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필리핀은 닮은 점도 다른 점도 많다. 예전 박정희 정권때 박정권은 필리핀을 무척 부러워했다. 1960년대 당시 한국 대통령인 박정희가 필리핀을 방문해 한국도 필리핀처럼 부유한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하자 필리핀 대통령인 마르코스가 콧방귀를 뀐 일화는 유명하다. 마르코스 입장에서는 한국이 어느 세월에 필리핀을 따라오겠느냐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마르코스와 박정희는 둘다 엄청난 독재정권을 행한 것으로도 악명높다. 그뒤로 한국은 압축성장을 이뤄냈고 필리핀은 당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필리핀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필리핀의 대통령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이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두테르테의 딸을 부통령으로 해서 당선됐다. 전임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기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워 인권을 유린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두테르테의 행보에 강한 비판을 가했다. 인권유린이라며 간섭하자 두테르테는 갑자기 친중을 선언한다. 필리핀은 자고로 친미정책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미국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던 나라이기도 하다.세계에서 자국의 언어대신 영어가 자국어로 통용되는 거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감히 친중정책을 선언하고 중국에 올인한다. 하지만 필리핀은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안그래도 중국과 이른바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으로 중국으로부터 갖은 압박을 당해왔지만 친중을 선언한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더 심화됐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들 편에 서겠다고 발벗고 달려온 필리핀이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그러면 그렇지 이제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이지 그렇게 판단했다. 경제적 원조는 커녕 남중국해 인근에서 필리핀 어선에 대한 강압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아무말 하지 못했다. 그냥 입을 닫고 살았다. 필리핀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서 일방적으로 달라 붙었지만 얻은 결과는 무엇이냐며 두테르테 정권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정권은 바뀌었다.
새로 대통령이 된 마르코스 주니어는 색다른 외교정책을 표방한다. 그야말로 균형외교이다. 잃어버린 균형외교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것이다.두테르테의 일방적 친중정책을 버리고 미국으로 향한다. 지난해인 2022년 9월 당선되자 마자 미국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갖고 두테르테가 포기한 미국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그리고 상당한 효과를 얻었다. 중국은 화들짝 놀랐다. 일방적 친중을 표방한 필리핀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 것에 놀라고 만다. 하지만 중국은 사실 필리핀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필리핀을 아주 업신여긴 것이다. 아주 만만하게 보고 아니 깔보고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필리핀이 친중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니였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한다. 뒤늦게 필리핀의 중요성을 깨닳은 중국은 필리핀 마르코스 주니어를 정중히 맞이한다. 불과 몇달전까지 홀대했던 필리핀의 대통령이었다. 그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자 마자 중국은 조바심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중국은 필리핀에 30조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남중국해 공동개발을 하자는데 합의한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내놓고 친중을 표방했던 두테르테때 전혀 얻지 못한 것을 마르코스 주니어가 방미를 하면서 친미쪽으로 돌아서려는 모습을 보이기만 했는데도 상당한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필리핀을 또 중국에서 빼앗기는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하고 있을때 필리핀은 또 다른 제안을 미국에게 내민다. 지난 2023년 2월 미국에 엄청난 제안을 한다. 바로 필리핀 북쪽 4군데를 미국에게 군기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카밀로 오아시스 해군기지등 4곳인데 대만과 불과 4백km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그 교두보를 어디로 할 것인가 골머리를 앓던 미국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의 주한 미국과 일본 주둔 미군이 출동하는 것보다 필리핀 카밀로 오아시스 기지에서 발진하면 즉각 현장 도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국과 필리핀은 중국에게 보란 듯이 지난 4월 11일 미국 필리핀 연합훈련을 대규모로 펼친다.
중국입장에서는 대단한 투자를 약속한 필리핀이 자신들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다고 아주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을 때 필리핀은 또 다시 균형외교의 모습을 보인다. 미국 필리핀 군사훈련이 펼쳐지고 있던 그때 필리핀과 중국의 외교장관회담이 열린다. 양국 외교장관은 남중국해에서 양국이 상호협조를 하기로 약속한다. 일방적 외교판단을 내린 두테르테의 행보와 아주 반대되는 외교전략을 펴는 것이 바로 지금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주니어인 것이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 5월 1일 다시 미국을 찾아간다. 바이든과의 회담후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한다. 하지만 사흘뒤인 5월 4일에는 필리핀은 북부 4곳에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하지만 미중 대립때는 미국이 필리핀 기지를 사용할 수 없다는 미국에게는 아주 불리한 언급을 한 것이다.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 주니어는 그야말로 양다리 외교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균형외교를 실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마도 일방적 외교정책을 폈던 전임 두테르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또한 일방적으로 특정국에 편중했을때 발생할 그 뒷감당이 불가능할 수 있는 폐해를 그는 이런 저런 채널을 통해 스스로 알았음이 분명하다.
필리핀은 중국을 제외한다면 미국에게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를 노리고 있으며 머지않아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필리핀은 아주 중요한 요충지역으로 부상했다. 미국이 그렇게 탐내고 있던 필리핀북부 기지를 제공받으면 미중이 격돌시 미국에게 아주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국의 목줄을 쥐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필리핀은 일방적 외교노선을 걷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모두에게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외교전략을 확고히 표방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과 중국은 필리핀의 환심을 사기위해 전력투구를 할 것이다. 필리핀은 이제 계륵이 아니라 닭의 본체 수준이 된 것이다. 필리핀의 마음을 얻는자가 바로 태평양의 최강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판단을 미국과 중국 양측에서 할 것이 분명하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주니어는 그런 미중의 마음을 모두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과 필리핀의 다른 점은 한국에는 북한이라는 또 다른 위협세력이 있다는 것이 다르면 다르다. 하지만 지금 양국이 행하고 있는 외교방향은 너무도 다르다. 일방적 편향적 외교냐 전략적 양방향성 외교냐가 아주 다른 점이다. 한국은 예로부터 균형외교에 중점을 둔 나라이다. 세계적으로 스위스 못지 않게 중립 외교, 균형 외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3년 5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