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몇 층에 살고 있는가]
<성장이란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층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1층에 서 있으면 천장은 높고 바닥은 낮다.
손을 뻗어 까치발을 들어야 닿는 곳은 ‘높음’이 되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닿는 곳은 ‘낮음’이 된다.
우리는 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의 높낮이를 판단한다.
그러나 단 한 층만 올라가도 세상은 달라진다.
1층에서 가장 높던 곳이 2층에서는 가장 낮은 곳이 된다.
층이 바뀌면 높고 낮음의 기준도 함께 바뀐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낯선 생각을 받아들이며, 사유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는 세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에게 그 깨달음을 준 것은 독서였다.
예전에는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나름 책을 읽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더 깊이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비교하고 연결하면서 읽기 시작하자 알게 되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었다.>
책을 읽는 목적도 달라졌다.
지식을 채우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상식을 의심하고 삶의 방향을 돌아보기 위해 읽었다.
책이 나를 바꾼 것은 지식의 양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넓혀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배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일이다.>
독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타인의 삶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익숙한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층을 만난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 일어난다.
한 층씩 올라갈수록 내가 특별해졌다는 자만보다,
<아직 올라가야 할 층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게 된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모르는 것이 선명해지고, 경험이 넓어질수록 타인의 삶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게 된다.
높이 올라설수록 풍경은 넓어지지만, 세상을 향한 말은 오히려 신중해진다.
내가 서 있는 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어제의 나에게는 오늘이 높은 층일 수 있지만, 내일의 나에게 오늘은 다시 1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남보다 몇 층 위에 있느냐가 아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넓게 보고 있는가.
더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을 더 따뜻하게 품고 있는가.>
내가 몇 층에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층에 있든 다른 층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내려다보지 않는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능력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낮은 곳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성숙이다.
오늘 한 친구를 만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삶을 정성껏 일구어온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몇 층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또 하나를 물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더 배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인생의 성장은 그저 위로만 달려가는 경주가 아니다.
한 층 올라설 때마다 세상을 더 넓게 품고,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며, 나 자신을 조금 더 낮추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 올라가야 할 가장 높은 층은 높은 곳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스스로를 낮추고, 많이 알수록 겸손해지며, 나를 드러내기보다 타인을 품을 수 있는 곳.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다다라야 할 가장 높고도 아름다운 ‘겸손의 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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