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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기타 조선 후기 조세 수취양입니다 ㅡ,.ㅡ;;
블레다 추천 0 조회 1,008 10.02.08 17:49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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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2.08 22:23

    첫댓글 한국사는 배운게 고등학교 2학년때 뿐이라 뭐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만.. 토지에 등급을 주어 가장 좋은 땅과 가장 나쁜 땅을 나누는대 가장 나쁜 땅에 가장 좋은 땅의 등급을 줘서 세금을 가져가기 까지 했다더군요. 생산량에 80프로를 가져갔을수도 있겠내요.. 조선후기에 소작농이 생산량의 50%를 때주고도 재산을 부풀렸다 라고 하지 않나요..?(소작농은 그것만 내면 끝) 평민은 더 많아서 힘들었고..? 3정 3정 하지만 그건 대표적인 일부분이고 다른 것도 있었을거 같군요.. 그걸 몽땅 해서 80%라고 하신건 아닌가 합니다.

  • 작성자 10.02.09 12:36

    영정법으로 기존의 전분 6등, 연분9등법을 개정해서 '최하의 생산을 보인 해, 최악의 토질'을 가진 땅에서 걷는 '최소전세'를 걷기로 했습니다. 600두당 4두가 그거죠.

  • 10.02.09 01:14

    블레다님 말에 동의합니다. 근거를 따져보면, 아무리 잡아도 80프로는 나올 수 없고, 조선 후기의 수탈은 과장된 면이 많습니다. 유교적 관점의 지방관 비판으로 봅니다. 오히려 저는 조선 후기의 경제적 곤궁에서 수탈보다 더 주된 이유로 볼 것은, 구황작물의 보급과 이모작 등으로 인구가 엄청 늘어났는데, 농업생산이외의 산업생산에 한계를 보여서 전체적인 생활수준(의복, 목재, 철 등 모든게 부족)이 낮아진 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당시 조선은 국제무역의 주된 경로에서 벗어나 있어서 이런 여러자원의 수급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었죠.

  • 작성자 10.02.09 12:27

    그점에선 동의합니다. 그런데 쌀의 상품화가 덜 진전되어 오히려 1인당 쌀 소비량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현저히 높았습니다. 먹는 걸로만 생활수준을 판별할 순 없지만, 밥그릇의 용량이 조선의 경우 평균 440cc임에 비해 일본은 대체로 150 cc였습니다. 북마크님이 옮기신 사료내용이 말짱 뻥은 아니라는 물질적 증거죠

  • 10.02.09 13:15

    80%.... 이건 뭐 전국시대 왜국 수취량보다 더하네요.... 이렇게 세금 겉으면 대규모 반란은한 10번 넘게 일어 날것 같은데요?
    돈 없다고 내탕금 풀고 그래도 옆나라 일본 세율보다는 낮을것 같은니다. 조선은 너무나 심한 편견을 같고 있네요.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편견을 덜쳐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고려시대 호ㄱ들의 수탈이 더 할것입니다.

  • 작성자 10.02.09 12:34

    참고로 일본의 3대 기근때, 각각의 기근때 기아로 죽은 이의 수가 최소 100만~200만에 달했습니다.(종합이 아니라 각각, 입니다.) 반면 조선은 수십만 단위의 아사자는 왜란등을 제외하곤 없었죠.

  • 10.02.09 13:18

    조선조 듣보잡으로 여겨지는 현종 때에 대기근이 발생하였는데 조정은 군량미 풀고, 죽 퍼주고, 세금 대감면, 공물 면제, 내탕금 풀고
    그랬지만 일본은...ㅠ.ㅠ 오히려 세금 인상..... 이후 숙종, 영조때 들어와서는 구호 할 때 마른 음식까지 주었다. 합니다. 대단한 조선

  • 작성자 10.02.09 12:32

    한마디만 하죠. 그렇게 조선 후기에 지방관까는 자료가 많을 수 있는게 '유교적 관점'에 입각한 겁니다 ㅡ,.ㅡ; 일본? 기리스테고멘. 무사가 농민이나 죠멘을 '명예훼손'을 받았을때 즉각 살상할 수 있는 법입니다. 체제의 '억압성'에서 어떤 나라가 더 심했나 생각해 보세요. 일본에도시대의 경우 1643년 영구매매금지법으로 농토에 농민을 강제결박하고, 1647년 경안어촉서로 민간의 세세한 풍속, 경작관계를 규제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 분지제한령으로 '분할상속'을 막았는데, 이로 인해 농토를 가지지 못한 차남 이하의 자식들이 상인으로 진출했죠. 누군가가 부러워한 일본의 '상업'발전은 농민에 대한 막대한 공출, 그리고 이런 유랑인

  • 작성자 10.02.09 12:34

    들의 증가로 이루어진바가 많았습니다. 일본의 이런 '억압적'체제는 근대화 시기에도 계속되었는데, 소위 근대의 '개화된' 조선인들은 '유교'를 망국의 근원으로 보고 이런 일본의 절름발이 근대화를 '모범'으로 생각해 적극 수용했죠. 그게 이승만, 박정희의 근대화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폐가 '유교'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생각해 볼만하죠.

