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손준호
낙산사 홍련암에 석양이 부서지고 있었다 큰 불길에 절 활활 날아가는 것을 목도했던, 등허리 시커멓게 화상 입어도 입 다물었던 바위, 저녁이 까만 서핑족을 뱉어내고 있었다 의기양양, 파도가, 해변에 발자국을 토해내고 있었다
목어가 슬픔의 알방구리 같은 풍경을 맵차게 때렸다 황금빛 파문이 일자 흩어지는 늦자두 내음, 저녁의 두레박이 허공의 우물에 몇 차례 출렁거리자 집어등 앞세운 오징어잡이 배가 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트렁크에서 트렁크를 빼내 펜션에 짐을 부렸다 열사흘 달빛이 주르르 바다의 지퍼를 열고 있었다 여행은 나를 비우는 망명, 나를 버리러 갔다가 말쑥이 빨아서 개켜 돌아오는 노래, 빈 아파트는 발라드처럼 느리게 표류할 것이었다
갯배 타고 아바이마을 돌고 온 뒤에도 서핑족은 물러서지 않았다 의기양양, 하얗게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엇송아지같이, 물덤벙술덤벙 힙한 클럽 음악에 젖고 있었다 고공 서핑을 즐기는 바비큐 연기와 고성, 디스크자키가 비트에 속력을 가하고 있었다
비틀비틀 서핑족 스텝이 짝을 구하고 있었다 시퍼런 입술로 술을 건네주고 있었다 불면을 앓는 수면, “마을을 폭파하고 싶어!” 최동숙(86) 할머니* 계단에 앉아 울먹이고 있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제사 때 못 찾아올까 봐, 흥청대는 어촌 마을에 산 귀신으로 눌러앉아 있었다 의기소침 새벽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터널이 길어서 터질 것 같은 졸음의 목을 눌러 노독의 녹물을 오래 빼고 있었다, 오징어잡이 배가 채낚기로 햇귀를 끌어올리자 여름 바퀴가 아침을 공짜로 분양받은 양, 경로를 이탈해 통일전망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까만 길냥이가 북쪽 말로, 헛돌이 말고, 눈 좀 붙이고 가라고 냥냥냥냥 귀뜸해 주었다 건듯, 난기류가 철조망을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