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8. 쇠날. 날씨: 따스해서 겉옷을 찾지 않는다. 조금 몸을 쓰니 땀이 난다.
아침열기-춤-텃밭(거름 넣고 밭 뒤집기)-텃밭 일지 쓰기-점심-청소-그림 그리기(젖은 그림)-다 함께 마침회-5,6학년
영어-교사마침회
[호미로, 삽으로, 쇠스랑으로]
쇠날은 따로 아침열기를 하기보다 잠깐 얼굴보고 바로 춤 수업에 들어간다. 서로 따라할 수 있는 몸풀기 동작을 하고, 굿거리와 자진몰이,
휘몰이 장단에 맞춰 몸을 풀어간다. 누리샘 5학년 장난꾸러기들이 집중하고 호흡을 잡아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싶은데 춤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신다.
텃밭 일은 거름 넣고 땅 뒤집기다. 깊은샘이 47평으로 잰 텃밭에 아이들이 둘러 서니 일이 척척이다. 거름푸대를 삽으로 자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놀이다. 서로 해보겠다 나선다. 낮은 학년은 호미를 들고, 높은 학년은 삽을 들고 일을 하는데 한 시간 만에 일이
마무리된다. 높은 학년이 뒤집어 놓은 흙을 동생들이 호미로 잘게 부수고 다시 쇠스랑으로 고르게 펴는 일이 아주 익숙해 보인다. 일을 해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부가 되는 일은 요즘 세상에서는 더 귀한 일놀이 교육이다. 오랜만에 땅을 밟고 일을 하니 땀이 주르르 흐르고 허리도
욱씬거린다. 초보 도시농부이던 선생들도 맑은샘 선생으로 살면서 어느덧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때에 맞게 일 할 채비를 할 수 있는 자람이 보여
좋다. 한참 일을 하는데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안부를 묻는다. 지난해 경로당에 배추를 가져다 줘서 고마웠다고 말을 건네신다. 올해도
농사지어 가지고 간다니 반가워 하신다. 부지런히 일을 해서 나누는 기쁨이야말로 교육이자 함께 사는 보람 아니던가. 올해도 아이들과 농사 잘 지어
마을김장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나눠먹는 즐거움이 벌써 상상된다. 아이들과 하는 일은 늘 일하기 중요한 규칙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오늘 일은 한
시간도 안 걸려 끝나 아이들이 지루해하지도 않고 잘 마무리 되었다. 일을 할 때 아이들이 힘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법이고, 일을 즐겁고
보람으로 느끼도록 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다 함께 하는 일이 되도록 선생들이 늘 앞뒤로 챙길 게 많다. 더운 여름이 가장 큰 고비인데 쉬운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한다. 물론 시원한 수박과 어쩌다 먹는 얼음과자 먹는 재미가 땀흘리며 일한 새참이 되기도 한다. 그때가
생각나서인지 높은 학년 아이들이 덥다며 얼음과자를 찾는데 여름까지는 아직 멀었다. 텃밭 한 모퉁이에 닭장을 만들어 알을 낳는 닭을 키워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연장 정리 뒤 텃밭 일지를 쓰는 과정까지 마무리 하고 즐거운 점심을 먹는다.
낮 공부는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젖은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허아람 선생이 습식수채화를 같이 해보고 싶어해서 한 날을 잡았는데 4학년,
6학년 모두 같이 한다고 좋아한다. 작은 모둠에 사는 아이들답다. 보통 한 달에 한두 번 여러가지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데 수채화에 앞서 그동안
해왔던 젖은 그림을 한다. 4학년은 1학년 때 이야기에 맞게 습식수채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모두 기억을 하고 있다. 물감을 쓰는 일은 채비할 게
많아 점심 시간이 바쁘다. 허아람 선생과 이것 저것 챙겨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젖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설명하고, 그동안 그린 그림도 보여주고
이번에는 높은 학년이니 주제를 정해 표현해보자고 했다. 그림에 이야기를 담자는 것인데 마친 뒤 모두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역시 표현교과는 아이들
기운이 나온다. 강한 색을 즐겨쓰는 아이, 붓을 세게 쓰는 아이, 줄곧 이야기를 하며 그 이야기대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 색의 조화를 찾아가며
그리는 아이 모두 다르다. 만다라 색칠하기도 그렇고 색을 쓰는 공부는 다양한 색처럼 저마다 결과 기운이 보이고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선생에게 생각할 것들을 던져준다. 경계없이 섞이는 번짐과 퍼짐이 그대로 멋진 작품이 되었다. 다음에는 경계 안에서 색을 쓰는
재미를 느끼겠다.
2015년 글모음이 모두 마무리되어 인쇄소에 넘기기 전 한 번 살펴보는데 다듬을 건 언제나 있다. 누가 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시간 제약이니 어쩔
수 없다. 눈과 허리 받침이 안되니 크게 보고 눈에 띄는 것만 한 번 더 잡아보는데 1차, 2차로 편집을 갈무리한 분들의 수고로움을 느낀다.
2008년부터 지금껏 해마다 하룻밤 이틀 낮 정도로 집중해서 마지막 편집 갈무리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후배 선생들에게 모두 넘긴 게 미안해서
인쇄소 넘기기 전 마지막으로 훑어보는 노릇을 하는 셈이다. 다음 해는 그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예준어머니가 작업해준 표지도 새롭다.
아이들 삶이 담긴 글모음을 다음 주면 아이들과 보게 될 생각에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