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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이 부서지리라(호8:5-7)
[5]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6]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신앙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사신 우상이라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정신적인 면이나 윤리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허례 허식이요, 낭비 중 낭비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기사를 빼고 난다면 그 분량이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이토록 하나님이 미워하였기에 백성들을 돌이키도록 하고자 중점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은 마치 내가 잘했거나 못했거나 무조건 부모님이 잘해주시고 편들어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낸 신앙이 바로 사마리아의 송아지 신앙입니다. 마치 송아지가 그들을 위하여 끝까지 희생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조건 잘되도록 해주셔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운 송아지 우상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하는 하나의 자위 행위라고 할 수 있으니 그나마도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송아지는 사람이 만든 우리에서 키워서 밭을 잘게 하는 등 사람을 위하여 소용되는 짐승일 뿐입니다.
이러한 송아지의 형상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여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송아지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인데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신이 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미련한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마땅히 가증히 여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한 그들은 무죄할 수 없습니다. 우상에서 자신을 떼어낼 때, 이스라엘은 무죄합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가 우상처럼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실로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전쟁의 파노라마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상에 마음이 팔립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서 마음에 확실하게 각인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우상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에도 이스라엘은 우상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그 우상과 함께 우리도 하나님 앞에 큰 징계를 받기 전에 그 우상을 버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인간들은 아무리 애써도 결국은 터진 웅덩이에 물을 붓는 격이므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1.무죄하지 않았습니다.(5)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호세아서는 사마리아의 송아지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 즉 다윗과 솔로몬이 왕이었을 때는 하나님을 향한 제사와 예배는 한곳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이외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다른 장소가 없었습니다. 분단된 북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딜레마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이 남 유다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북이스라엘을 창시한 여로보암1세는 큰 고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이 명절만 되면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 성전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계속 이러다간 결국 성전 때문에 민심이 남유다로 향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무슨 일을 했냐면 북이스라엘의 북단과 남단에 있는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어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게 했습니다.
호세아선지자가 사마리아의 송아지라고 적어놓은 것은 아마도 단과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를 빗댄 말일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축 대신 농사를 짓게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올리브 농사, 포도 농사, 호밀 농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농사의 신인 바알과 그 상징인 송아지 숭배가 중요하고 상황에 적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한 가나안땅 사람들은 농사짓는 데 도움이 되는 소가 풍요와 재물과 부귀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 시골에서는 소 한 마리가 한 가족을 먹여 살렸죠? 소가 대들보였습니다. 게다가 자식 대학 공부도 시켰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시작부터 자빠졌으며, 이후 돌이킴은 없었습니다. 벧엘의 금송아지는 북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나라에서 관리하던 국가 신전이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우상 숭배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으니, 그들은 무죄했던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때 좌절과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조금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5절에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리웠느니라”
이 말은 사마리아가 숭배하던 송아지 우상이 그들에게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만 조각한 송아지일 뿐이므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예배를 받지도 못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은 그들에게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는 무지함으로 송아지 우상을 숭배함으로 그것으로부터 어떤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불러일으켰을 뿐입니다.
그리고 “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무죄는 히브리어로“닉카욘”인데“순결하다, 깨끗하다”을 뜻하는“나카”에서 유래한 것으로“청결, 깨끗함, 무죄”을 의미합니다, 비유적으로는“손이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표준 새번역은“너희가 언제 깨끗해지겠느냐?”
흠정역은“그들이 무죄함에 이르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겠느냐?”
공동번역은“이스라엘 백성이 언제라야 순결해지겠느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그들이 어느 때까지 정결하지 않을 것인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계속적으로 불의와 부정 가운데 거한 것을 꼬집어 말한 것입니다.
도대체 우상숭배 대체 언제까지 하려느냐? 언제쯤에야 내게 돌아오겠느냐? 하나님께서 너무 화가 나셔서 대놓고 우상에 대해서 까내리기 시작하십니다.
또한 어느 때까지 무죄 하곘느냐는 것은 우상으로 자신을 더럽히는 대신 주 앞에서 언제 깨끗한 길을 걷겠는가? [랑게 주석]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거룩하고 순결하기를 기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우상 숭배와 음란에 빠져 여호와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그들에 대한 심판을 쏟아 부을 것을 작정하신 것이다. 이처럼 격양된 어조의 수사 의문문 표현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깨끗해지는 것을 아예 포기하신 것이나 다름없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스포드 성경원어 사전]
사람의 생명은 거룩과 순결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이는 죄가 주는 독특한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가볍게 생각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고 서로 봐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죄를 봐주지 않습니다. 죄는 정당화 할 수 없고, 합리화할 수 없고, 상대화할 수 없습니다. 죄는 우리의 인격과 영혼을 부패시킵니다.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를 파괴시킵니다. 각종 무서운 성병과 AIDS로 인류를 공포로 몰아 넣습니다.
로마서13장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는 결국 의로 옷 입는 삶, 진리로 옷 입는 삶, 거룩함으로 옷 입는 삶,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삶’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의롭게 사는 삶입니다.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좇아 진리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거룩하고 순결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죄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무죄할 수 있도록 죄악 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참 신이 아닙니다.(6)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사람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신은 거짓된 신이며 우상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중심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창조주를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은, 금으로 만든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우상숭배의 전형적 현상, 언의불일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그 우상들은 공장에서 만든 신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우상이 그들의 신이 되고 경배의 대상이 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선지자 호세아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는데, 어찌하여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건들 앞에 스스로 엎드려 절하는 신세로 전락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기 복과 성공을 기원하는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것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덧없는 사람의 작품이고 작업일 뿐이라며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일깨웁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들의 안전과 풍요를 우선하는 저들의 기복신앙적인 우상 숭배가 민족 파멸을 자초하는 모든 도덕적인 죄악의 근원이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부적들입니다.
