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0,5-9; 루카 9,1-6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로 알려진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라는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 중 하나인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여 23살에 사제 서품을 받으신 성인은, 평생 거룩한 미사 봉헌과 고해성사, 기도와 영적 지도를 통해 헌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상처가 몸에 나타나는 ‘오상’을 받으셨다고 알려졌는데, 이 고통을 50년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비오 성인을 시성한 이유는 이 오상이라는 특별한 현상 때문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시고, 평생 기도하시며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그저 ‘기도하는 가난한 수도자’라고 칭하셨던 비오 성인은, 기도가 “한 영혼이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도직”(서간집 2,70)이라고 하셨습니다.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speeches/2016/february/documents/papa-francesco_20160206_giubileo-gruppi-preghiera-padre-pio.html
1968년 9월 22일, 오상을 받은 지 50년을 기념하는 장엄미사를 주례하신 후, 다음 날인 9월 23일 새벽에 고해성사를 받고 서원을 갱신하신 후 병자성사를 받으셨습니다. 이어 “두 분의 어머니가 보입니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선종하셨습니다. 이 두 분의 어머니는 성모님과, 당신의 친어머니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잠언에서 ‘아구르’라는 인물은 기도합니다.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이 두 가지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인데요, 영적인 것은 철저히 진실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로 육적인 청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오늘날 하느님께 노골적으로 ‘부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지만, 기도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부유함’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은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말아 달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하느님께 의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의지할 대상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아쉬운 모든 것이 충족되기를 바라고는 합니다만, 그렇게 모든 아쉬움이 채워지고 나면 “주님이 누구냐?”라고 말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아쉬움은 주님으로 인해 채워져야지, 다른 것으로 채워지면 안 됩니다.
또한, 도둑질을 할 만큼 궁핍한 상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도둑질을 하면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부유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지 말아 달라’는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정해진 양식’과 ‘하느님의 이름’이 연관된 또 다른 기도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잠언이 개인적 차원에서 기도드렸다면, 예수님은 이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키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 위해서 내가 돈이 너무 많으면 안 됩니다. “주님이 누구냐?”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먹고 살 것이 없어도 안 됩니다. 그렇기에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라고 청하는 것이고, 우리 주위에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웃은 없는지 살피고, 우리의 양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이는 ‘가난’에 대한 말씀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인도하심만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너희를 환대하면 그 호의를 받아들이되, 어떤 이들에게는 거부당할 것도 각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라는 말씀은, 더 편안한 환대를 제공할 수 있는 부유한 이들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봉사의 본래 의도를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선포할 때,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단순하게 생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던 당시 일부 종교인이나 철학자들의 관행과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2018년 3월 17일, 비오 성인의 고향인 피에트렐치나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작은 이들’은 누구입니까? 작은 이들은 위대한 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 오직 자신만을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이들은 겸손하고 열린 마음, 가난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 기도하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며 누군가와 동행해야 함을 깨닫는 사람들입니다. …
작은 이들의 마음은 안테나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신호를 즉시 포착하고 곧바로 알아차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와 만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크게 만드는 사람은 엄청난 방해 전파를 일으킵니다. 자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느님의 뜻이 우리에게 닿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자신을 낮추고, 내적으로 자신을 작게 만들며, 자신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는 ‘작음’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낮추셨고,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성체 안에서 바라보는 예수님의 신비 역시 작음의 신비이며, 겸손한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는 우리 자신이 작아지고 작은 이들과 함께할 때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317_omelia-sangiovannirotondo.html
성 비오 신부님께서 쓰시던 방, 산 지오반니 로톤도
출처: Padre Pio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