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거기록으로 본 댓글조작
“‘드루킹’ 김동원 씨(52)가 자신과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 킹크랩(댓글 조작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저와 공모한 것처럼 꾸민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54)는 21일 댓글 여론조작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서도 “김 씨가 일방적으로 접근해 자신을 이용했을 뿐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다”며 김 전 지사는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22일 법원에 제출된 2000여 쪽 분량의 증거기록 등을 전수 조사한 결과 김 전 지사는 2016년 11월 25일부터 2018년 1월 7일까지 약 1년 1개월 동안 32차례나 전화나 메시지 등으로 김 씨에게 먼저 연락했다.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12회)과 시그널(3회)을 활용해 15차례 비밀 메시지를 먼저 보냈고, 시그널(9회), 일반 음성통화(6회), 텔레그램(2회) 등으로 17차례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지사가 김 씨에게 먼저 보낸 비밀메시지 중 대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기사 링크 등이다. 2017년 4월 13일 김 전 지사가 TV토론을 적극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고, 같은 달 29일 네이버 댓글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김 전 지사의 메시지를 받으면 수 분 내로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등의 답장을 보냈다. 2016년 11월 9일 킹크랩 시연을 본 김 전 지사가 여론 조작을 예상하고 김 씨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 1,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대법원도 “김 전 지사가 댓글 여론 조작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공범이라는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
김 씨 역시 김 전 지사가 2016년 9월 경기 파주의 사무실을 처음 방문한 이후부터 2018년 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댓글 여론 조작 작업을 한 기사 목록을 거의 매일 전송했다. 김 씨는 2017년 대선 이후의 선거에서도 댓글 여론 조작을 통해 김 전 지사를 돕겠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김 씨는 2017년 7월 21일 김 전 지사에게 시그널을 통해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는 문재인 지지층의 힘이 축소되고 언론, 방송의 힘이 강화될 것으로 판단돼 대책이 요구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전 지사는 “고맙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김 씨는 또 2016년 6월 30일 국회에서 김 전 지사를 처음 만난 뒤 ‘경공모’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정권을 잡을 것입니다. 진짜 시작은 그 뒤부터입니다. 저희를 알아두시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 전 지사는 대선 다음 달인 2017년 6월부터 김 씨에게 다양한 ‘지방선거 준비 작업’을 지시했다. 김 씨는 김 전 지사의 요청을 받아 경남 김해에 거주하는 경공모 회원 46여 명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해 그 명단을 김 전 지사에게 전달했다. 이 같은 관계는 김 씨의 측근 도모 변호사가 일본 오사카 총영사에 임명되지 못하면서 2018년 2월 단절됐다.동아일보, 김태성 기자, 박상준 기자
출처 : 김경수, 대선전후 13개월간 32차례 드루킹에 먼저 전화걸고 메시지 보내
<“금메달을 딸 유력 후보면 도핑해도 상관없나”(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기 범죄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자격을 잃었다”(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유죄가 확정된 다음 날인 22일 오전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선 울분이 쏟아졌다. 김 전 지사는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현 여권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드루킹’ 김동원씨와 댓글 조작을 공모한 혐의(업무방해)를 받아왔다.국민의당 지도부는 “댓글 조작 범죄수익으로 집권한 정권”(안철수),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권은희 원내대표), “사기 범죄로 당선”(구혁모 최고위원) 등 수위 높은 표현을 써가며 비판을 쏟아냈다.
같은 날 국민의힘 측도 “민주당은 선거 공정성 침해에 대해 사과하라”(이준석 대표)고 공세를 폈지만, 유독 국민의당 측 반응이 더 거칠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 대표가 맞붙었던 19대 대선때의 악연 때문이다.
안철수 37% 찍자 ‘MB 아바타’ 총공세
당시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갑자기 치러졌다. 보수 진영은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고, 더불어민주당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국민의당 관계자들은 “문재인 후보가 마냥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는 아니었다. 탄핵 사태와 무관했던 안철수 후보에게도 동등한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해 4월 11~13일 조사된 한국갤럽의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다자대결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은 37%로 문 후보(40%)를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7%,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3%에 머물렀다.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김 전 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화력이 안 후보에게 집중됐다. 주로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 ‘안초딩’(안철수+초등학생), ‘갑철수’(갑질+안철수) 등 안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댓글이 쏟아졌다. 반면 드루킹 일당은 문 후보에게는 ‘청렴’ ‘대인배’ ‘소통’ 등 긍정적 이미지의 댓글을 달았다. 국민의당이 김 전 지사 1심 판결문의 ‘범죄일람표’를 분석한 결과, 그해 4월 한 달간만 757만4924건의 추천 수 클릭조작이 이뤄졌고, 드루킹 일당이 조작한 댓글 7만2834건 중 6만5299건(89%)이 안 후보 공격에 집중됐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안 대표가 4월 23일 대선 TV토론에서 문 후보에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물었다는 게 국민의당 측 설명이다. 당시 문 후보는 “항간에는 그런 말도 있죠”라고 답했다.
이후 안 대표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추락했다. 같은 조사에서 일주일 뒤 7%포인트 하락한 30%를 기록했고, 이후 24%, 19%로 3주 만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났다. 당시 안철수 캠프에 있었던 한 인사는 “인터넷 댓글이 하루아침에 조롱 일색으로 돌변해 ‘무슨 사고가 터졌냐’고 관계자들에게 수소문했을 정도”라며 “댓글 조작을 기점으로 양강 구도가 무너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安 측 “댓글조작 없었다면 승부 몰랐다”
여권 일각에선 “(댓글 조작 여부와 관계없이) 어차피 문 대통령이 이겼을 선거”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2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후보가 홍 후보에게 17%포인트라는 압도적 차이의 승리를 거뒀는데, 그럴 일(댓글 조작)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19대 대선에서 문 후보는 41.1% 득표율로 당선됐다. 홍 후보(24.0%), 안 후보(21.4%), 유 후보(6.8%)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양강 구도를 깨뜨리고, 주요 승부처마다 판세를 뒤엎는데 댓글 조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권은희 의원)는 반박이 나온다. 이태규 의원은 “안 대표 지지율이 무너진 뒤 양강 구도가 흔들리면서 당시 비문(非文) 표심이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에게 분산됐다”며 “댓글 조작이 없었다면 승부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댓글조작 사과하라”던 文의 침묵
김 전 지사의 유죄 확정 뒤 이어지는 문 대통령의 ‘침묵’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2일 서면 브리핑에서 유죄 확정에 대해 “청와대 입장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 전 지사 판결에 대해 문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는지, 이에 대해 언급을 했는지 등을 묻는 말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과거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 당시 문 대통령의 태도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은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확인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저질러진 일이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사과하고 진실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특히 ‘친문(親文) 적자’ ‘민주당 황태자’ 등으로 불리며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김 전 지사의 유죄 확정에도 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드루킹 일당을 여권과 관계없는 사기 집단으로 몰고 가는데, 그 사기 행각의 최대 수혜자가 문 대통령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대선을 치렀던 야권 주자들도 일제히 반발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조작된 여론으로 대통령이 됐다면 대국민 사과라도 하라”고 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댓글조작으로 당선된 문 정권의 정통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공세를 폈다. 반면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판결이) 진실과 다른 경우도 꽤 있다”(이재명 경기지사), “김 전 지사의 진정을 믿는다”(이낙연 전 대표)는 입장을 내놨다.>중앙일보, 손국희 기자
출처 : 중앙일보, "댓글조작 아니면 文-安 승부 몰랐다"..2017 대선 때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