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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찬 사진집 <잃어버린 풍경> 표지. | 요즘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담긴 책'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사진집과 사진전 '골목 안 풍경'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예술가 김기찬의 <잃어버린 풍경>이 특별히 나를 사로잡았다.
이 책 속에는 글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한 쪽 한 쪽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김기찬의 사진예술이 지니고 있는 '순수'라는 상징의 무게, 그 '짙은 색감'이 주는 강렬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 냄새는 도시 속에서는 도무지 맡을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산에서 민박한 뒤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맡을 수 있는, 새벽안개가 걷히면서 조용하게 다가오는 아주 청량하고 시원한 것이었다.
<골목 안 풍경>이 그랬듯이 그가 창조해낸 <잃어버린 풍경> 속의 농촌 풍경들은 책을 넘긴 밤새 나를 사로잡았고, 벌써 며칠째 자신들의 모습을 내 가까이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좋은 사진이 지닐 수 있는 !
가장 무서운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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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초가와 고목이지만, 그래도 이것이 아름답다. | 이 책 속의 '그리운' 사진 풍경들은 정확히 말하면 1967년에서 1988년까지 22년 동안 저자가 흑백필름에 담은 것들이다. 그러고 16년 뒤인 2004년 9월 들어서 비로소 책으로 펴내게 되었으니, 독자들에게 예술가의 창조물을 내보이기까지에는 상당히 내밀한 고뇌의 과정을 거쳤던 것으로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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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 초가집의 이 둥근 아름다움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 무엇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사진예술가를 '잃어버린 풍경'이라는 영원한 화두 속으로 끌어들였던 걸까? 마침 이 사진집에 수록된 '내 마음의 풍경'이라는 김기찬의 수필 한 편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유년시절 외가의 농촌 마을이나 피난시절 가난했던 시골 생활이 아직도 마음 속에 아름다운 고향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복잡하고 각박해진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내지 5쪽)
그의 유년시절은 왜정 말기였다. 그의 외가는 통일로를 북쪽으로 따라가다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있는 공릉 안길에서 5리쯤 더 들어가야 간신히 찾아갈 수 있는 파주군 조리면 장곡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릉 안길 5리쯤에 서 있는 서낭당 마루턱에서 내려다보면 큰 개울물이 흐르고 ?
獵쨉? 그 개울 건너 멀리 보이는 팔십여 호의 농촌 마을이 바로 턱골이다.
유복자였던 외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하여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턱골 외가에는 저자의 외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시어머니 두 분만이 적적하게 사셨다. 그래서 저자의 어머니는 저자를 데리고 외가에 자주 가시곤 했다.
그때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목탄차. 목탄버스 뒤에 매달아 놓은 통 안에 참숯을 넣고 풍구를 돌려 불을 피워야 움직이는 그 작은 만원버스는 힘이 너무나 약해, (지금의 독립문 뒤에 있는) 무악재를 넘으려면 노약자만 남겨 놓고 승객들 모두가 내려서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야 할 정도였다.
공릉 앞 큰 행길에서 어머니 손에 매달려 능 안 길을 지나 서낭당 고개를 넘어서면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걸렸고, 턱골 마을은 저녁연기가 온 마을을 감싸안고 있었다. (내지 5쪽)
그렇게 찾아간 유년시절의 저자는, 가사(家事) 때문에 서울로 돌아간 어머니가 자기를 데려올 날을 기다리는 동안, 마을의 또래 아이들과 논두렁 밭 두렁을 뛰어다니며 놀기도 하고!
, 어머니를 보고 싶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외증조 할머니에게서 !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해방되고 몇 년 뒤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겪는 어려운 시절에 이어, 1.4후퇴 때 온양 구 읍으로 피난을 가서 소년 시절의 저자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나무꾼 시절을 보낸다.
아침이면 피난민들이 줄을 지어 땔감을 찾아 삼십여 리나 되는 광덕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아버지는 부산으로 떠나셨고, 어린 나는 나무꾼 대열에 끼어 들었다. 드문드문 산 중턱의 초가 마을은 그 정취를 더했다. 나무를 해서 짊어지고 내려오다 배가 고파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을 모아 마셨던 그 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6~7쪽)
주리고 힘든 생활을 보낸 뒤에 서울로 돌아와 중학생이 된 저자는 우연히 월북작가 이기영의 '고향'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는데, 그 무대가 바로 이기영의 고향인 모산이요, 그 모산은 저자가 피란시절에 나무를 하며 머물렀던 온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장이었다. 이기영의 소설에 나오는 광덕산의 싸리버섯 등 이런저런 농촌 이야기는 중학생 김기찬을 매료시켰다.