  • 작성자 10.02.09 12:29

    그리고 '사료'를 볼땐 항상 '내재적 비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사료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맥락, 사료 기술자의 입장과 심경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요. '중앙 조정의 수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남인 유생의 글이 있다면,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아, 조선은 역시 개막장 지옥이었어'라고 판단하는게 합리적인 역사 이해일까요.

  • 10.02.09 18:16

    비생산적 논의라. 한마디로 규정지어놓으시고 이제와서. 저를 콕집어서 또 이야기를 꺼내시니 저도 좀 당황스럽군요. 한말씀만 드리겠습니다. 80%에 달하지 않았을까? 라 이야기를 한것은. 뭐 제 불찰인듯하네요. 아무근거 없습니다. 다만. 조선이 너무 후반기로 가면갈수록. 막장화되니까 그정도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저의 생각이었을 뿐. 그리고 그때 분명히 [제 생각에는 80%쯔음 받았을거 같다. 말씀을 드렷던거 같은데요. 저는 어디까지나 공식적 구조가 아닌 비공식적 구조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수탈을 주목했을 따름입니다.

  • 10.02.09 18:48

    그런데 30%이면 현대의 조세부담률과 맞먹지 않을까요? 30%의 조세만 받는 나라이면 조선은 대단히 살기좋은 나라였어야 하는데. 왜. 조선은 일반백성들기 살기가 대단히 어려웠다는 자료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인구는 왜 그렇게 정체되어 증가되지 않은 것일까요? 일본의 경우를 말씀하셨는데. 일본의 경우는 양면적이라 알고 있습니다. 어느지역에서는 물자가 넘쳐난반면. 다른지역에선 물자가 극도로 없어서. 그래서 대기근도 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에도시대말엽에 관하여서 이런 자료도 있더군요 [에도시대 말엽의 쵸슈번민은 최저생존비의 만족 뿐만 아니라. 훨씬 높은 소득을 얻고 있었으며 상당한 수준의 저축도 가능했다]

  • 10.02.09 18:51

    출처는 [인구로 읽는 일본사] // 그리고 논외로. 이야기가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어떤분이 '조선의 망한원인이 뭐냐?' 라는 질문에. 체제가 너무 오래되었다. 체제가 너무 오래되어 부식되었고 그결과 부패가 만연했다. 그 결과 체제의 정합성이 떨어져서 망했다. 라고 저의 생각을 정리했을 따름입니다. 그부분에서 블레다님이 [무슨 말도 안되는 부패의 운운이냐? ] 라 말씀하셔서.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 것이겠구요.

  • 10.02.09 20:01

    인구 정체라?... 조선 개국시 인구가 500만 남짓으로 추산되는데 그게 임란때면 최대 1000만 추산. 조선 말기때는 학자들에 따라서는 2000만가까이 증가한 걸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500년간 인구가 네배로 뛰는 건 거의 농업혁명 수준의 증가량입니다만.(...) 최대치는 꽤나 과장된 느낌도 주지만.
    참고로 중세 서양 농업혁명 당시 인구 증가가 가장 컸던 프랑스/저지대의 경우 350만에서 1000만까지 증가하는데 550년 걸렸습니다.(출처 - "후기 고대 사회와 중세의 인구" , J.C.러셀) 이정도 증가로도 농업'혁명' 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중근대 인구증가는 쉬운게 아닌데요.

  • 10.02.09 19:59

    일반 백성들이 살기 어려웠다는 자료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농업생산량이 인구증가를 못따라간다는 것. 전세계적으로 이걸 따라잡은 시기가 오래되지 않다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식량증가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빈곤이 생길수밖엔 없다.'는 인구론이 출판된 건 머나먼 옛날이 아닌 19세기지요. 거기다가 조선시대는 소빙하기라 2~3년에 한번씩 가뭄이 들 정도. 조세부담률이 낮아도 살기 어려웠다는 말이 나오기엔 충분한 이유죠.

