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멀리 보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 소원의 사람은 멀리 바라봅니다!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욥39:29)
소원의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원시(遠視), 곧 멀리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소원 자체가 멀리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 등의 경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히11:13)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7) /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37:9)
짐승들 중에서 무엇도 멀리 봅니까? 독수리입니다. “...그 눈이 멀리 봄이며.”(욥39:29 하) 왜 멀리 보는 것입니까? 먹이를 살피기 위함입니다.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욥39:29 상) 이 같이 멀리 보려면 항상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 때도 높이 날아오르며, 보금자리도 뾰족한 바위 끝이나 높은 곳에 마련히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욥39:27,28)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멀리 내다보려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함입니다. 즉 더 이상 낮은 곳에만 머물지 말고, 당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높이 오를수록 어떻습니까? 낮은 곳에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차 보이게 되고,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라 세상의 야망을 좇아가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원시치 못함, 곧 멀리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벧후1:9 상) 눈앞에 있는 것들만을 보고 좇아가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야망을 좇아가는 사람입니까? 즉 멀리 보면서 달려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가까운 현실문제만을 보면서 달려가는 사람입니까?
이를테면 전자는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인생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별다른 계획도 없이 그저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루살이는 어떻습니까? 내일이 없기에 오늘만 생각하고 오늘만 불사르는 사람입니다. 참고로, ‘하루살이’라는 곤충은 생애 대부분의 기간을 물속에서 유충(幼蟲)으로 지내다가 성충(成蟲)이 되면 이름에 걸맞게 단 하루만 사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2~3일 정도 생존하며, 길면 2~3주까지 지내다가 죽습니다.
원 베네딕트 선교사는 청소년들에게 “10대에 꿈꾸고 20대에 훈련해서 30대에 영향력을 발휘하라!”라고 외친 바 있는데, 이 말을 뒤집어보면 어떤 말이 됩니까? 30대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꿈도 없이’ 무작정 뛰어다닙니다. ‘방향은 나 몰라라 하면서’ 그저 뭐가 되었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과정을 건너뛴 것입니까? 꿈을 꾸는 과정입니다. 제발 부탁하건대, 꿈부터 꾸십시오. 즉 내가 달려가야 할 푯대, 내가 흔들려야 할 깃발, 내 인생을 모두 걸만한 소원부터 찾으십시오. 이것이 먼저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훈련도 없이’ 무조건 달립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부터 오버페이스(over-pace) 하다가 십중팔구(十中八九) 중도하차(中途下車)하고 말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채로’ 물속에 뛰어들면 어떻게 됩니까? 사고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과정을 건너뛴 것입니까?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제발 부탁하건대, 훈련부터 하십시오. 준비부터 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용기(勇氣)가 아니라 만용(蠻勇)이며, 담대함이 아니라 객기(客氣)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다짜고짜 ‘영향력부터’ 끼치려고 합니다.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자기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을 조정하려고 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엇입니까? 성경이 금하고 있는 ‘당 짓는 것’입니다. “...당 짓는 것과...”(갈5:21 중) 이는 필시 무엇으로 이어지게 됩니까? 분열입니다. “...분열함과...”(갈5:21 중) 제발 부탁하건대, 꿈부터 꾸기를 바라고 훈련부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떤 부류에 해당합니까? 30대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훈련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꿈도 없이’ 무작정 뛰어다니거나 ‘훈련도 없이’ 무조건 뛰어드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 생략하고 ‘영향력부터’ 무작정 행사하려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