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4월17일 새벽, 여덟 척의 미군 함정이 B-26의 호위를 받으며 쿠바 남쪽 해안 돼지만을 향해 출항한다. 함정에는 1,400명의 쿠바 망명자로 구성된 상륙부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쿠바를 기습하여 카스트로의 사회주의정권을 전복시키는 것. 하지만 함정의 대부분은 쿠바 연안의 암초에 걸렸고, B-26은 쿠바공군의 전투기에 격추당하고 만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상륙을 강해한 부대원들 중 100명은 중무장한 쿠바 경비대에 의해 사살되고, 나머지 부대원들 중 대부분은 포로로 잡혔다.
미국의 대지만 침공이 실패로 돌아간 후 쿠바는 미국에게 내정간섭의 죄를 물으며 포로교환의 조건으로 거액의 보상비를 요구했고, 미국은 쿠바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돼지만 참사 이후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은 더욱 공고해졌고, 미국은 소련과 핵전쟁을 벌어야 할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미국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가장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기록된다.
돼지만 사건은 미국 케네디 정권 시절의 이야기다. 그 무렵 쿠바는 소련의 협조 하에 미국 본토를 겨냥한 중거리미사일을 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정부는 미국 내 최고의 엘레트들을 소집하여 밤낮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워낙에 각 분야에서 가장 잘났다는 사람들인지라 처음에는 각양각색의 주장과 놀리들이 난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몇날 몇일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다보니 결국 논의는 하나로 모아졌다. 쿠바망명자들, 즉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을 훈련시킨 후 돼지만에 상륙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쿠바의 내부봉기처럼 보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순진한 발상도 깔려 있었다.
케네디와 그의 엘리트 참모들은 어떻게 그런 엉터리 같은 계획을 만들어냈을까? 애초부터 문제점과 허점이 많았던 이 계획에 어째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 돼지만 참사를 언급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상태에서 폐쇄된 장소에 모여 장시간 논의하다보면 ‘돼지떼’처럼 우매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당시 돼지만 기습작전을 계획하던 자리에 참석했던 안보보좌관의 술회에 따르면, 당시 이 계획의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엉터리 같은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백악관 특보를 지낸 역사학자 아서 슐레전저는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작전을 당장 그만두라고 경고하고 싶었지만, 회의 분위기에 눌려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러한 집단사고 현상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엘리트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독선에 빠진 나머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부도덕한 존재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데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을 대표하는 리더는 집단의견을 거부하는 자에게 만장일치가 되도록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사람도 집단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결정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는 잘못된 결정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집단사고 현상의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패로 끝나거나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았던 역대 수많은 정책들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들 한두 가지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위 ‘소신파’라 불리는 소수의견은 집단 내에서 미운털 박힌 존재로 낙인 찍히고, 이렇게 형성된 집단사고는 종종 돼지만 참사와 같은 비극이나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의사결정은 가급적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 집단이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최고의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참사는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거나 반론이 적지 않을 경우 억지로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편이 옳은 결정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만장일치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성취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만장일치의 감동을 억지로 끌어낼 일은 아니다. 언제라도 돼지만 참사는 일어날 수 있다.
참고문헌=>지식프라임 p172~p175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같아 올려봅니다..
첫댓글 하고싶은말을 써..어렵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