  • 10.02.09 22:10

    인구증가에 못미치는 식량증산의 한계는 당시 서양에서도 꽤나 범지구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기에 충분히 논할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북마크님이나 블레다님의 주장을 크게 뒷받침할수 있는 근거가 지금의 정부인 대한민국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시행을 앞두고 시행한 농지대형화정책인데 거꾸로 말하면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농민 1인당 경작지면적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 1960년대와 70년대를 기점으로 가면 농가구 1가구당 구성원수가 8~9명선(부모, 조부모, 자식 요렇게 3대)에서 2명선(늙은 할아버지&할머니, no more)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었고 그럼에도 80년대와 90년대 농민 1인당 경작지면적이 매우

  • 10.02.09 22:13

    낮았다는 것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일이죠. 19세기 이전엔 의료기술의 한계로 통상 2대 5명정도(부모, 생존한 자식 셋)가 보다 보편적이었다고는 해도 1인당 경작지 면적이 크게 적었음은 19세기후반의 토지소유관계가 경지유전으로 인해 소작농경지의 일부가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만 빼고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거의 그래도 갔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충분히 유추가능한 결론이라 봅니다. 그런상황에서는 30프로의 조세라 하더라도 큰 부담이었겠죠.

  • 작성자 10.02.10 12:05

    현대 한국 서민들도 조낸 살기 어렵다, 라고 푸념하는데, 그걸 보고 후세 역사가들이 그것만 보고 '아, 한국은 조낸 살기 어려운 나라, 막장이었어(어떤 측면에선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ㅡ,.ㅡ) 라고 단순히 판단하면 그게 합리적인 판단일까요. 사료를 읽을때도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균형감 있게 봐야지요.

  • 10.02.10 19:06

    뭐 80% 정도는 제 오바질이었다지만 저와 블레다님 사이에는 데이터를 파악하는 관점이나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정도로 정리를 해두죠.

  • 10.02.11 00:13

    ihsz>아 잠깐 일본을 언급하였던것은 수탈의 문제를 언급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국가대 국가로 경제력을 비교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 구조말고. 비공식적구조하에서. 어느나라의 수탈이 더 세엇는가를.

  • 10.02.12 19:09

    lhsz// '18세기' 조선이 보유한 환곡이 1천만석인데 가난하다????????????? 1년에 환곡으로 버는 수익이 70만석 ㅋ

  • 10.02.11 10:05

    조선의 인구정체, 증가를 비교하려면 불란서 보다는 가깝고, 먹거리도 비슷하고 지금까지 조세에 관한 열띤 비교토론도 했던 일본이 낫지 않을까요? 일본 역사인구학의 대가 '하야미 아키라'(速水融) 레이타쿠대 명예교수는 "일본 중동부 노비(濃尾)지역의 농촌인구와 가축 변천사를 추적한 결과 인구는 대폭 늘어난 반면 가축(주로 말)은 오히려 절반 이하로 격감한 것을 발견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일본 인구는 1000만 명에서 3500만 명으로 3.5배, 경지 면적은 2배, 곡물 생산량은 4배 증가했다."고 했다.(동아닷컴 2006,12,13) 그렇다면 조선에서 500년 동안 인구가 4배 증가 한 것은 그리 놀랄만큼 큰 증가는 아닌것 같군요..

  • 10.02.12 15:18

    ...산업혁명 이전에 300여년만에 인구가 3.5배로 뛰었다고요? 좀 과장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정도 인구증가가 가능할까요?
    그것도 1000만대 인구에서 3.5배라니...

  • 10.02.12 17:36

    가능한 추정이라 생각합니다. 일본과 같은경우 임란직후의 인구가 대략 1600백만 내외정도라 추산합니다. 그러다가 대략 에도시대 초기 2600백만 -> 말기 2800백만. 을 칩니다. 다이쇼 9년에(1920)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인구센서스에 잡힌 인구의 총수가 5600만. 인구가 순식간에 2배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에도시대말엽부터 인구가. 대략 3천만~3500백만은 넘었다고 봐도. 대략 무방은 할듯 싶습니다. 조선시대의 수취율에 관하여선 제가 이후로 나름 자료를 더 찾아봤습니다만. 수탈이 중기 이후부터 높았다는 견해를 나타내는 것도 있고 아니다. 조선의 수취는. 낮은 수준이었다. 를 언급하는 견해도 있더군요.

