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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 3장 37절 정읍(井邑) 사람 차 경석(車京石)이 정미년 五월에 처음으로 상제를 배알하였느니라. 이때 상제께서는 용암리(龍岩里) 수침막(水砧幕)에 머물고 계셨도다. 그는 원래 동학 신도였으나 일진회 전주 총대를 지낸 사람이라. 그는 전주 재무관과의 소송관계로 정읍에서 전주로 가던 길에 점심을 먹으려고 용암리 주막에 들렀는데 이때 상제께서도 김 자현(金自賢)과 몇 종도를 데리고 이 주막에 들르셨도다. 경석은 상제의 의표와 언어 동작을 살피고 그 비범하심을 알고 예를 갖추어 말씀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그를 태연히 대하시니 그는 여쭈어 말하기를 “무슨 업을 행하시나이까” 하니 상제께서 웃으시면서 “의술을 행하노라”고 말씀을 건네시고 술을 드셨도다. 그러시다가 상제께서 계탕 한 그릇을 그에게 권하시니 그가 받은 뒤에 그릇에 벌 한 마리가 빠져 죽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망설이고 있는 것을 상제께서 보시고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속으로 감복하는도다. 그는 상제께 서류를 꺼내어 보이면서 그 곡절을 여쭙고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송사를 처결한다 하온데 선생님께서 판단하여 주소서” 하고 상제를 시험코자 답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의 곡직은 여하간에 원래 대인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마땅히 활인지기를 찾을지언정 어찌 살기를 띠리오” 하시니 경석은 더욱 위대하심에 경복하여 곧 소송 서류를 불사르고 사사하기를 청하면서 머물고 계시는 곳을 묻는도다. 이에 상제께서 “나는 동역객 서역객 천지 무가객(東亦客西亦客天地無家客)이다”고 하시니라. 경석은 머물고 계시는 곳을 모르고 헤어지면 다시 배알할 기회가 없을 것을 짐작하고 날이 저물어 상제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기다려 그 뒤를 쫓으니라. 닿은 곳이 용암리(龍岩里) 물방아집이니라. 경석은 그 식사와 범절이 너무 조촐하여 한시도 견디기 어려워하였도다.
행록 3장 61절 상제께서 감방을 옮기신 후에 형렬ㆍ자현에게 가라사대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공사를 처결하나니 우리 셋이면 무슨 일이든지 결정하리라” 하시고 또 자현에게 가만히 가라사대 “비록 몇십만 인이 이러한 화액을 당하였을지라도 일호의 상처가 없이 다 풀리게 할지니 조금도 염려 말라” 하시니라. 그믐날 밤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이것은 서양에서 신명이 넘어옴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상제께서 옥중에서 과세하셨느니라.
공사 3장 1절 상제께서 무신년 봄 백암리 김 경학ㆍ최 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 공사를 보셨도다. 김 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상제의 지시에 좇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상제의 분부에 따라 상제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ㆍ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 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로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한 후 시급히 상제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때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행할 그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 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 하셨도다.
공사 3장 28절 태을주가 태인 화호리(禾湖里) 부근 숫구지에 전파되어 동리의 남녀노소가 다 외우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소문을 전하여 들으시고 “이것은 문 공신의 소치이니라. 아직 때가 이르므로 그 기운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고 약방 벽상에 “기동북이 고수 이서남이 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 쓰고 문밖에 있는 반석 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 경흔(金京訴)이라 써서 붙이고 일어서서 절하며 “내가 김 경흔으로부터 받았노라” 하시고 칼ㆍ붓ㆍ먹ㆍ부채 한 개씩을 반석 위에 벌여 놓으셨도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뜻이 가는 대로 집으라” 하시니 류 찬명은 칼을, 김 형렬은 부채를, 김 자현은 먹을, 한 공숙은 붓을 집으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네 종도를 약방 네 구석에 각각 앉히고 자신은 방 가운데 서시고 “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 번 외우시고 종도 세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를 종이돈과 같이 자르게 하고 그것을 벼룻집 속에 채워 넣고 남은 한 사람을 시켜 한 쪽씩 끄집어낼 때 “등우(鄧禹)”를 부르고 끄집어낸 종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고 또 그 종이쪽을 받는 사람도 역시 “등우(鄧禹)”를 부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받은 그 사람은 “청국지면(淸國知面)”이라 읽고 다시 먼저와 같이 반복하여 “마성(馬成)”을 부르고 다음에 “일본지면(日本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재삼 반복하여 “오한(吳漢)”을 부르고 다음에 “조선지면(朝鮮知面)”이라 읽게 하시니라. 二十八장과 二十四장을 마치기까지 종이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쪽지가 한 장도 어기지 않았도다.
교운 1장 31절 문 공신(文公信)과 박 장근ㆍ이 화춘 세 사람은 고부화액을 당하고 상제를 원망하며 불경한 패설을 일삼았도다. 이 화춘은 三월에 의병에게 포살되었고 박 장근은 의병으로부터 매를 맞고 뼈를 부러뜨렸도다. 상제께서 이 사실을 전해 들으시고 공신에게 마음을 바로잡을 것과 천노가 있음을 알려주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글을 써서 불사르셔서 이 화춘을 귀신으로서 위안하셨도다.
