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율법의 십일조!
성서는 언약서입니다.
십일조 문제도 새 언약을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첫 언약은 이스라엘에게 만, 주신 언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사를 통하여 중보하신 새 언약은
인류중에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효력있는 새 언약입니다.
첫 언약을 대체하신 새 언약만 효력이 있고,
첫 언약의 모세율법으로 제정된 십일조는 폐하여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분량만, 십일조이고, 단회성 십일조이고,
감사의 십일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율법을 주시기전의 일입니다.
모세율법의 십일조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십일조는 모세율법에 제정된 것이기에 율법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모세율법이 폐하였으면, 십일조도 폐한 것입니다.
율법의 십일조는 의무적으로 주기적으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만, 율법으로 법제화하여 주신 것을 말합니다.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강조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는데,
그 대상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세율법이 폐하시기 전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이방인에게는 율법의 십일조는 상관이 없고,
새 언약의 복음으로 구원되어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세율법 준수의 의무가 부여된 이들에게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게는 문자적으로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을 따라 오늘날도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다른 복음의 전형입니다.
헌금 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나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의 주장이 잘못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헌금에는 그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 형태의 재정 확보에 유익합니다만,
그것은 맘몬 숭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중시하거나, 동일 선상에서 중시하는 신앙 사상을 가진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불법 신앙입니다.
십일조를 완전하게 하신 내용을 실천하면 재정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하지만, 말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불순종일 뿐입니다.
율법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었습니다.
율법은 지키지 않는 이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받은 자가 없습니다.
율법의 임무는 의이신, 그리스도께 인도함이 끝입니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정죄하는 율법이 있으면, 의가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바른 전통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잘못된 전통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더 온전하고 풍성하게 하여야 하고,
후자는 즉각적으로 버려야 합니다. 참된 개혁주의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바른 평가와 십일조를 완전하게 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그 방편의 하나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십일조에 대한 바른 태도로 하나님 경외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전통이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유럽교회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교회는 십일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옳은 수는 없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렸을까요?
개혁주의에서는 율법을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구분하고
의식법, 시민법은 오늘날 효력이 없고 도덕법만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도덕법이 아니라 시민법에 해당됩니다.
개혁주의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화란의 개혁교회와
유럽교회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개혁주의의 주장을 말하였습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율법은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으로 나누지만,
율법은 구분할 수는 있지만, 분리할 수가 없는 유기체입니다.
야 2:10-11.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등은 도덕법, 십계명입니다.
율법이 폐할 때에 십계명도 몽땅 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모세율법을 온전한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꾸어 주셨으므로,
모세율법은 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의 율법(고전 9:21)을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루셨고,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엡 2:15-16).
오늘날의 교회에게는 완전하게 된 그리스도의 율법만이 효력이 있습니다.
율법의 도덕법도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도덕법과 완전한 도덕법이 있으며
완전한 성령의 생명의 법이 오늘날의 교회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십일조도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되었고
그것을 오늘날의 교회가 행하여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다른 복음을 말하면서 천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갈 1:8-9).
다른 복음은 어떤 유대인 교사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언약의 시대 진전과 함께
뒤따르는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 나타난 잘못이었으며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경륜을 역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를 지키라는 것은 정확하게 여기에 부합됩니다.
한국교회에 편만한 삼박자 축복도 원리에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안식교나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의 주장이 잘못된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모세율법이 폐하지 않았다면,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 마음대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을 바꿀 수없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엣 계명의 모세율법이 폐한 것을 믿고, 알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신앙이 철저하였으나, 모세율법을 지키지 안았습니다.
모세율법에서 철저히 금한 음식도 시장에서 파는 것은 다 먹어도 됩다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지 말라든가. 몸소 이방인과 함께 식사한 것등,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바울을 본받아야 한다고,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서신서에서 지키라는 계명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입니다.
사도바울이 목숨 다하여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상에 반하는
신앙은 전부 가짜입니다.
갈 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은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의 신앙사상의 구속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율법을 폐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폐하지 않았다면, 사도바울이 율법의 종교, 유대교에서 나온 자체가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 특히 율법을 버렸습니다.
십일조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헌금에는 그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재정 확보에 유익합니다만 그것은 맘몬 숭배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완전하게 하신 내용을 실천하면 재정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불순종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선조들 곧 사람, 하나님의 말씀과 선조들의 잘못된 가르침
곧 장로들의 유전 사이에서 선택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바른 이해를 가지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성경과 목회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즉각 순종입니다.
초대교회가 십일조를 하였다?
이런 꾸며낸 쌔빨간 거짓말을 믿으라고요?
성경에서 근거를 대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내 복음, 자기복음, 등을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내재, 전제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성령의 은혜로 깨달아 젔을 때에
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율법 전체가 그리스도 율법, 복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히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십계명이 새 계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연약하고 무익한 십계명이 온전한 새 계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법이 바뀌면, 새 법만 효력이 있습니다.
히 7:18-19.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엡 2:15-16.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계명을 기본으로 하여 보완하여 완전케하여 주신 것이 새 계명입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이 대표성을 가지며, 새 법, 새 계명만 유효합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고도의 신앙인이어야 아는 부분이지만,
모세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뀌면서,
율법이 은혜로 바뀐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 계명에 십계명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하여, 간음하지 않고, 사랑하여 살인하지 않고,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부모를 미워하며, 모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며, 살인치 않는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십계명은 온전한 하나님의 계명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복음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고, 가브리엘 문하에서 배우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계시를 수시로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을 지적하며,
하나님과 예수님과 율법과 복음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나타낼 뿐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철저하였으나,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의 종교 유대교를 떠난 것은 율법이 폐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끊어진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폐하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 되었습니다.
모세율법에서 철저히 금한 음식도 시장에서 파는 것은 다 먹어도
된다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지 말라든가.
율법에서 금한 이방인과 함께 식사한 것은 모세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기에 바울의 신앙 사상을 본받아 신앙생활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록한
사도바울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소학교, 국민학교는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깊은 관련은 있지만, 효력과 대표성은 초등학교에 있습니다.
모세율법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모세율법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다 녹아있지만,
효력과 대표성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있습니다.
언약의 변천사를 부정하는 자는 새 언약의 배반자요.
불법자요.
다른 복음자입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이든, 사도바울의 신앙사상에 반하거나,
사도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하는 것을
전하면 저주받는 다른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