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산
아버지는 나의 제 1호 자산이다. 나는 노래 부르기를 참 좋아한다. 처음부터 좋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지력이 있고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습관, 지금도 설거지 하다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는 말처럼 습관이 형성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요인이 있으니 어쩌면 어머니 뱃속에 들었을 때부터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지 싶다. 아이와 함께 유행가를 부르는 미남 아버지! 적어도 내 눈에 최고의 미남이셨던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되던 해부터 지병으로 힘들어 하셨지만 늘 웃음과 위트를 지니셨던 분이다.
깜깜 하늘에 별 한 개 한 개가 막 태어난 듯 맑은 빛을 띄우는 여름밤이면 마당 평상에서 "우리 큰 딸 착하다"란 그 말씀에 아버지 등 두드려드리기와 부채질 50번을 기어코 한다. 팔이 아파도 다 두드려 드리고 부채질 열 번을 더 해드린다. 아버지는 "나도 갚아줘야지" 하시며 "무슨 노래 가르쳐 줄까?"하신다. 수많은 노래를 배웠다. 고복수, 황금심, 남인수, 박재홍 등의 노래로 `타향살이` `님이라 부르리까` `애수의 소야곡` `유정 천리` 같은 유행가들이었다.
지금 내가 가수도 아니고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즐겁게 흥얼거린다는 건 정말 좋은 습관인 것 같다. 마음 평안 없이는 불가능한 습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웃음과 여유란 자산을 주셨는데 덤으로 한 가지, 옛날 유행가 가사의 함축성은 내가 어릴 때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돼 주었으니 큰 자산이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 때 자산 1호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니 아닌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고비에서 내가 툴툴 털고 웃을 수 있는 `맑은 여유`란 자산을 마련해주셨다. 아버지와의 교감 형성이 자존감을 높이는 영향을 준다는 연구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딱 그 사례이다.
어머니는 나의 2호 자산이다. 어머니는 내가 만난 세상의 여성 중에서 단연 일등이신 분이다. 내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건 엄청난 축복인 거다.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와 신중함을 주셨다. 많이 듣고 신중하게 말하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내가 여직 그 말씀을 이행 못하는 미련퉁이긴 해도 아무튼 그 말씀 덕에 수많은 추가자산을 마련했으니 어머니는 알짜 자산을 주신 거다.
스물두 살 복스러운 새댁 어머니가 나를 만나셨을 때 나는 얼마나 귀여운 아기였을까? "옷이 초라해서 그렇지 네가 제일 예뻤단다. 나는 깔끔하게는 입혔었디라" 하시는 어머니, 부잣집 딸이다가 가난 끝을 경험하신 어머니는 자존감이 높은 분으로 성현들의 말씀을 잘 인용하시는데 대단한 능력이 있다. 유효적절한 한 마디들은 또 하나 나의 자산으로 등재된다.
어머니는 관절 수술 이후 지금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는 중이시다. "야야, 네가 웃기는 하는데 작년에 웃던 그 표정이 아니구나. 너는 그 웃음이 참 이쁜데…" 하는 말씀에 나는 나를 돌아보고 살피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발견하고 아버지의 웃음 자산으로 곧 해결하곤 한다. 성년이 된 이후 지금껏 내가 어머니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항상 살펴주신다. 어머니는 어떤 여성이 되어야 하는가,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과 실천으로 보여주시며 강함은 부드러움으로부터 비롯됨을 전승해 주신 나의 2호 큰 자산이다. 아버지에 순번을 밀린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하실지, 쉿! 섭섭하실 테니 이 비밀을 꼭 지켜주면 좋겠다.
세상에! 나는 어느 새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있구나! 남편은 내 인생의 특별 자산, 사랑스런 내 아이들은 당연히 0순위 자산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순번을 매기려니 한 사람씩 들먹여야 한다. 누군가 삐질 것이다. 이 비밀은 지키기가 상당히 곤란하므로 어머니가 주신 신중함이란 자산을 활용한 결과 생략함이 옳은 것 같다.
사랑을 받는다는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일지라도 행복하다.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 보는 재미는 쏠쏠 그 자체다. 모르긴 해도 십 년 넘게 떠올려도 다 끝날 것 같지 않다. 파노라마로 쫙 떠올려진다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자산항목에 없으니, 방법을 몰라 매일 새벽 나는 내 인생의 책을 서너 장씩 펼쳐 읽으며 그 책 속에 삽화처럼 스쳐 나오는 얼굴들에게 참 고맙다 인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읽은 많은 책들, 내가 들은 많은 이야기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다 자산이 되니 어쩜 행복은 바로 자산 순이지 싶다.
나는 부자 중의 부자! 줄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자산으로 하여 내 인생은 탄탄대로다. 언제라도 늘 두둑하니 드리고 또 드릴게, 필요한 이 있으면 모두모두 요기요기 다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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