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번제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일천번제라는 이름의 새벽예배를 일컫는 경우를 본다.
그 성경적인 근거를 <솔로몬의 일천번제>로 예를 드는데, 그러한 용어는 흔히 일천번의 제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물론 일천번제 자체를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일천번을 새벽예배를 드리는 그 신앙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일천번제는 일천번의 번제가 아니라 한꺼번에 드리는 일천마리의 번제를 말한다는 것을 알자.
즉 일천번제는 백일기도라는 토속적인 신앙형태에서 발전하여, 천일기도(3년)라는 용어를 나름대로 성경에서 찾은 것이지만, 성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3:4)
공동번역: 기브온에는 큰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솔로몬은 늘
그리로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 번제물을 천
마리나 바친 적이 있다.(왕상3:4)
우리는 <일천번의 제(番祭)>가 아니라 <일천 번제(燔祭)>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즉 일천번을 드린 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천 번제, 즉 일천마리의 번제물을 말하는 것이다.
영어성경을 보면 a thousand burnt offerings 이고 히브리어를 찾아보면 “오라 에레프”, 즉 일천마리의 희생번제물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일천번의 제사가 아니고, 한꺼번에 일천마리를 번제로 드린 것을 말한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
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1:6)
역대하 1장6절을 보면 개역성경은 “일천 희생”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물론 영어성경은 그대로 a thousand burnt offerings이고 히브리어 성경은 “에레프 오라”이다.
공동번역은 “번제물 천마리”라고 번역을 하였다.
솔로몬은 거기 만남의 장막에 있는 놋제단으로 올라가 야훼 앞에
번제물 천마리를 살라 바쳤다.(대하1:6) <공동번역>
그러나 혹간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일천마리를 동시에 번제를 드릴 수 있는가하고 반문하면서, 그것은 일천일(日)의 제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천일의 제사인가 아니면 일천 마리의 번제인가를 분명히 알려주는 성경구절이 있으며, 일천마리의 제물이 맞다.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번제(오라)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일천(에레프)이요 숫양이 일천(에레프)이요 어린 양이 일천(에레프)
이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대상29:21)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까지 합쳐서 모두 삼천마리의 번제를 말하고 있으며 일천은 에레프, 번제는 오라라는 히브리어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더욱이 성경에는 소가 이만 이천, 양이 십이만인 경우도 있다.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였는데(왕상8:63)
만일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가 일천일의 새벽제단이라고 해석된다면, 이만 이천의 소와 십이만의 양은 십사만 이천일(日)의 새벽제단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만이천일은 약 60년이 되어지며, 십 사만 이천 일은 389년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왕상8:63이후의 구절을 더 읽어보자.
과연 그 많은 번제물을 번제 드리는데 며칠이 걸렸는가가 기록되어 있다.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칠일 합 십사 일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
의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왕상8:64-65)
이만이천의 소와 십이만의 양을 14일 동안 번제로 모두 드렸다.
또 솔로몬은 1000일 동안 계속하여 번제를 드린 적이 결코 없다.
솔로몬은 해마다 세 번씩 번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전
역사가 마치니라(왕상9:25)
일천번제에 대해서 잘못된 점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에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대부분의 일천번제는 일천번의 제단을 말하며, 다시 말하여 일천번의 헌금이나 일천번의 새벽예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원씩 삼년간을 일천번의 헌금을 하면 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것은 일년에 삼백육십오만원이 되며 월 삼십만원이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셀러리맨의 십일조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라는 점이다.
월 이백만원의 월급자가 십일조 이십만원과 일천번제 삼십만원을 합치게 되면, 오십만원 즉 25%의 헌금이 되어진다. 이것은 당연히 지나치다.....
게다가 이 일천 번제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무속적인 신앙의 형태인 백일기도와 같이 기복적인 소원을 수반한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죄사함을 받기위한 방편이었다.
또 정확히 성경대로 해석하자면, 솔로몬은 한꺼번에 일천의 희생물로 번제를 지낸 것이므로, 오늘날 한꺼번에 일천만원의 헌금을 내는 것이 더욱 성경적인(?) 것이 된다.
만일, 하루에 100원씩으로 계산하여 10만원을 단번에 내는 것을 일천번제로 인정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혹은 그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하루에 10원씩 계산하여 만원을 내는 것도 일천번제로 인정되어지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또한 제사는 이미 변역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로 이미 구약적인 제사는 변역되어진 것이며, 이처럼 제사를 계속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헛것이 되고 만다.
번제란 의미는 제물을 태움으로 인하여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인간의 죄값을 그 제물이 보상한다는 개념이다.
희생제물을 태운다는 것이 곧 당사자의 죄를 없앤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물로 단번에 드려진 것이기에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같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횟수를 많이 드리는 번제가 필요한가? 아직도 많은 희생짐승이 필요한가?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
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7:27)
히브리서 10:8을 보라.
하나님은 더 이상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성경을 오역하면서까지 1000일 동안을 일천 번제를 드리자는 말인가?
과연 돈을 일천일 동안 바쳐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
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우린 이미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변질시키면서까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야만 하는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
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