문설주나 천정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심지어는 팬티 속에도 부적을 넣고 다니고, 자동차 엔진룸에도 마른 명태와 명주실을 함께 묶어서 다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금 은으로 우상을 만들었으나 그들은 파괴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버려질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를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며 참 신이 아니기 때문에 사마리아의 금송아지는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선언하십니다. 그것은 한낱 우상에 불과하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하십니다. 우상은 우상일 뿐이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따라서 아무리 이스라엘이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외칠지라도 그들의 진정성 없는 부르짖음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만든 송아지 우상을 산산조각 내실 것인데 그것은 참 신이 아니라 대장장이가 만든 한낱 쇳조각에 불과한 놋뱀 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신이 이스라엘에서 나겠습니까? 그리고 신을 이스라엘이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스스로 신을 만들어 내고 이 신이 우리를 돕는다며 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하는 신을 생각하며 행하는 모든 제사는 분명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자신을 위한 제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레미야 선지자도 유다 말기에 우상 숭배를 범하는 유다 백성들을 책망하며 그들에게 임할 징벌을 예언하면서, 우상은 손으로 만든 것인 바 전혀 쓸모없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렘1:16;10:3,9;25:6,7).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만든 거짓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참 신이십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섬겨야 하는 신은 참 신 여호와 하나님 뿐 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다 신이 아닙니다. 그저 위대하고 장엄하게 보이는 자연 현상일 뿐이며, 사람들이 자기의 손으로 깎아 만든 우상입니다. 그 우상의 재료도 다양하여 흙으로 빚거나, 나무로 깎아 만든 것도 있고, 돌로 다듬어 조각한 것도 있습니다. 조금 더 귀중하게 만든 것들은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물의 가공한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송아지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이 세상에서도 쫓아내야 할 많은 이방 민족의 풍습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들입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한다면 이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들을 우리 삶속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물질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명예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즐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협력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3.이방 사람이 삼킵니다.(7)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의 열매를 거둬 가시겠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지 않고 우상 앞에 가서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신사 앞에 나가 복을 빌었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산에 저주를 내리시어 아무 것도 거둘 수 없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보호 속에 거하였을 때는 그들이 심지 않은 과실을 먹을 수가 있었고 그들이 짓지 아니한 집에서 살수 있었지만(가나안 정복시) 하나님을 떠났을 때는 자신이 피땀 흘려 수고하여 심은 열매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풍에 불려 쭉정이 같이 흩어지는 운명을 피할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이같은 강한 어조의 메시지는 복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증거 해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겸손히 섬길 때 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만들고 섬긴 금송아지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참 신이 아닌 그것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람과 같은 헛된 것인데, 그들은 바람과 같은 헛된 우상을 만들고 세워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광풍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들이 심은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그들에게 혹시 좋은 것이 있을지라도 이방 사람들이 삼킬 것입니다.
본문7절에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람'은 공허한 것이요 죄를 상징합니다. '광풍'은 멸망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들이 심은 '죄'라는 바람은 더욱더 가중되어 광풍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바람을 심었기 때문에 광풍을 거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겨우 열매가 맺은 것이 있다할지라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심어도, 줄기가 없고, 열매가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혹 어쩌다 열매가 맺혀도, 대적들이 다 빼앗아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되는 게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짱 헛수고인 인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광풍을 거둡니다.
이런 인상적인 방식으로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황폐함이 모든 악행 위에 피할 수 없게 내리게 됨을 보여 줍니다(잠14:11-12)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셨 다고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적인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떠한 노력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부르짖음밖에는 그 징계를 벗 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으며 회개하면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 리를 감싸주시며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자손 천대까지 누리는 복을 주십니다.
시편127편1-2잘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아무리 사람이 노력하고 심지어 근면 성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전도서2장23절에 “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헛된 일을 행하여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이 헛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헛된 수고를 한다고 하였고(전2:11), 헛된 자만으로 미혹한다고 하였으며(렘23:32), 헛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였고(마5:33), 헛된 경배를 한다고 했습니다(마15:9). 그리고 헛된 영광을 구한다고 하였고(갈5:26), 헛된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딤후2:16).
간혹 그리스도인은 신앙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결정과 행위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 할 때 고난받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해 원치 않는 고난을 받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벧전 4:15).
이 원칙은 구약에서 한 번, 신약에서 두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7절과 고린도후서 9장6절, 갈리디아서 6장7~8절입니다.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잘 압니다. 대부분의 고난은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죄와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는 것은 죄 가운데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선한 열매가 맺을 수 없습니다. 혹시 그들이 기뻐할만한 것을 잠시 맺는 것 같다가도 이방 사람이 삼킬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열매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기 때문에 큰 소리 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 최선의 노력도 헛수고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연약한 사람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닫칠 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적극적인 삶을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무죄하지 않았습니다.(5)
2.참 신이 아닙니다.(6)
3.이방 사람이 삼킵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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