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유키오 鳩山由紀夫 (1871 ~ 1907)】
"일본 前 내각총리대신의 국가를 대신한 진정한 성찰과 사과"
“일본의 전 총리로서, 한 일본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77) 전 총리는 한 시간 가까이 머물며 신발을 벗고 큰절을 올렸다. 11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도 “피해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더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8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일본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으니까요. 후회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향한 하토야마의 진심은 그의 배경이나 정치 이력을 보면 더 와 닿는다. 유약하다는 평가와 달리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마음먹으면 결단해 왔다. 일본의 케네디가, 최고 명문가로 꼽히는 ‘하토야마 가문’의 장손인 그는 1986년 집안의 정치 성향에 따라 자민당 간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보수 지형에서 화려한 정치력을 가졌기에 당연한 길로 여겨졌다. 어머니는 일본 재벌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업자의 장녀다. 정계 입문 시기 “피는 못 속인다”는 혹독한 평가가 있었던 이유다.
하토야마는 무난한 길을 포기했다. 뿌리 깊은 기득권에 맞선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는 꿈을 밝히며 93년 자민당을 탈당한 것. 96년 민주당을 창당한 후엔 엄청난 비난을 듣고 정치적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야당과 합당하려고 생각이 다른 세력도 껴안는 결단도 보였다. 2009년,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정책 혼선 등의 책임을 지고 8개월 만에 사퇴해 단명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정치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작은 노력 역시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못 했죠.”
진심이었다. 일본 정치인 여럿이 과거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가 꿇은 무릎은 또 다른 울림을 줬다. “일본의 전 총리로서, 한 일본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2015년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77) 전 총리는 한 시간 가까이 머물며 신발을 벗고 큰절을 올렸다. 11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금도 “피해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더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극단의 세력은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며 언제든 반일 감정을 부추길 준비를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최근 비공개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하토야마 전 총리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8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일본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그게 제 솔직한 마음이었으니까요. 후회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향한 하토야마의 진심은 그의 배경이나 정치 이력을 보면 더 와 닿는다. 유약하다는 평가와 달리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마음먹으면 결단해 왔다. 일본의 케네디가, 최고 명문가로 꼽히는 ‘하토야마 가문’의 장손인 그는 1986년 집안의 정치 성향에 따라 자민당 간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보수 지형에서 화려한 정치력을 가졌기에 당연한 길로 여겨졌다. 어머니는 일본 재벌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업자의 장녀다. 정계 입문 시기 “피는 못 속인다”는 혹독한 평가가 있었던 이유다.
하토야마는 무난한 길을 포기했다. 뿌리 깊은 기득권에 맞선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는 꿈을 밝히며 93년 자민당을 탈당한 것. 96년 민주당을 창당한 후엔 엄청난 비난을 듣고 정치적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야당과 합당하려고 생각이 다른 세력도 껴안는 결단도 보였다. 2009년,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정책 혼선 등의 책임을 지고 8개월 만에 사퇴해 단명한 정권이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정치를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작은 노력 역시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못 했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8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했다. 그가 추모비에 헌화한 뒤 무릎을 꿇은 모습.
◇국가를 대신한 일본 지도자의 통렬한 사과였다
하토야마는 일본 내 몇 안 되는 지한파 정치인이다. 그는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요구했다. 유관순 이름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직후 “나를 맞이하는 데 쓴 화환 비용은 내가 내겠다”며 3만엔(약 30만원)을 건넨 데서도 진정성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 일본 한 연구소의 2001년 이후 취임한 일본 총리 9명 호감도 조사에서 그는 꼴찌를 기록했다. 애국심 때문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그는 꿋꿋하게 갈 길을 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