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순 (사)임영민속연구회 이사는 2002년 태풍 루사 때 유실된 옥계면 산계리 종선각
내 목판 완문의 탁본.
- 조선 영조시대 옥계 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강릉 옥계 주민들의 조선 영조시대 생활상이 닮긴 완문(完文)이 발견됐다.
최기순 (사)임영민속연구회 이사는 2002년 태풍 루사 때 유실된 옥계면 산계리 종선각 내 목판 완문의 탁본을 15일 공개했다.
완문은 조선 시대 중앙관서 등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발급한 공문서의 일종이다. 이날 공개된 완문의 탁본은 황장목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것을 최 이사가 옥계면장으로 근무할 당시 탁본해 놓은 것으로 250여 자의 한문과 이두문자가 혼용 표기됐다. 완문에는 우계면 쌍계리, 북동리, 오곡리 주민들이 매년 공납해오던 산 밭에 흉년이 들자 공납을 감면해 달라는 상소문을 올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중앙 관서는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을 가엽게 여겨 완문을 작성해 보낸다고 적혀 있다.
문서를 공개한 최 이사는 “1759년 여지도서라는 책에 `쌍계리'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완문의 병자년(丙子年)은 1756년, 영조 32년으로 추측할 수 있다”며 “당시 이 지역 주민들이 산삼을 재배했고 세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큰 흉년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완문 목판과 함께 보관됐던 종선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종선비는 옥계지역의 뜻있는 선비 14명이 모여 `종선계'를 결성, 흉년에 어려운 백성을 대신해 공납해준 선비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완문의 내용과 시대적 배경이 일치한다. 종선비 역시 2002년 태풍 루사 때 유실됐다가 복원됐다. 그러나 문화재자료(도문화재자료 129호)로 등록돼 있는 종선비와 달리 완문 목판은 향토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에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복원이 추진되지 못했었다. 도 전체 유·무형문화재의 20%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강릉의 경우 비지정문화재로 분류해야 하는 향토문화재와 유산이 워낙 광범위한데다 비지정문화재의 관리·보수를 위한 예산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향토사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학술자료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경우 부각을 해서라도 게시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참조 : 강원일보 원선영 기자님(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