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림 스님과 함께 금강경 읽기
| 책 소개 |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입니다. 육조 혜능 스님의 무심(無心)사상은 바로 『금강경』의 무주상(無住相)의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불취어상(不取於相) 시명보살(是名菩薩)은 『금강경』의 핵심사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相)은 아상(我相)을 말하기도 하지만, 절대적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법상(法相)을 말하기도 합니다. 참된 인간상을 『금강경』은 “상(相)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동안 봉국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강의하였던 내용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환경 등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금강경』에 비유하고, 인용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념과 갈등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념의 노예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지나친 확신주의자들이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병폐를 『금강경』의 사상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상(相)을 버린 새로운 인간상에서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읽기를 바랍니다. 특히 강한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이나 종교인들은 종교와 이념을 떠나서 『금강경』을 많이 읽으면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금강경』을 독송하면 불교를 뛰어 넘는 불교도가 됩니다. 기독교를 하고, 또 다른 종교를 믿어도 『금강경』을 읽으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을 깨달고 하나님의 실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진리에 눈을 뜨게 하고 우주의 실상을 깨달게 하는 가르침이 『금강경』에 들어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고자 하는 사람, 또 자기의 세계관이 절대적이라고 고집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 심지어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는 사람, 정치를 하고 시민사회운동이나 민주주의운동을 하는 사람, 학문을 하고 연구실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 특히 민족의 숙원 사업인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 결국 모든 사람이 『금강경』을 읽어야 합니다.
| 저자 소개 | 임효림 스님
1968년 승려가 된 후 전국 선원에서 운수납자로 수행하였으며,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불교신문사 사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성남 봉국사 주지, 만해마을 사무총장, 등 소임을 맡고 있으며,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으로, 계간 《유심》 복간호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 산문집 『그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곳에 스님이 있었네』,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 『사십구재란 무엇인가』,『행복으로 가는 기도』,『자유로 가는 길 道』,『민족의 길』등이 있다. 서예전, 시화전, 다수 출품하였으며,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하였다.
| 목차 |
책을 내면서 |
제1강 강의를 시작하며
제2강 금강반야바라밀에 대하여
제3강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 제1
제4강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제2
제5강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제3
제6강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제4
제7강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5
제8강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제6
제9강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제7
제10강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제8
제11강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 제9
제12강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제10
제13강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 제11
제14강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 제12
제15강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제13
제16강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제14
제17강 지경공덕분(地境功德分) 제15
제18강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제16
제19강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제17
제20강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제18
제21강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제19
제22강 리색리상분(離色離相分) 제20
제23강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제21
제24강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 제22
제25강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제23
제26강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 제24
제27강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제25
제28강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제26
제29강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제27
제30강 불수불탐분(不受不貪分) 제28
제31강 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제29
제32강 일합이상분(一合離相分) 제30
제33강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제31
제34강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제32
| 본문 중에서 |
이와 같이 무량, 무수, 무변한 중생을 멸도 하지만, 실은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느니라.
어떠한 연고냐?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금강경』의 최고 핵심인 「대승정종분」의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싱거워요. 너무 쉬워서 어려운 경우가 이런 경우라. 마음을 항복받는다는 것이 “마음을 어디에 머물고 어떻게 항복받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것이 “무수(無數)하고, 무변(無邊)한 중생을 멸도 하였지만, 사실은 멸도를 얻은 중생은 없다.“고 하고, 그 이유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 말씀은 대승불교의 선언(宣言)입니다. 『금강경』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불교의 핵심이며 대승불교의 일대 선언입니다.
보살은 상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다. 『금강경』은 어려운 경은 아닙니다. 상(相)이 있으면 중생이고, 상(相)이 없으면 바로 부처님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경전이 『금강경』입니다. 처음에서 끝까지 이것 하나 가르쳐주는 경전이 『금강경』입니다.
- 47~48 쪽
「대승정종분」에서도 “아상(我相)……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도리를 알면 바로 부처님이 됩니다.
여기 상(相)을 없애라는 내용의 자작시(自作詩) 하나를 낭송하겠습니다.
빨래
스스로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면서도
돌아보면 남아있는 자존심
얼마나 비벼 빨고 헹궈야 하나
문득 고개 들고 쳐다보니
초겨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다 - 55쪽 「대승정종분」중에서
중국에 스님 가운데 단하(丹霞) 천연(天然)이라는 스님이 계셨어요. 이 스님은 그렇게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든지,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든지, 제자를 많이 길렀다든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주 유명해. 왜 유명하냐? 한 가지 퍼포먼스를 했어요.
이 스님이 어느 절에 객승으로 갔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객승으로 가면 설움이 많아. 방에 군불도 안 넣고 썰렁한 방에서 자게 된 거야. 그래서 원주 스님한테 “군불 좀 때주세요” 하니, “예 알았습니다.” 하고 안 때주거든. 도량을 돌아보니 장작도 없어요. 그래서 법당에 가서보니까,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나무로 돼 있거든, 목불상이야. 그걸 가져다가 도끼로 부셔서 불을 땠어. 원주가 가서보니 불을 때는 데 부처님 불상을 때거든. 노발대발하여, “왜 부처님을 태우느냐?” 그러니 천연 선사가 태연하게 지팡이를 들고 재를 뒤적뒤적하면서 “부처님이면 사리가 나와야 하지 않느냐?” 한 거야. “목불인데, 거기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이 스님이 “사리도 없는데, 무슨 부처님이냐” 그랬다는 그야. 그것 하나로 아주 유명한 스님이 되었습니다. 천고에 빛나는 퍼포먼스를 했고, 위대한 골수 법문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그 실상을 보려고 하지 우상을 보고 껍데기를 보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상이란
모두 다 허망함이니,
만약 모든 상을 상이 아닌 줄로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이 구절이 한문으로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의 형태로 된 구절이 『금강경』에 세 군데가 나오는데 이것을 사구게(四句偈)라고 해. 귀중하게 외워서 독송하게 합니다. 경전이 길어서 다 못 외우지 않아요? 그럼 사구게(四句偈)라도 외워두라고 경전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은 외워두십시오.
