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일직교회 종탑
권정생 선생(1937-2007)은 동화작가로 명성이 높은 분이셨다.
권오삼은 그를 가리켜 “해방 후 한국 최고의 동화작가”라고 평가하였다.
그는 한 평생을 지독한 가난과 질병 속에서 보냈다.
권정생은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청소부인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린시절에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쓰레기더미에서 주어온 헌책들 속에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골라 읽었다고 한다.
해방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담배장수, 점원을 전전하다가 결핵 때문에 1957년 고향인 경북 안동 조탑리 돌아왔다.
1964년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권정생이 결핵으로 각혈을 하자 동생 결혼을 시키기 위해
집을 나가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몇 달 동안 걸인생활을 하였다.
그는 다시 고향에 돌아와 조탑리 옆 동네인 송리동에 있는 [일직 교회]헛간에 세 들어 살면서
교회 종지기 생활을 하였고, 동화를 쓰기 시작하였다.
추운 겨울날 맨손으로 종을 치는 권정생의 모습을 보고 교인 한 분이 장갑을 건네며
“동상 걸리면 어쩌시려고요?”하면서 장갑을 건네니까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 가에 구르는 돌맹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요.”
그가 한 평생 새벽종을 치는 일을 하였는데, 종을 치는 것은 단순히 새벽을 깨우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이 땅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길 바라는 세상을 향한 울림이었다.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 둘이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자발적 극빈의 삶을 살았지만
불우한 이웃들에게는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순수한 그는 마을 사람 누구나 좋아했으며, 교회집사로서 교회학교 교사를 하였고,
그의 작품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뤄왔다.
선생은 단순한 동화작가가 아니라 분단문제, 통일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무고한 어린이와 여자들, 그리고 민간인이 죽어가는 소식을 듣고
선생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였다고 한다.
2007년, 10억이 넘는 거액의 인세를 굶주리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선생이 이런 말을 남겼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그의 대표작 《강아지똥》은 1969년에 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처마 밑의 강아지 똥을 보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강아지똥》은 참새와 닭과 진흙에게 무시를 당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이다.
이 짤막한 동화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어 6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현재 중학교 1학년의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 작품 안에는 본인의 삶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강아지 똥』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돌이네 흰둥이가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에 똥을 누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강아지똥 곁에 앉더니 주둥이로 콕 쪼아보고 퉤퉤 침을 뱉고는,
“똥 똥 똥... 에그 더러워!” 종알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흙덩이도 강아지 똥을 보고 “똥 중에서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는 용용 죽겠지 하듯이 쳐다봅니다.
강아지 똥은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강아지 똥은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니야, 하나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나도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거야.”
해가 저물도록 옹크리고 앉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겨울이 되어 사뿐사뿐 눈이 내리고 눈이 솜이불처럼 강아지 똥을 따뜻하게 덮어 줍니다.
눈 속에 묻혀 강아지 똥은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긴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봄이 되어 어미 닭이 병아리 떼를 데리고 분주히 걸어옵니다. 강아지 똥은 병아리들의 점심밥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귀여운 아기들의 점심밥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기꺼이 제 몸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 닭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우리에게 아무 필요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인걸.” 그러고는 병아리들을 데리고 저 쪽으로 가 버립니다.
강아지 똥은 또 풀이 죽었습니다. ‘나는 역시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인가 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눈물이 나오고.... 강아지 똥은 그만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데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입니다.
봄날의 하루 해가 무척 지루합니다. 느리게 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 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 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히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 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 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뿐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 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 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빛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 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 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 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 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 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 똥은 온 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 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