고, 그분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는 내 안의 탐욕, 음욕, 명예욕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 조지 뮬러(George Müller)의 고백: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영적
대각성을 경험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느 날 죽었습니다. 조지
뮬러에 대해서도 죽고, 세상이나 친구들의 칭찬이나 책망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
• 이미 죽은 시체는 송곳으로 찔러도, 비난하고 억울하게 해도 아픔을 느끼
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칭찬하고 박수를 쳐도 우쭐하거나 교만해
지지 않습니다. 내 옛 자아가 완전히 죽었다는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세상
의 비방에 실망하지 않고 칭찬에 교만해지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을 위해 내 목숨(자아, 욕망, 육성)을 버리는 자는 참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육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새 생명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글과 윤곽 한경환목사 설교수정 AI 도움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