이것이 「여리실견(如理實見)」입니다. 이치대로 사물의 실상을 보고 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금강경』 전체의 내용이 “여기 무릇 있는 바의 상이란 다 허망함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닌 줄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하는 여기에 다 들어 있어요.
남의 종교를 비유로 들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예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기독교가 어떻다 하는 것은 다 알고 있잖아요. 예수가 죽어서 다시 부활했다.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나중에 종말이 오고,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오면 다시 예수님이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그것을 재림(再臨)이라고 하고, 기독교에서 중요한 사상이 부활사상과 재림사상입니다. 이것을 안 믿으면 신도 자격이 없다고 그래요. 예수님이 다시 오면 죽어서 무덤 속에 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살아서 일어난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안 믿는 사람은 안 일어난다는 거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얘기를 하기에 내가 웃으면서 (그 사람을 비꼬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참 다행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독교 안 할란다. 아니 천 년 이천 년 동안 땅속이 묻혀 썩어 있다가 그 속에서 벌떡벌떡 일어나서 나오면 좋을 게 뭐 있나? 썩어서 없어지면 썩어서 없어지고 말아야지. 그 속에 있다가 썩어서 없어지면 그만이지, 지금 있는 사람만 해도 지구가 좁아서 살기가 어려운데 죽은 사람까지 일어나서 나오면, 영화 같은 곳에서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 큰 난리 아니냐?” 아무리 종교이지만 상식에서 벗어나고, 이치에서 벗어난 것을 믿어서야 되겠느냐. 내가 그랬어요.
그 사람들은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몸뚱이에 집착하는 거야. 색신에 집착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도 간단하게 예수님의 법신, 즉 그 사상과 철학,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정신이 부활했다고 하면 되는데 …… 육신으로서 예수는 죽었지만, 예수님이 남긴 위대한 말씀이 살아났다 이러면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재림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예수가 내려와 길거리에서 돌아다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상과 철학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것이 예수의 재림이라 봐야지. - 74~76 쪽 「여리실견분」중에서
어떤 곳에서 장한 남편 상(賞)을 주기로 했습니다. 그 수상내역을 잘 들어봐요.
첫 번째 장려상, “아내의, 아내에 의한, 아내를 위한 남편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동상 받은 사람은, “아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지 먼저 생각한다.”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은상, “나는 아내를 존경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단하지요. 모두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상 금상, “나는 아내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굉장하죠. 이 정도면 금상 깜입니다.
이번에는 특별상, “니들이 아내를 알아?”입니다.
또 공로상이 있습니다. “나에게 아내가 없다는 것은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 기가 막히잖아요.
이제 제일 마지막 영예의 대상을 받은 사람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입니다. 이 정도 되면 영예의 대상을 받을 만하지요. 정말 아내를 위한 남편입니다.
오늘은 왜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면 사랑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대체 뭐냐? 한마디로 일체동관(一體同觀)입니다. 일체(一體)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천지(天地)는 여아동근(如我同根)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도 나와 같은 뿌리라는 말이지요. - 247~248쪽 「일체동관분」중에서
내가 수구암에 있을 때입니다. 암(癌)에 걸린 사람이 찾아왔어요. 수구암(守口菴)에서 요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암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아야지 한가하게 절에서 무슨 요양이냐?” 하고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병원에서는 이미 못 고친다고 했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내가 병원에서 이미 못 고친다고 했으면 죽은 목숨인데, 더욱 요양을 한다고 하는 것은 안 맞는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래도 좀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민간요법이나 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여보시오. 병원에서 암 말기라고 하는데, 민간요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여기 수구암이 조용하고 공기도 맑고 물도 좋은 곳이니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도량에서 죽겠다면 내가 허락을 하겠습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민간요법 그런 것 버리고 병을 낳겠다는 생각을 놓아버리세요. 그러면 여기서 죽을 때까지 지내도록 허락을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이미 낳겠다는 것은 포기를 했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같이 지내게 되면서 내가 매일같이 그 분에게 하는 이야기가 『금강경』을 읽어라.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즐겁게 가져라.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거울을 보고 웃어라. 그리고 하루 종일 웃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라. 지금부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인생의 행복,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고 즐겨봐라. 그랬습니다. 병이 나아도 결국은 언젠가는 죽는다. 병이 안 나아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면 하루를 살아도 행복을 느끼고 사는 것과 십 년, 이십 년을 살아도 불행을 느끼고 사는 것, 둘 중에 어느 삶을 택할 것이냐. 지금부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행복해지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그 뒤에 병이 나았습니다. - 335~336 쪽 「불수불탐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