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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오직 하나뿐인 희망 행1:1-3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
하늘 아래 오직 복음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게 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누가입니다.
그는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1:1-4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사도 바울과 동행했던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사실 이런 말로 편지를 썼습니다.
"일어난 일을 각하에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 권세가들이 평범하고 단순하며 무식하고 무지하다고 여긴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래는 남자 열두 명뿐이었는데 약간의 사람들이 가세했습니다.
이들은 내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었고 유명하지도 않았으며,
지위도 돈도 통신수단도 선전수단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무지하고 무식한 소수의 사람들이,
사도행전 17장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행17:6,KJV)는 것입니다.
불과 200년 사이에 기독교는 대로마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토록 짧은 기간에 기독교를 공인할 정도로,
소수의 사람들이 로마제국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습니까?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첫째, 출발점이자 근본적인 것은, 기독교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행 1:1-3).
주 예수 그리스도는 초대교회에서 설교의 주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적용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그분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기 시작하신 모든 것."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
주님은 이들을 내보내시면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전파할 것이다."
이것이 제자들이 가르친 전부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에 대해 뭐라고 말했습니까?
1)주님이 하신 일과 2)그분의 가르침, 이 둘은 항상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 가장 특별한 것을 추가하셨습니다.
"너희가‥‥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가난하게 태어나 목수 일을 하던 한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는 서른 살에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약 3년 후에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바로 그분이 여기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온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 땅 끝까지 선포되어야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라는 분에게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누가가 뭐라고 하는지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자신이 복음서에서 기록한 모든 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복음서를 쓴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행하기 시작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누가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난 일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여인들 중에 가장 복된 자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가 크게 되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차지하실 것이며,
그분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이 모든 것을 읽어 보십시오.
마리아는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처녀인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이 말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
이것이 누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게 태어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영원에서 나와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천국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셨습니다. 기적은 상징이었고 사람들이 와서 보았습니다.
누가는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보러 왔을 때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했으며"(눅5:17) 그분으로 인해 큰 소요가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일도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원수들이 자신을 증오하여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아셨고,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는 헤롯 왕도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눅9:51).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체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재판에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으셨고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가로질러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며,
몹시 지쳐서 도중에 다른 사람이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분은 십자가에 달린 채 죽으셨습니다.
두 친구가 그분의 시신을 내려 무덤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의 결박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누가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처럼,
그분은 몇몇 제자들과 그밖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시사
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1:3).
누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오빌로 각하, 알고 싶으시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예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분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셨고, 가르치셨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셨고, 죽으셨습니다. 장사지낸 바 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아주 확실한 증거들을 많이 제시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사실입니다.
누가는 실제로 이렇게 말합니다. "데오빌로 각하, 각하께서는 이 사실들을 믿으셔야 합니다.예수님을 빼고는 어떤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일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요8:58).
그분은 자신을 "인자"(人者)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1-22).
그분은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권세를 주장하셨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분은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그분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이것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가는 복음서에서 데오빌로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걸어가는 두 제자가 나옵니다.
얼마 전까지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죽고 난 지금, 그들은 극한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부활하신 예수에서 길을 가던 이들 사이에 나타나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이들 무리와 함께 하던 몇몇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이 있는 동산에 갔다 와서는
제자들에게 무덤이 비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였다"(눅24:11)고 성경은 말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께서 곁에 오셨지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이 낯선 사람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들려주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자라고 바랐노라"(눅24:21)고 말합니다.
이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너무나 놀라워했고,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들도 보았습니다.
이들은 그분이 틀림없는 메시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이제는 그분이 메시아이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5-26).
그날 저녁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제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나리라고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결코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 그리고 그분은 구운 생선을 조금 드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24:44).
모세의 책들과 선지서와 시편을 읽으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그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바로 무지(無知)라는 놈이 이 시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그들을 그리스도 밖에 잡아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기에 여러분을 위한 유일한 희망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런 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일이 갖는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24:45-47).
여기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왜 세상에 오셨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행했는지 직접 설명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지 못하며 본성적으로 악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며,
우리 죄를 용서받으며,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알며, 그분에게 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내일 아침이 되기 전에 죽어, 영원 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을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메시지를 어떻게 알릴 수 있습니까?
그 답은 바로 예수입니다. 사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파송하여 전파하게 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회개와 오직 내 이름으로만 가능한 죄사함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원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온 민족에게 이것을 전파하라.
나는 피부색이나 신분이나 신조에 개의치 않는다. 인류는 하나다.
모두가 죄인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모두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다. 구원자도 하나다. 너희는 그들에게 가서 나를 전하며 내 증인이 되라."
이것이 바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말한 기독교에 대한 전부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데오빌로 각하, 이제 두번째 보고서를 보냅니다.
그분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은 지금도 그분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영원한 영광중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말씀합니다(눅22:69).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8-20).
제자들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제자 삼아야 했습니다.
놀랍고 복된 이 말씀은 살아계신 예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영원하신 아버지요 창조주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일과 그 구속을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그 권세를 나타내시는 것을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어느 날 오후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자리를 펴고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고쳐 줌으로,
그가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시며 그 권세를 주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밖에 어떤 일을 계속하셨습니까?
다소 출신의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지독한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우리 주님을 증오했고 그분의 운동을 싫어했습니다.
나아가 믿는 자들을 감옥에, 심지어 죽음에 던져 넣음으로써
이 운동을 말살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작은 교회를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습니다.
사울은 이러한 권한을 받고 교회를 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내려갔습니다(행 9:1).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께서 다소의 사울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정오쯤에 사울은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행26:13).
바울은 "주여 뉘시오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행 9:5).
예수께서 계속해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바울을 쓰러뜨리고 낮추셨습니다.
그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바울을 회개로 이끄셨습니다. 예수께서 바울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승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분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 계시며, 사람들을 불러내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분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부활 후에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행1:3).
그분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적은 무리로 파송하지만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할 것이다.
나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나를 증거하라."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께서는 여기서 끝내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그분이 천국에서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합니다(히7:25).
그분은 인성(人性)을 그대로 지닌 채 천국으로 돌아가셨으며 , 그곳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언자이시며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약하고 무가치한 기도를 취하여,
하나님의 보좌 바로 앞에서 당신의 영광스런 중보를 통해 그 기도를 바꾸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셨습니다"(히4:15).
그런데 무엇 때문에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시험받는 자들을 - 바로 여러분과 저를 - 능히 도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히2: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그렇습니다. 내가 시련을 겪을 때 모든 친구들이 나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셨습니다"(딤후4:17)."
재판정에서 주님은 당신의 종 곁에 서 계셨으며,
바울은 그분이 거기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데마를 비롯해 바울의 모든 조력자들이 그를 버렸다는 사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했겠습니까?
주님이 그의 곁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면,
그분의 백성들은 박해를 받고 죽임당하여 온 교회가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개입하시고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마침내 그분이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 개개인을 악한 이 세상에서 구원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이시고,
그분이 다시 오실 그날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1:10-11은 이렇게 말합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예수께서 죽어 장사되었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의 메시지,
그가 데오빌로에게 쓴 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쓴 글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가실 때처럼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육체를 가지고, 볼 수 있도록, 하늘 구름을 타고,
거룩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큰 재물이 생긴다고 해서 그 재물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재물이 우리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영원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지옥에서,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습니까?
기독교의 본질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러 이 땅에 오셨는지 말해주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이제 여러분은 깨닫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