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약 넣고 꾸준히 걷고 달리고 수영하면 녹내장 극복”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
녹내장, 실명 위험 높은 3대 질환
한국인 ‘순한’ 정상 안압 녹내장 많아… 실명 위험 큰 녹내장 맞춤 치료 필요
엎드려 자기, 물구나무서기는 피하고, 40대 이후 정기 안과 검진 꼭 받아야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은 130여 편의 녹내장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한 녹내장 전문가다. 황 원장이 녹내장의 발병과 진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센트럴서울안과 제공
30대 초반 직장인 A 씨는 녹내장 환자다. 10년 전에 시력교정 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갔다가 우연히 병을 발견했다. A 씨는 녹내장의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분에 병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같은 나이인 B 씨도 비슷한 시기에 녹내장을 발견했다. 하지만 A 씨와 달리 눈앞이 흐릿한 증세가 이미 나타났고, 진단 결과 꽤 진행된 상태였다. 녹내장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를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안압을 조절하기 위한 수술도 했지만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지금은 나머지 한쪽 눈으로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녹내장인데 두 사람의 결과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황영훈 센트럴서울안과 원장은 “녹내장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어떤 녹내장인지 파악한 뒤 맞춤형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녹내장 진단과 새로운 수술 방법 등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의사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130여 편의 녹내장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했다.
●녹내장, 얼마나 알고 있나
12일은 세계녹내장협회가 지정한 ‘세계 녹내장의 날’이다. 녹내장은 당뇨병성망막증,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3대 질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녹내장과 백내장을 혼동한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질병이다. 백내장은 수정체 질환이다. 투명해야 할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백내장이라 부른다. 황 원장은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처럼 수정체가 노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탁해진 수정체를 인공 수정체로 교환하면 치료가 끝난다.
녹내장은 시신경 질환이다. 안압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발생한다. 황 원장은 “안압이 상승하면 눈동자가 푸르스름하게 보이기 때문에 녹내장이라 부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녹내장의 발생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안압 상승과 노화가 지목된다. 대부분 초기 증세가 없다.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시야가 흐릿해지고, 심한 경우엔 실명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녹내장을 ‘소리 없이 실명을 유발하는 병’이라 부른다. 주로 40대 이후에 많이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20, 30대 젊은 층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녹내장은 백내장과 달리 완치가 어렵다.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만 가능하다. 안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입하며, 상태가 개선되지 않거나 악화되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녹내장이 당장 실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황 원장은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몇 달 만에 실명이 될 수도 있지만 수십 년 이후에도 시력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유형의 녹내장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순한 녹내장 vs 치명적 녹내장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유형은 정상 안압 녹내장이다. 전체 녹내장 환자의 70∼80%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안압이 정상 범위인 10∼20mmHg인데도 발생한다. 선천적인 요인이나 고도 근시, 눈 혈액 순환 장애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A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은 너무 늦지 않게 발견하고 적절히 치료하면 진행 속도를 현저하게 늦춰 실명을 막을 수 있다. 이른바 ‘순한 녹내장’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압 조절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안압이 정상 범위라 해도 높게 나타나면 건강한 사람과 달리 눈의 신경섬유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주입하면서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을 제외한 나머지 20∼30%는 실명 위험이 비교적 높다. 각각의 증세를 면밀히 알아두는 게 좋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가장 실명 위험이 높은 유형은 신생 혈관 녹내장이다. 망막 질환 등으로 인해 눈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혈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녹내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안 보이거나 시력이 뚝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 경우 원인 질환인 망막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포도막염 녹내장은 눈 속 포도막이란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염증 물질이 눈에서 만들어진 물(방수)이 배출되는 길을 막는다. 그 결과 안압이 상승하면서 생기는 녹내장이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 눈이 충혈되는 특징이 있다. 안압을 조절하면서 포도막염을 치료해야 한다.
폐쇄각 녹내장은 방수가 지나가는 길이 갑자기 막히면서 발생한다. 이 경우 △심한 두통 △시력 저하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방수 배출로를 여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연소 개방각 녹내장은 40세 이하 나이에 생기는 녹내장이다. 겉으로 봐서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지만 높은 안압 때문에 시신경이 점차 손상돼 처음 발견 때 이미 녹내장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B 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녹내장 예방하려면 안압 주의
녹내장을 예방하거나 증세 악화를 막으려면 안압을 낮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매일 주기적으로 투입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일상생활에서 안압을 높일 수 있는 행동을 피하는 게 현실적이다.
잠을 잘 때는 반듯하게 천장을 보고 자는 게 좋다. 엎드려 자면 양쪽 눈이 눌리면서 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는 속도는 상관없지만 많은 양을 한 번에 마시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보통 5분 이내에 1L의 물을 마시면 몸 안의 수분이 배출되지 않아 안압이 높아질 수 있다. 생맥주 500cc 두 잔을 연거푸 마신다면 녹내장이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를 빼면 적은 양의 술은 안압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흡연은 절대 피해야 한다. 황 원장은 “술과 달리 흡연은 그 자체만으로 안압을 높일 뿐 아니라 혈액 순환도 방해하기 때문에 눈 건강에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했다.
물구나무서기와 같이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는 동작은 안압을 올린다. 힘껏 바람을 불어대는 금관악기 연주도 마찬가지다. 변비가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용변을 보려고 배에 힘을 세게 주면 안압이 오른다.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용변을 봐야 한다.
이와 별도로 항산화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황 원장은 “항산화 물질이 시신경을 보호해 준다는 동물실험과 세포 수준 단계의 실험 결과가 보고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녹내장 악화 막으려면 유산소 운동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과 같은 유산소 운동은 녹내장의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해서 안압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시신경에 충분한 혈액과 영양을 공급한다. 덕분에 시신경의 손상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수영을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꽉 끼는 물안경을 착용하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 오래 잠수하는 건 좋지 않다. 황 원장은 “1분 정도 호흡을 참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 길어지면 안압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안압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녹내장 환자는 근력 운동을 해서는 안 되는 걸까. 아니다. 황 원장에 따르면 △앉거나 선 상태에서 △강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고 △숨을 고르면서 근력 운동을 하면 괜찮다. 똑같은 역기를 들더라도 누워서 하면 안압을 높이지만 서서 천천히 하면 안압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원장은 “녹내장 말기만 아니라면 배와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못에 핏줄이 드러나며 얼굴이 빨갛게 변할 정도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황 원장은 추가로 안과 정기검진을 권했다. 만약 고도 근시에다 가족력이 있다면 20대 때부터 정기적으로 눈 건강을 체크해야 한다. 40대 이후에는 매년 안압 검사와 안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이 두 가지 검사만으로 녹내장은 웬만큼 진단이 가능하다.
김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