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이성복
남해 비토리에서
손가락 두 개 포갠 크기의
너의 몸 회 뜨는 것을 보았다
네 모가지를 비스듬히 자르는 것은
조금이라도 버려지는 살이 아까워서였다
잘린 모가지엔 검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내장을 훑어낸 배때기는 창포묵처럼 투명하였다
네 생각나면,
며느리도
집 나간다는 가을 전어……
인적 없는 바닷가 모텔에서,
입 안에 녹아 흐르는 너의 살로
피로한 연애의 여흥을 돋우는 것을
모가지 잘리고서도 너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불교문예』 2008년 겨울호
* 제목은 ‘전어’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전어회를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적어도 1, 2, 3연까지는 전어회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1연에서는 “남해 비토리에서/손가락 두 개 포갠 크기의” 전어회 뜨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한다. 시의 배경, 즉 상황을 진술하고 있는 대목이다. 2연에서는 “네 모가지를 비스듬히 자르는 것” 등 전어회와 관련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내장을 훑어낸 배때기는 창포묵처럼 투명하”다는 구절은 전어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속담에 전어 굽는 냄새가 나면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얘기가 있다. 3연에서는 이를 변용해 “네 생각나면,/며느리도/집 나간다는 가을 전어……”라고 표현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4연이다. “바닷가 모텔에서,/입 안에 녹아 흐르는” 전어회로 “피로한 연애의 여흥을 돋우는” 시인의 심리적 현존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이은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