사진예술가 김기찬의 유년시절 외가나 소년시절?
?온양 구읍 광덕산은 그가 나이를 먹어도 잊히지 않는 장소들로 저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어느덧 마음에 큰 밭을 이루어 자리잡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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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삿상을 차리기 위해 빈대떡을 부치는 고골의 할머니. | 그래서 그는 서울역 앞의 행상과 골목 안 사진을 찍으면서도 힘들고 외로울 때면 경기도 일원, 오류동, 소사, 중동의 농촌 마을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덕소에서 쪽배를 타고 강 건너 미사리,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상사창리(고골)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 취재와 촬영 여행들이 '내 어린 날의 추억을 되뇌어 보려는 심사였는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는 1970년 중반쯤 잠실로 이사를 왔는데, 거의 농촌이나 다름없던 아파트 단지 주변의 허허벌판은 날이 갈수록 도시화해 콘크리트 건물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김기찬은 말한다.
석촌동, 송파, 방이동, 오금동… 우연히도 그 주변에서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나뒹구는 망부석을 보았다. 한둘이 아니었다. 묘의 봉분도 주저앉았다. 초등학교 시절 도심을 떠난 먼 소풍 길에서 보았던 그 육중했던 ?
졺關??묘 속의 주인을 지키다 본인마저 생명을 다한 것이다.
멀리서 아파트가 쳐들어오고 있었다. 새벽 별이 지면 동이 트던 동산도 아파트에 가려졌다. 해 지던 서산은 괴물 같은 기계덩어리가 깔아뭉개 버렸다. 나는 그 날 망부석의 소리 없는 죽음을 보고 잠실 주변이 도시화해 가는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서울 88올림픽이 결정된 후 그 속도는 더해 가고 있었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변하고 사라질 것인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존할 수는 없는 노릇인가.
한편 김기찬은 2002년 제3회 이명동 사진상 수상, 2003년 사진집 <역전풍경>(눈빛 발행)으로 제34회 백상출판문화상 사진부문 출판상, 2004년 동강사진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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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밭을 없애고 들어선 아파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모습이 안쓰럽다. | 이 고장 저 고장을 떠돌며 살아온 나는 사실, 태어난 고향에만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 사람이다. 가령 '북녘에 두고 온 내 고향 땅을 죽기 전에 꼭 한번 밟고 싶소'하고 소원을 비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한에 가슴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는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태어난 곳뿐이랴'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운 땅을 참 많이도 가슴에 지니고 산다. 내가 태어난 호반의 도시 강원도 춘천뿐만 아니라, 남한강이 깊은 숨결로 흐르는 아버지의 고향 충청북도 제천, 춘천에 살 때 방학 때면 자주 놀러오곤 하던 서울 창신동 빈민가, 내가 첫 직장 생활을 하던 경기도 수원, 사슴 키우던 집에 세 들어 살던 집이 있던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과 통일로…. 이 모든 곳을 나는 그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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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을 가는 농부 저 멀리로 바라보이는 아파트도 이제는 구식이다. | 이 책의 말미에 이르면 제13회 전태일문학상(총선 선거운동상황을 기록한 '선대본 일기'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특별상을 받은 문학상) 소설부문 심사위원인 공선옥의 글 맛도 볼 수 있다. 김기찬의 사진을 보듯이 진지하게 다가서서 읽어야 할 '사진집 감상문'이 꽤 여러 쪽 담겨 있는 것이다.
공선옥은 글의 말미에서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에서 나는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집과 그래도 내가 열망할 수밖에 없는 집을 본다. 그래서 내게 이 사진집은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꿈,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열망할 수밖에 없는 꿈에 관한 기록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던 소중한 땅들에 대해 무심했던 사람들, 이 책 <잃어버린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라. 날로 인정이 사라져 가는 각박한 21세기 정보사회, 콘크리트 사회 속에서, 당신이 잃어버렸던!
소중한 추억들이 어느 순간, 강바람에 살며시 엎드렸다 일어서길 반복하는 잔잔한 강 물결이 되어 '어머니 목소리'처럼 편안하게 피어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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