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이후에도 준비한 자료를 보면서 인터뷰를 이어가던 내 쪽을 힐끔 한번 본 뒤, 담배를 길게 빨았다. 곧이어 입으로 하얀 담배 연기를 뿜어내곤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식당 맞은편 아우토반 방향으로 돌렸다. 고속도로에선 차들이 마치 레이스를 펼치듯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큰 키와 마른 체격에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는 곧 식당 앞의 잔디에 쪼그리고 앉아서 흡연을 이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면서 정장을 한 파독 광부 출신 이원근 선생과 대화를 이어갔다. 이 선생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서 시작해, 시간을 거슬러 지하 1000미터 탄광 속으로 들어가선 거친 숨소리와 함께 격류를 이뤘고, 다시 라인가도를 따라 유쾌하게 흐르다가, 노드라인베스트팔렌의 어느 뒷골목 술집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지치지 않고 거듭 물었고, 이 선생은 때론 즐거운 표정으로, 때론 회한에 잠긴 목소리로 그림처럼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다 물었어?" 서너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가 끝나고 식당에서 나오자, 그는 웃는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그는 간단히 이 선생과 인사를 나누곤 곧 자동차로 걸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나 역시 이 선생과 인사를 두세 차례 나눈 뒤 빠른 걸음으로 보조석에 앉았다. 나를 실은 그의 차는 휴게소를 벗어나 아우토반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퇴행적이고 음모적으로 일었던 박정희 신드룸에 맞서고자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 나섰던 그해 봄, 그는 나의 운전사였고, 나를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파독 광부들에게 안내해준 가이더였으며, 취재가 막혀 막막할 땐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준 친구였다. 2004년 그해 봄, 한국 경제성장의 첫 번째 디딤돌을 놓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땀과 눈물을 찾아 나선 나에게 그는, 고 윤남수 선생과 함께, 한마디로 영웅이었다.
파독 광부 및 간호사의 역사를 담은 논픽션 <독일 아리랑>의 현지 취재를 도왔던 파독 광부 출신 김일선씨가 지난 10일 오후 11시 숙환으로 독일 현지에서 별세했다고, 독일 <교포신문> 기자 나복찬씨가 11일 알려왔다. 향년 77세.
1946년 평안도에서 태어났다가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함께 월남해 춘천에 정착한 그는 1977년 6월 서독 광원 제2차 43진으로 파독, 오버하우젠 탄광에서 일했다. 3년 의무 근무 기간이 끝나고 귀국하지 않고 노드라인베스트팔렌주 캄프린트포트에 정착, 1999년 2월까지 일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재독 강원도민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 사회가 독일에 정착하고 성공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그는 2004년 6월 논픽션 <독일 아리랑>을 집필하기 위해 독일을 찾은 나를 현지의 파독 광부 출신 한국인들과 연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차로 인도해주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노고와 헌신에 너무 감사했던 나는 당시 그에게 약속했던 경비 외에도, 각종 비용을 아끼고 아껴서 남은 돈을 모두 그에게 줬던 기억이....
그의 헌신 덕분에, 나는 120분짜리 테이프 22개를 녹음해 올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논문과 자료를 교차 분석해 논픽션 <독일 아리랑>을 써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006년(2016년 개정판) 출간된 <독일 아리랑>은 파독 광부들의 지지 속에 파독 광부들의 역사와,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담은 대표적인 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책은 나중에 뮤지컬 등의 원작이나 <파독 광부 백서> 등의 참고 자료가 되기도 했고, 100개 이상의 학술 논문에 인용됐다.
지금 되돌아보니, 다정다감한 그의 목소리는 정작 책 <독일 아리랑>엔 상대적으로 많이 담겨 있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독자적인 장절을 이뤘다면, 그의 이야기는 중간 중간 등장하는 데 그치니까. 아마 그것은 그가 논픽션 속에서 나의 페르소나처럼 서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독일 아리랑>에 새겨진 그의 말은 이제 다시 또하나의 아리랑이 되려 한다.
"많은 파독 광부들이 핍박을 당해왔다. 독일 관광을 온 일부 한국인은 왜 이런 곳에서 사느냐, 는 비아냥거림과 동정의 시각도 없지 않았다. 가끔 한국에 들어가면 우리를 완전히 별 게 아닌 사람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금전적인 혜택이 아니다. 우리에 대한 따뜻한 시각, 역사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규명해 주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종합적이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380쪽)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나만이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적고 보니, 아저씨가 더욱 보고 싶다. "일선이 아저씨,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늘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202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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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포신문에 게재하게 됨을 김기자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4일(금)10시30분에 장례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