권지 2장 13절 상제께서 황 응종ㆍ김 갑칠을 데리고 원평 앞 다리를 지나려고 하시는데 저편에서 말을 타고 세 사람이 오는지라. 이것을 보시고 왼발로 길바닥을 한 번 구르고 다리 머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셨도다. 달려오던 말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으니 세 사람이 온갖 힘을 다 쓰나 말은 꼼짝달싹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이상히 생각하느니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다리를 건너와서 상제께 절하고 “길을 좀 비켜 주십사”고 청하기에 상제께서 웃으시며 한쪽으로 비켜서시니 그제서야 말굽이 떨어지고 그들은 오던 길을 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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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 이 들어가 있는 구절들이다. 위 구절 이외에 또 다른 <3 사람> 도 있다.
(참고)
교법 3장 15절 또 하루는 경석에게 가라사대 “갑오년 겨울에 너의 집에서 三인이 동맹한 일이 있느냐”고 물으시니 그렇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그 일을 어느 모해자가 밀고함으로써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고 하시니 경석이 낙루하며 “그렇소이다”고 대답하니라. 또 가라사대 “너의 형제가 음해자에게 복수코자 함은 사람의 정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너의 부친은 이것을 크게 근심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하시니라. 경석이 세 아우와 함께 옆방에 모여 서로 원심을 풀기로 정하고 상제께 고하니 상제께서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떠다 놓은 후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 경석의 네 형제가 명을 좇아 행하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방성대곡하니라.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너의 부친은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을 괴로워하니 그만 울음을 그치라” 이르시니라. 그 후에 “천고춘추 아방궁 만방일월 동작대(千古春秋阿房宮 萬方日月銅雀臺)”란 글을 써서 벽에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항상 마음에 두게 하셨도다.
예시 85절 또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三人同行七十里 五老峰前二十一
七月七夕三五夜 冬至寒食百五除
옛글 한 수(首)를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말씀하셨도다.
또 종도 김 병선에게
日入酉 亥子難分
日出寅卯辰 事不知
日正巳午未 開明
日中爲市交易退 帝出震
이라고 글 한 장을 써 주셨도다.
(1) 감방 안에 들어가 있는 <3 사람>
행록 3장 61절 상제께서 감방을 옮기신 후에 형렬ㆍ자현에게 가라사대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의 공사를 처결하나니 우리 셋이면 무슨 일이든지 결정하리라” 하시고 또 자현에게 가만히 가라사대 “비록 몇십만 인이 이러한 화액을 당하였을지라도 일호의 상처가 없이 다 풀리게 할지니 조금도 염려 말라” 하시니라. 그믐날 밤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이것은 서양에서 신명이 넘어옴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상제께서 옥중에서 과세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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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3 사람> 중에는 성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그러니까 성사를 포함하여 3사람이 한 묶음이라는 의미이다. 관장의 공사를 처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3사람이 감방(?) 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3 사람이 감방(?)에 있어야만 하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어쨌든 신명이 서양에서 넘어왔다....)
이 세 사람에 관해서는 도주께서도 말씀하셨다.
(2) 도주님의 <3 사람>
교운 2장 23절 성골이 옮겨진 후 十五일이 되니 상제께서 구세 제민하시고자 강세하신 날이 되니라. 이날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에 도주께서 “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 일체동(時時黙誦空山裡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이라” 말씀하셨도다. 그러나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그들 속에 권 태로ㆍ이 상우ㆍ이 우형이 끼어 있었도다. 이들은 재실에서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시는 도주의 시종을 들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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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舜禹王一切同> 에 세 사람이 나와 있다.....
이 세 사람은 <정일집중> 으로 연결되어 있음은 서전서문에 나와 있다.....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이 세 사람은 과녁 그 자체다.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 가 된다. 탈겁을 하든 뭘 하든 어쨌든 과녁 그 자체의 역할을 한다. 이 분들로 인해 이제 中 의 <자리> 가 존재한다....
누구든 <창조= 새로운 세상의 건설> 을 하려면 저 자리(=中의 자리) 로 들어가야 한다.....
切 는 體 로 보아도 무방하다. 도주께서 아래처럼 이야기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을 듯 하기는 하다....
(아래)
태극도 - 태극진경 5장 |
62
이해 4월 봉천명일 치성 후에 참례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내가 지난 기유(己酉 : 도기 원, 서기 1909)년 이날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모신 이래 벌써 사십유오년(四十有五年)이라. 그동안 창도 · 포덕에 전력한바 이에 어언 이순(耳順)이니 그대들이 나를 신종(信從)하고 또 헌공함을 가상히 여기노라. 증산 상제님께서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라.' 하시고 또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하셨으므로 상제님의 도호 '증산(甑山)'에 이어 나를 '정산(鼎山)'으로 하셨느니라. 상제님께서는 무극주로서 재천(在天)하시고 나는 태극주로서 재인(在人)하니, 체용(體用)은 둘이 아니요, 하나니라." 하시니라.
이 장면에서 중요한 질문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
중요한 질문:
(참고)의 글을 보면 <堯舜禹王一切同> 이라 하지 않고 <堯舜禹湯一切同> 이라 하는 것이 더 알기 쉬웠을 텐데.... 왜 湯 대신에 王을 선택하셨을까? 가 질문이다.
(참고)
공사 3장 37절 상제께서 六월 어느 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 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하셨도다.
공사 3장 39절 상제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대체로 글을 쓰셨다가 불사르시거나 혹은 종도들에게 외워 두도록 하셨도다.
(상략)
“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爲天下者不顧家事
桀惡其時也湯善其時也天道敎桀於惡天道敎湯於善
桀之亡湯之興在伊尹”
(하략)
그림감상이나 하고 갑니다.
(3) 그림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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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TMN43-wb5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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