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두와 작두 -
천하의 오입쟁이 곽정달 천석꾼 집안 딸 아내 몰래 건넛마을 과부집 찾는데…
유 참사의 셋째딸 화담이 추석날 밤에 뒷동산에서 친구들과 달구경을 하고 집으로 가다가 다른 동네 못된 놈들에게
둘러싸여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한동네 청년 곽정달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못된 놈들을 가로막았다.
“네놈이 이 계집의 서방이라도 되느냐?” 세놈이 팔을 걷어붙였다.
“좋게 말할 때 꺼져라.” 곽정달이 타이르 듯 조용히 말했다.
주먹이 나오고 발길질이 오갔다. “욱! 퍽! 척!” 세놈이 달려들었지만 곽정달의 현란한 발솜씨에
모두가 개울에 처박혔다가 ‘걸음아 나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의협남 곽정달이 화담을 업고 집 대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석달 뒤 화담은 헛구역질을 했고, 유 참사가 그렇게도 반대했지만 꽃 피는 춘삼월에 혼례식을 올렸다.
곽정달은 건달기가 넘치는 천하의 한량이다. 유 참사네는 천석꾼 부자에 가문도 짱짱한 양반 집안이지만,
정달네는 겉보리 상것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그러나 곽정달은 결국 가문 좋은 집안의 셋째딸을 꿰찼고
처가에 가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너털웃음을 날려댔다. 곽정달은 천하의 오입쟁이다.
유 참사가 셋째딸의 혼인을 그렇게 반대한 것도 곽정달의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데다 물건은 마근(馬根)이요 방중술 또한 뛰어나 한번 곽정달과
이불에 들어가봤던 여자들은 사족을 못 쓴다는 것이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얼굴에 말솜씨도 청산유수요, 수단도 좋아 마음만 먹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
지난 추석날, 곽정달 발차기에 나가떨어졌던 못된 놈 셋이 그 후에 곽정달로부터 질펀하게 술을 얻어 마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날 밤에 곽정달이 화담을 업고 가면서 두손으로 엉덩이를 잡고 어찌나 재주를 부렸는지 업힌 처녀가
불덩어리가 돼 유 참사네 대문까지 갔을 때는 벌써 처녀가 아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유 참사가 마련해준 번듯한 기와집에서 양반인 척 챙 넓은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대문을 열고 나가는 곽정달을 어
느 누가 상것이라 손가락질할 수 있겠는가.
곽정달은 권력의 끈도 잡고 있다. 이 고을 사또에게 청을 넣을 때 다리 놓는 사람은 이방도 아니요 수문장도 아닌 바로 곽정달이다.
사또는 은밀하게 일을 꾸밀 때는 곽정달을 부른다. 사또의 객고를 풀어줄 여인네를 장옷으로 깊이 씌워 야음에 동헌으로 데려가는 사람도 곽정달이다. 곽정달 자신도 혼례를 올린 지 일년이 지나자 슬슬 화담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이 억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화담은 두눈을 부릅뜨고 곽정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거의 매일 밤 늦어도 이틀을 넘기는 법이 없었는데, 요즘은 술이 담뿍 취한 척 들어와 픽 쓰러져 자느라 사나흘을 넘길 때가 흔하다.
사또에게 불려가 술을 마셨다는 게 핑계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술에 취할수록 속치마 밑으로 들어와 더더욱 대담하게
화담을 미치게 했는데, 요즘은 사나흘씩 건너뛰니 한눈파는 게 틀림없다.
화담은 친정조카를 시켜 곽정달을 미행케 해 연유를 간단하게 알아냈다. 강 건넛마을 과부한테 빠진 것이다.
화담은 낮에 지나가는 사람인 척 그 과부의 집앞을 지나며 마당에 있는 그녀를 훔쳐봤다. 화담은 깜짝 놀랐다.
미모가 빼어난 데다 잘록한 허리 하며 치마가 터질 듯한 엉덩이! “우리 신랑 진을 빼는 년, 어디 두고 보자.”
화담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어느 날 밤, 어둠 속을 빠져나간 곽정달이 과부 안방으로 스며들었다. 합환주를 마시고 촛불을 끄고 과부가 죽는다고
아우성칠 때 문을 박차고 화담의 오빠와 사촌오빠들이 들이닥쳤다.
이튿날, 동헌 마당에 과부와 곽정달이 섰다. 사또가 판결을 내렸다.
“구미호처럼 요염한 자색으로 남자를 홀려 새 신부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저년의 사타구니를 인두로 지져라.
여봐라 인두를 준비하라.”
화담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과부는 사색이 됐다.
사또가 “그리고 새 신부를 속이고 수절과부를 무너뜨린 저놈의 거시기를 작두로 잘라버리도록 하라.”
“안됩니다. 남자가 바람을 필 수도 있지...” 화담이 막아서 재판은 싱겁게 끝났다.
며칠 후 늦은 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동헌으로 스며들었다. 사또가 손을 잡아끌었다.
장옷을 벗자 그 과부가 배시시 웃었다.
<강필석 님이 주신 카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