  • 10.02.12 17:39

    뭐가 맞는 이야기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니. 대략 모르겟네요. -_=; 근데 지금도 이해가 안가는건. 그렇게 수취율이 낮았다면. (어떤견해에선 병작반수도 다 받아간거는 아니다고 하던데. ) 인구는 왜 그렇게 늘지 않았으며 또한 나라는 대체 왜 그렇게 가난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백성도 가난하고. 국가도 가난했죠. 전 구한말 국가가 가난했던 사유의 상당을. 전형적인 국가는 가난하고. 개인은 부자가 되어가는 현상이라 생각했었거든요. (비공식적 구조하에서 진행된 착복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국고로 이전되어야 할 부의 상당이.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버린.)

  • 10.02.12 18:07

    마찬가지 추산으로 500년간 최대 4배(500만->2000만)까지 나옵니다. 이게 어떻게 인구가 늘지 않은 거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가요.
    여기서 말이 나온 일본 인구 증가율이 기겁할 수준인데, 알아보니 동시기 중국 연평균 증가율의 두배에 달합니다. 일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인구증가가 정체된 게 아니에요. 일본이 유별났던 거지.(장기간의 전란 종식의 힘)
    세계 평균을 따져도 마찬가지입니다. 1620년 5억 5천만 인구가 1820년 약 10억까지, 2배 느는데 270년. 조선은 평균치를 살짝 웃도는 인구증가를 보였습니다.

  • 10.02.12 18:11

    백성이 가난했다, 는 건 어떤 기준으로 잡은 건지요. 일반 대다수 백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주변국보다 오히려 부유한 편 아니던가요. 일본에서 보여지던 극소수에게로의 부의 집중과 이를 통한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진 뒤에는 백성들의 비참한 삶이 있지요. 자본 축적을 못했다고, 그러니까 백성들에게서 더 빡세게 세금을 걷고 지주층이나 극소수 상류층이 그 아랫계층을 혹독하고 인정사정봐주지 않게 굴지 않았다고 까여야 한다는 건가요.

  • 10.02.12 18:43

    그런데. 조선시대의 인구에 대한 견해는 견해가 전부다 제각각입니다. 2천만을 언급한 분도 있긴 하나. (1750년대. ) 그의 반수인 990만을 언급한 학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보아 1750년대의 조선의 인구는 1100만을 넘지 못했다고 하는게. 일반적이죠. 사실 제가 처음에 조선의 수취가 과도했다고 인지한게. 이러한. 인구의 증가의 정체의 영향이 컸습니다. 공식 비공식 수취가 폭압적이니. 잉여가 국민들에게 모이지 못했고. 잉여가 모이지 못하니. 인구가 늘지않았다로. (1700년대는 아시아 중국일본모두. 인구증가의 시대라 불릴만 했죠. 중국의 경우도 강희 년간 1억1천만에 불과하던. 인구가 도광 년간에 4억대로 폭증했으니.)

  • 10.02.12 18:31

    아울러 저는 기본적으로 민중주의적 입장으로 왜 국가가 혹독하게 백성을 쥐어짜지 않았느냐? 라 비난하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심하게 쥐어짰다고 하는걸 비난하는 입장이지요. 그리고 전 국가가 가난해지고 자본축적을 하지 못한 그 이유의 상당을 부의 전이에서 찾았죠. 즉 국고로 들어가야할 부가.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버린 현상. (애초에 제가 쥐여짜였다고 하는건. 공식적 부분만은 아닌 공식 비공식을. 모두 아우르는 그 어떤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부분에서 세율 부분에 있어서는 오류가 많았던듯하니. 견해를 완전히 바꾸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가는건 어쩔 수 없네요.)

  • 10.02.13 00:26

    고려 말기~조선 초기 (1400년대)인구가 지속된 전란으로 인해 500만 대에서 맴도는 걸로 추정되는 걸 생각하면 300년만에 두배로 늘어난 겁니다만.
    이걸 인구증가의 정체로 본다면 할 말이 없지요.
    청나라의 인구증가에는 제도의 변화를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론 강희제 시기를 즈음해서 지정은제 시행으로 숨어살 필요가 줄어 호구조사의 신뢰도가 대폭 증가했던 걸로 알고 있지요. 명나라 후기에 파악 인구수는 5천만인데 실 인구는 이미 1억을 돌파했던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명 후기때 1억을 찍었다면, 강희제 시기의 실 인구는 얼마였을까요.

  • 10.02.13 12:50

    국민 평균소득이 도토리 키재기인 전근대 사회에서 자본 축적이 되려면 그만큼 쥐어짜야 나오는 건데요. 조선이 자본축적을 못한게 개인에게 부가 몰려서라면 이건 '자본 축적을 못했다. 이유는 자본이 축적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라는, 모순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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