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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눅10:30~37절, 마5:16절
소주제2: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우리의 착한행실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됩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행실을 보고 불신자들이 놀랍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두렵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겁니다.
우리를 그럭저럭 살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직장에서도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본이 되니까 사장님이 믿음의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직원들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겁니다.
영광 속에 하나님을 인정이 있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있고 그 이름을 영화롭게 빛내주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나 어디든지 사람들이 너를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아.. 너를 보니까 하나님이 두려워.. 이런 삶을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잘되면 모함하고 끌어당기고 욕을 하고 남이 칭찬받으면 배가 아픕니다.
이런 삶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하나님보다 교회를 욕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산다는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삶이 그럭저럭 살아야 된다는 삶은 아니라는 것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찬양)
그림을 봤습니다.
예수님이 세상과 아이들을 안고 있는 그림입니다.
단순히 품에 있는 아이들만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품에 안고 계신다는것 입니다. 아이들은 대표입니다.
설마 하니까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는 겁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언제나 엄마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습니다.
모든 만물을 끌어안는 하나님의 가슴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더 잘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게 되고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너무 미운데 그렇게 안 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이성을 찬양하고 높이지만 만물을 안고 계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낀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행실은 일반인과 다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아 다르구나..
(벧전3: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3;16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묻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새벽에 매일 와서 울며 기도해야 되고 모여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왜 이렇게 삽니까? 그냥 믿으라고만 합니다.
자녀들도 그냥 믿으면 되.. 하니까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자녀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따라 나왔는데 커서 보니까 믿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믿는 부모님이나 믿지 않는 저나 말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안 나가도 부모님은 아무소리 안합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
지금 우리는 뭐가 좋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 받아 거듭나서 양심이 살아있지 않으면 선하고 좋은 것을 분별을 못합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좋다 나쁘다 선하다..이런 것을 분별하는 것인데 양심이 타락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세상에 가장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그렇게 처참하게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양심이 부패된 인간이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해도 우리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우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해도 뭐 하러 그렇게 해.. 안 그래도 되는데..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고 예수님이 고맙지도 않고 천국도 믿어지지 않고 지옥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럭저럭 합니다. 시간되면 나오고 시간 안 되면 안 나옵니다.
앞에는 절대 앉지 못하고 언제나 뒤에 앉아다가 바로 갑니다.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사느냐 너에게 소망을 물으면 대답할 이유를 가지고 있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합당해야 사람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나를 용서하는 이유가 그 많은 죄를 예수님께 용서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사람을 용서해야 된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아는 겁니다.
우리가 왜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까?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의 행실이 달라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 따로 나 따로 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개개인으로 예수를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 개개인으로 예수를 영접해야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으니 아버지가 믿어서 그 아들이 덩달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합니다. 할아버지라고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림 속에서 만물을 우리를 안고 계십니다. 그 만물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안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마음을 쓰고 신경을 쓰면 하나님의 숨결이 들리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이유가 이 세상에서 그럭저럭 살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어제 6구역 심방이 있었습니다. 다 직장을 다닙니다.
그러나 직업을 사명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직업과 사명은 다릅니다. 직업은 언제든지 옮길 수 있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사명은 아닙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로 살아야 될 것은 사명입니다.
직업이 아닙니다.
몸이 아파서 피투성이가 되고 창백하고 내일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직장에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직장을 섬깁니다.
그런데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왜 그럭저럭 예수를 믿습니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만물을 안고 계시는 하나님은 이 만물 속에 만물 안에 있는 모든 인간과 식물과 동물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하나님과 예수가 하나인 것 같이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 됨이라...
모든 만물이 하나로 이루어졌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새랑 이야기를 하고 나무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물 속에 하나님의 숨결이 있으니까 사람과 모든 만물이 연결되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창세기를 보니까 번성하고 생육하고 충만하고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정원지기로 만들어 놨는데 인간이 발명한 전쟁무기나 약..약은 사람의 몸을 파괴시키고 무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파괴시켜서 하나님의 세계를 파토내고 있습니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파토를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하나님께서 만드실 때 자가 치료제가 들어있게 만들었답니다.
너무 약을 많이 먹다보면 자가 치료제가 죽습니다.
그 약 때문에 돌아가실 때 힘이 든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는 것은 한 사마리아인의 행실을 보고 말합니다. 행실이란 그가 나타낼 수 있는 좋은 행동들, 나쁜 행동들, 몸가짐을 말합니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태인들에게는 개 같은 사람입니다.
개 취급을 합니다. 인간취급을 안합니다. 그런데 한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다 털리고 매 맞고 피 흘리고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서 맡기고 내가 잠시 일을 보고 올 텐데 부비가 더 들었으면 내가 돌아와서 다 주겠다고 합니다. 부비는 써서 없어진 돈을 말합니다.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돌려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나한테 청구해라.. 다 주겠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고 다 지나갔는데 취급받지 못했던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중에 그 강도 만나 쓰러져 죽어가는 그를 여관에 맡기고 한 행실을 보고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집사냐 목사냐 장로냐 이것을 예수님은 본 것이 아닙니다. 그의 행실을 본겁니다.
너도 행실을 저렇게 해라..
사람이 죽어 가는데 도망가는 사람, 사람을 때려놓고 도망가는 사람, 뺑소니 차..
이런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인의 행실.. 그리스도인이 제가 목사에요, 제가 권사에요, 제가 전도사에요.. 비웃습니다. 전도사가 무례한 말을 하고 행동을 그렇게 하느냐.. 목사가 권사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직분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실을 봅니다.
