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 손 성 덕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다. 해를 등지고 돌아앉은 밤이 우물 안처럼 깊다. 이불 속 내 눈은 초롱초롱하고 숨소리는 쿵쿵 고막을 두드린다. 코로나19 확진자를 딴방에 가두고 불침번을 서는 촛불이다.
꽉 닫힌 방 안의 정적에 숨이 막힌다. 낮에는 따문따문 토해내는 기침 소리가 그나마 숨통을 틔웠는데 밤이 깊어갈수록 잠잠하다. 눈이라도 붙였으면 다행이련만 잠들 리 없다. 촛불이 선인장 가시처럼 꼿꼿이 선다. 이윽고 방 안에서 놓친 용수철 튀듯 기침을 연거푸 토한다. 오늘 밤이 한 뼘쯤 남았다.
우리 부부는 한 개의 자석일까. 외모가 다르듯 춥다면 덥다하고 급하다면 여유롭고 모자란다면 넉넉하게 여기는 이질적인 두 성정이 만났다. 고비마다 안으로 감아들면서 자성磁性을 투사投射한다. 같은 극은 밀어내도 다른 극은 끌어당겨 스펀지처럼 포용하는 쇠붙이다. 쌓이는 일상에서 무너지는 몸과 함께 자석은 겹겹으로 녹꽃을 입으며 쇠의 본성을 드러낸다. 희석되는 자성을 측은지심이 녹을 닦아내며 반세기가 넘도록 함께 걷는다.
자성은 녹꽃을 피우며 방전된다. 빨갛게 번지는 녹꽃은 익숙해 무뎌진 채 탓하고 긁으며 온갖 밉상을 뿌리째 시시콜콜 드러낸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즘이다. 노부부 둘만 사는 가정에서 노노老老 갈등을 풀어줄 자녀나 손주 다른 가족이 없다보니 배우자의 학대가 많아진다는 기사가 있다. 최근에는 배우자의 학대가 과거에 많았던 아들들의 학대 수치를 넘어섰다고도 한다.
지금에야 감지한다. 자석으로 만난 것을 좀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N극은 S극이 될 수 없고 S가 N일 수도 없다. 뒤틀리는 양극 갈등은 자석의 본성인 것을. 상극의 꼭짓점 통과가 얼마나 숨이 가쁘던가. 솟구치는 본성은 몸의 노화와 역행하는 옹고집일까. 꺾으려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서로 품어야만 할 본성인 것을.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일상에서 순간순간 합리적인 이성만을 기대하기 어렵다. 차라리 격리 조처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겠다. 안 보고 모르면 편하련만 어째서 우후죽순처럼 꼿꼿이 돋아나는 자성이 촛농으로 흐르는가.
옛날 생각을 한다. 유난히 칭얼대며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이를 포대기로 싸서 엎은 채 엎드려서 재웠던 날이 많았다. 콜록거리는 아이의 호흡이 내 숨과 이인삼각이 되어 함께 뛰면 아이가 살며시 잠든다.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잠 깰까봐 풀어 뉘지 못하고 조심조심 선잠으로 밤을 새웠다.
간병은 곁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한 집안에서 둘뿐인 가족이 완전한 격리가 쉽지 않다. 몸도 마음도 견뎌내기 힘든 고문이다. 자정을 넘긴 한밤중에 창밖에서 엿보는 달님께 하소연하고 격리 해제를 결행한다. 안방에 이부자리 두 개를 펴고 뚝 떨어져 잠자리를 만든다. 싫다는 그의 팔을 뿌리치고 안방에 눕힌다. 환자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다. 요람이 따로 없다.
환자 얼굴이 홍옥 같고 몸은 화로다. 급히 얼음찜질을 한다. 뺨이 하얗게 제 모습을 찾는다. 따신 꿀물을 마시고 프로폴리스 한 방울을 목에 뿌린 후 다시 마스크를 끼운다. 기침이 멎고 눈이 반짝이며 숨소리가 고르고 맥박이 정상이다. 이제 자다가도 머리를 짚어볼 수 있고 열이 오르면 다시 얼음찜질로 식히고 숨소리를 들으며 대처할 수 있다.
싫다고 몸을 빼더니 편안해 보인다. 나를 걱정해 눈 좀 붙이라고 채근한다. 사회가 밀어낸 전염병 환자의 처지가 감내하기 겨운 충격이었나 보다. 그나마 자가 격리를 다행이라 여기고 곁에 보호자가 있다는 믿음에 견디기가 수월한 눈빛이다. 위생을 따지면 각방에 격리해야겠지만 불안한 마음은 고통스럽고 잠 못 들게 한다. 차라리 감염될지라도 마주보고 돌보니 진정되고 견딜힘도 생겨 몸이 가볍다.
카톡에 문자가 왔다. 감염예방법 제41조 및 43조에 따라 환자 동거인은 10일간 자택에 격리하고 외출을 자제하며 3일 이내 PCR 검사를 받고 6~7일차 다시 신속 항원검사를 받아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하라고 한다. 격리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일천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한다.
당사자는 처벌은 뒷일이다. 직면한 고통으로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다. 감염 예방규칙을 지키려니 환자가 하루 세끼 밥과 약을 먹어야 하는데 여든 넘은 환자가 스스로 해내기가 쉽지 않다. 곁에서 약과 밥상을 챙겨주려니 완전 격리가 어렵다. 환자에게는 자상한 격려와 칭찬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익숙한 가족의 손길이 전문성은 떨어져도 위생 규칙 준수 못잖게 편안한 위로가 되어 치료 효과를 높이리라 믿는다.
‘딩동딩동’ 벨 소리에 급히 문을 뻘줌이 연다. 한 청년이 박스를 문 앞에 놓고 사진을 찍더니 한달음에 엘리베이터를 탄다. 국가가 보낸 건강관리 세트다. 감기약 체온계 소독약 진단키트가 들었다. 이튿날부터는 결연된 관리병원에서 매일 환자의 몸 상태를 오전 오후 두 번 통화로 문진한다. 안방에 유배돼 갑갑하고 외로운 환자에게 무선통신이 마음의 격리를 허물고 공간 격리를 견뎌낼 힘이 된다.
일주일이 되었다. 상담사가 푹 쉬고 영양을 충분히 보충하며 체력을 보강하라고 당부한다. 환자가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후유증을 조심하시라며 하직 인사를 한다. 하룻밤에 만리성을 쌓는다고 그동안의 교감이 끝나려는 순간 마지막 감사 인사를 하며 목이 울컥 멘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 마리안느 수녀님이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난 날이 새삼 떠오른다.
십 일 만에 거뜬히 털고 나왔다. 잠잘 때도 벗지 않은 마스크 덕분인지 밥과 함께 꼬박꼬박 챙겨 먹은 약발 덕인지 전염도 막았다. 부부가 함께 겪으니 견딜만했다. NS극 자성이 바이러스 감염을 꿋꿋이 이겨내는 결합의 자력을 발휘했다. 10일간의 강제격리가 풀린 후에도 감염 예방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자신을 격리하여 외출을 자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한 달을 훌쩍 넘기고 부부 모임에 함께 나가는 날 정성들인 보람으로 흐뭇했다. 노노老老갈등이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지만 이젠 노노NoN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