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6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 아침도 참으로 매우 혹한 추위가 진행되고 있으니 옷 따뜻하게 챙겨입고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 복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많이 누리시고 모든 염려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행복한 하루를 장식 해 보시기 바랍니다.
- 새해 시작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1월에 반을 지나고 있는데, 항상 희망의 일정표를 잘 점검하고 겸손함으로 주님과 발을 맞추어 말씀에 순종하며 목표를 놓고 기도하면서 힘 있게 출발 해 봅시다.
- 혹시 일터에서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라면, 낮추시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더욱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간직하여 겸혀한 자세로 섬기며 주어진 일을 감당 해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34장 1-12절 }
1.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 제 목 ◑◑◑◑
◗◗ 엘리후가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듣게 됨
◑◑◑본문 이해와 요약 ◑◑◑
◗ 34장에서는 엘리후가 하는 말은 지금 욥이 자신은 의로우나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제하셨고, 정직한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허물이 없는 자신에게 상처를 낫지 못하도록 했다는 말로 하나님께서 의롭지 못하다. 라고 하였기에 변증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엘리후가 지혜롭지만, 욥의 말을 오해하고 비난한 것은 욥이 하는 말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실언이라고 봅니다.
- 사실 욥의 삶은 하나님을 훼방한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악인들과 사귄 적도 전혀 없었고, 또한 자신을 무조건 의롭다고 내세운 것이 아니라 다만, 현재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이 될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자이자 통치자이시니 반드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논법을 전개한 엘리후는 군왕, 귀인, 권력자, 부자, 빈자들을 나열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공의를 설명했습니다.
-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고로 누구도 차별적인 대우를 하지 아니 하시고 철저하게 공의로우심으로 결국 범죄 한 인류를 대신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요구하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충족시킵니다.
- 특히 엘리후의 말은 사람의 범죄는 반드시 그가 의식하고 고의로 저지르는 것만 아니라 전혀 죄라고 생각지 않고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 커다란 죄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특히 그것이 자신의 범죄로 인한 징계일 때, 사람이 할 일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원칙으로 보고 그는 바로 현재의 상황에서 욥이 해야 할 행동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그에게 섭섭하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 엘리후가 이 말을 욥에게 적용시킨 것은 그를 이해하지 않고 말하는 잘못이지만, 그의 말은 일반적으로 다 맞는 말입니다.
-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고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 그래서 엘리후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그 고통의 해결책으로 욥의 친구들이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 사실 회개는 죄를 치료하는 좋은 약인데, 죄를 고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되나 회개하기를 힘쓰는 자는 구원과 회복과 형통함을 얻습니다.
- 회개는 결코 죄에 대한 미봉책이 아닙니다. 한번 회개한 죄는 다시 범하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욥의 대답이 악인들의 것과 같으며 자신과 친구들의 충고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 엘리후의 입장에서 볼 때 욥의 행위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한 조롱과 모독을 가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 그리하여 그는 교만해진 욥에게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지혜에도 따뜻한 사랑이 있고 역지사지로 욥 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는데도 그래서 엘리후의 지혜와 변론에도 한계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엘리후의 변론이 본장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강력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 그는 먼저 욥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공의롭지 못한 분이라고 주장했다고 공박하였습니다.
- 악인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는데, 하나님은 권능자이시면서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시며,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지 말고, 방종하지 말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인간들의 행위에 대하여 자세하고 엄정하게 판단하시며 심판하실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그래서 욥과 그의 세 친구를 공격하면서 변론에 나섰던 엘리후도 욥의 세 친구들과 유사한 논리로 흐르고 말았으니 그 역시 욥이 고난 받는 것은 그의 죄에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중심에서 나른 사람을 흔히 보게 되는데,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고, 하나님의 지혜에는 언제나 따뜻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 반면에 그는 우주 전체를 통치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여러 각도에서 변호하였습니다만, 결국 그의 논리 전개도 하나님의 공의를 가르쳤지만, 그의 지혜에 사랑이 없는 욥의 세 친구들과 유사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믿음은 선을 따라 삶을 드리는것이다. (욥기33장 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선악의 판단 기준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께 있으며, 성도는 하나님의 선을 택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 본문 4절을 살펴보면 엘리후가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라고 하였습니다.
- 먼저 엘리후의 이 말을 통해 성도는 항상 스스로 정의 즉 옳은 것, 선한 것을 택해야 한다는 교훈하고 있습니다.
- 우리 성도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스스로 옳은 것을 택하여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선하고 옳은 것, 정의를 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고난과 역경과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이 세상은 불의와 악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러한 불의와 악을 싸우며 이기고 살아내려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완강한 사단의 저항에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될 여러 가지 죄악과의 전쟁을 통하여 물리쳐야 하는 고난과 역경들을 힘이 들어도 견디어 낼 희생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 만일 우리가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정의와 선을 좇으려 한다면, 그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 우리가 악을 이기고 정의와 선을 택하고 좇으려 한다면, 세상적인 유익이나 평안을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 자기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또한 자신들의 변론과 판단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분하여 보자는 것입니다.
- 엘리후의 이 말에는 자신감이 잔뜩 배어 있기에 그는 자신이 선악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그래서 엘리후는 욥과 욥의 친구들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 하지만 엘리후는 하나님의 섭리의 모든 것을 알아 내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끼리 알아보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 생각해 보면 엘리후 역시도 욥의 친구들이 범했던 것과 같은 동일한 잘못을 범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는 무엇보다 본문에서 ‘우리끼리 알아보자’라는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엘리후는 선악의 판단 기준을 피조물인 인간, 특히 사람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 그는 자기의 관점, 자기의 생각에 근거하여 선악을 판단하려 하였고, 그러한 기준으로 욥에 대하여도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 욥의 친구들이 자기들의 기준으로 욥을 악하다고 판단한 것을 젊은 엘리후가 지적하고 욥이 악한 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 그러면 과연 엘리후의 판단은 옳았습니까? 욥이 악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 욥이 친구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자기의 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과오를 범하기는 하였지만, 사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사실 인간은 그 마음이 부패하여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모든 것이 악합니다.
-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사실 선이란 것이 없습니다.
- 그러한 존재인 인간이 선악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며,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선악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래서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장려하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며,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니 하는 개념은 모두 인간에게도 나름의 선악의 판단기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 그러나 인간의 양심이 선악의 절대적 판단기준은 될 수 없습니다.
- 인간의 양심이란 환경과 문화 등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그래서 이곳에서 선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저곳에서는 악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것이 악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담배가 어린아이들의 기호 식품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어른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우는데, 이것은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선악의 판단 기준은 이처럼 가변적이며, 완전하기 못합니다.
- 모든 사람이 선하게 여긴다고 해도 그것이 사실은 악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여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러면 선의 진정한 판단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 절대자로서 선 자체이신 하나님만이 선악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됩니다.
- 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선악 간에 사람들을 판단하여 영생과 영벌을 정하실 것입니다.
- 야고보4장 11-12절에서“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간의 선악의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선악의 판단 기준은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선을 택하고 살아내기 위해 결단할 것이 무엇인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 위해서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참된 믿음은 선을 따라 내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믿는 성도들은 선악의 모든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선을 택하여 살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희생을 감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로마서14장 4절에서“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우리가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악을 함부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욥의 친구나 엘리후처럼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4장 5절에서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 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리고 로마서14장 13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바울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선악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선악을 판단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좇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정의와 선을 좇아 행하려면, 먼저 자기희생 보다 더 큰 성령 충만은 없고, 날마다 자기를 희생하는 일 없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 만큼은 오직 선악의 절대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스스로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