우리의 행실을 보고 교회가기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대인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 이웃이 누구입니까? 정말 이웃은 사마리아인이다.. 너도 그렇게 해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놨으니 가만히 있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이분은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돈을 주시고 우리에게 재주를 주시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주셨습니다.
(카이스트 학생 간증)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가 끝나면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를 해서 얼마를 받겠습니까?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이 1,080만원이었습니다.
자기학교에다 기부를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부를 하게 되었냐고 인터뷰를 하는데 기부를 해야 된다. 우리 학교는 기부받기에 너무 합당한 학교이다.. 우리 다 장학금으로 공부를 한다. 내가 젊으니까 알바를 해서 얼마 안 되지만 학교를 위해서 해야 된다.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았는데 우리 부모님이 커서 잘살면 꼭 기부해라..
돈을 많이 벌면 불쌍한 사람을 잊지 말고 기부해라..
제가 왜 컴패션 아이들을 후원하라고 합니까? 제 아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만물이 다 연결되어서 다 하나님의 아이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가 원하니까 너도 그 일을 해라..입니다.
아이들을 도와야 됩니다.
작년에는 우물 값을 2,050,000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300,000만원을 보냈습니다.
세계에서 우물이 가장 약한 곳이 부르키나파소랍니다.
아이들이 거의 질병 걸리는 이유가 나쁜 물 때문입니다.
썩은 물입니다. 부르키나파소 우물파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더라고요..
우물하나가 완성되었다고 사진을 보내왔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우물을 파서 식수대를 만들고 아이들이 그 우물을 먹으니까 좋아가지고 난리입니다.
올해는 300,000만원을 보냈는데 우리의 사랑이 좀 식은 거 같습니다.
우리가 몇 년 전에 탄자니아에 1호 집을 지었습니다.
2호집을 3호집을... 계속 짓기로 했는데 제가 깜빡하고 잊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놀랬는지요..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만 아니라 그 아이들도 하나님과 연결된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우리의 형제입니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직분을 보지 않았습니다. 인물을 보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의 행실을 봤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면 예배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기뻐서 춤을 추실 것 입니다. 하늘과 연결되었으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
하늘과 땅이 연결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1985년도에 참치 원양 어선 선장이야기를 아십니까?
우리나라 사람 전재용 선장입니다. 다른 나라 바다로 참치를 잡으러 갔다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1년 걸린답니다. 그때가 월남전이었습니다. 보트피플.. 작은 보트를 타고 있던 사람들, 난민이었습니다. 이 나라 가도 저 나라 가도 안 받아주고 그 넓은 바다에서 방황하다가 다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재용 선장이 가까이 가서 보니까 보트피플이었습니다.
본국에 전화를 했는데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답니다.
모든 나라가 다 거절했는데 네가 왜 신경을 쓰느냐..
배를 돌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양심의 소리가 이건 아니다.. 이 사람들이 다 죽으면 나도 간접살인이다... 내가 도울 수 있는데 안도운거니까요.
왜 여러분들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안하십니까? 왜 할 수 있는데 안하려고 하십니까?
왜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본국에 돌아가서 벌을 받고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살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총96명이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다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각 나라가 다 거절했으니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려고 10여일 정도 걸린답니다. 선원이 먹을 10여일 음식만 남았는데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금씩만 먹었답니다.
그리고 참치를 끓여서 먹고 10여일을 버텼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왜 이런 일을 했느냐.. 양심을 속일수가 없었습니다.
이분이 양심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목사라도 장로라도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양심은 이성으로 살기 때문에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지 분별이 안 됩니다.
양심이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살아나면 히브리서에 너희 죽은 양심이 성령으로 살아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겠느냐..
성령은 우리의 양심을 살립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다.
전재용선장이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에서도 짤리고 선장으로서의 경력도 다 사라졌습니다.
20년이 흐르고 미국에서 전재용 선장을 찾았습니다.
난민들이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에서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서 베트남인회를 조직을 했는데 전재용 선장 이야기를 했답니다.
우리 때문에 손해를 보고 우리 때문에 망신을 당했고 우리 때문에 한국 국민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우리 때문에 직장도 다 짤렸다..
베트남인회에서 전재용씨를 미국으로 데려오자.. 그래서 수소문을 했답니다.
그래서 만나는 모습을 봤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 한사람을 살리려고 부비가 더 들어도 좋으니까 나한테 말을 해라..
내 돈이 다 날라 가는 것 같지만 만물을 가슴에 안고 있는 하나님이 그 일을 하는 선한 행실을 하는 사마리아인에게 거지로 살게 할까요? 은혜로 보답하셨습니다. 은혜를 갚아주셨습니다. 채워주셨습니다. 전재용씨를 베트남인회에서 모든 것을 갚아주고 채워주고 미국에서 살게 한 것처럼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양심이 살아나는 겁니다. 믿음이 살아나서 선한 행실을 하지 않으면 아직은 죽은 양심입니다. 양심이 파선하면. 믿음이 파선합니다.
전재용씨가 예수를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지만 96명을 살렸으니 영웅 아닙니까?
(딤전1장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자기의 양심을 버린 것은 생각을 안 하고 자기 믿음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나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면 이것이 믿음이겠습니까?
양심을 버리면 믿음도 파선되고 믿음이 살아있으면 양심도 살아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이 주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판을 들었지만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못한 강도만난 사람을 전적을 돕게 됩니다.
여러분이 양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사람들이 보면서 그 이유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것입니다. 하지만 양심을 버리면 믿음은 파선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식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로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나님을 인정하도록 하나님을 높이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착한 행실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