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안남산이 그리 크고 험준한 산은 아니라 해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처녀
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군명 일행에게 하룻밤 귀한 안식처가 됐던 동굴을 품은 암벽의 뒤쪽 절벽
역시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빽빽한 수림과 바로 이어져 짐승의 발길조차 드문 절벽의 중간 오장쯤 되는
곳에 돌출 된 바위 뒤로 작은 암동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은 바위 옆 소
나무에 둥지를 튼 솔개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태고이래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누구도 찾지 않았던 동굴에는 지금 세 사람
의 숨소리가 가득했다.
"놀라운 일이로군. 내가 도울 일은 없겠나?"
"어, 없습니다. 허억……. 다, 다만 운공 중 혈맥이 과도하게 팽창되는 수도
있는데 그, 그때 명문혈(命門穴)을 가볍게 몇 차례 쳐주시면 시간을 다, 단축
할 수 있습니다……."
"알겠네, 내 명심하지."
위사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태열이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힘들게 목을 돌린 구태열의 눈길을 받는 사람은 사군명이었다.
"구, 구결은 다 외우셨소?"
"물론입니다."
구태열보다는 상처가 덜한 사군명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순간, 위사무가 두 사람을 재촉했다.
"서두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통스럽다고 하지 않았나?"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위사무의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상처투성이인 몸을
힘들게 움직여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물구나무를 선 두 사람이 결가부좌를 틀더니 무릎을 동굴
벽에 기대고 중심을 잡았다.
무리해서 움직이는 통에 금창약을 바른 상처가 터졌는지 곳곳에서 피가 흘렀
다.
피가 몰려 홍시처럼 붉어진 얼굴로 듣기에도 고통스러운 거센 숨소리를 토하
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위사무의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공력을 잃고 상처로 뒤덮인 몸으로 쉽지 않은 자세를 취한 두 사람의 전신이
고통으로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나 대략 일각쯤 지나자 숨결이 점차 잦아들었고 다시 일각이 지나자 가늘게
경련하던 목줄기며 팔다리가 석상처럼 안정되기 시작했다.
"휴우……."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위사무는 가슴을 채우며 밀려드는 감회를
느꼈다.
"세상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지 않은가……. 저 자가 그런 내력을 지녔을 줄
이야……."
불과 두 시진 전의 일을 회상하는 위사무의 표정이 꿈결을 더듬는 사람처럼
아득해졌다.
위사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온통 시체뿐인 구릉을 등지고 한 몸이 되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흡사 유계를 떠도는 악령처럼 보인 것이다.
하나 구름 한 점 없는 백주대낮에 헛것이 보일 리 없었다.
퍼뜩 정신을 수습한 위사무는 재빨리 몸을 날려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섰다.
"네 놈들은 누구냐?"
"위, 위 표두님……!"
땅으로 처박은 고개를 힘들게 들어올리며 간신히 새나오는 우측 사내의 음성.
위사무는 손을 내뻗어 사내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군명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안타까운 외침을 발한 위사무가 사군명의 명문혈에 장심을 밀착시키고 공력을
주입하려는 순간, 사군명과 함께 의지하고 서 있던 사내가 황급히 입을 열었
다.
"아, 안됩니다!"
"안 되다니? 이렇듯 중상을 입었으니 당장 공력을 주입해야 우선 운신을 할
것 아닌가!"
사군명과 함께 상허촌을 찾아왔던 구태열의 모습을 알아보지 않았으면 요절을
낼 기세였다.
하나 구태열은 고개를 저었다.
"무, 무공을 폐지 당했으니 공력을 주입하면 감당하지 못하고 즈, 즉사 할겁
니다."
"무공을 폐지 당했다고……!"
황급히 사군명의 맥문을 살피기 시작한 위사무의 표정이 의혹에서 절망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시나 했건만 과연 사군명의 전신에는 한줌의 진기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이…… 대체 어찌된 일이냐?"
위사무가 망연자실 탄식을 토할 때, 구태열이 믿지 못할 소리를 했다.
"제, 제게 무공을 되살릴 방법이 이, 있습니다."
"무슨 소린가? 자네나 군명이나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는 걸 모르는가
?"
사군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분노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구태열에게 향했다.
하나 구태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뜻 모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 역혈반혼공(逆血反魂功)을 아십니까?"
"역혈반혼공!"
위사무의 얼굴에는 경악과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그가 역혈반혼공에 대해 들은 것은 무당의 촉망받는 후기지수이던 시절, 무공
뿐 아니라 무림의 야사(野史)나 기담(奇談)에 밝은 장로 청진자를 통해서였다
―무림에 기이한 무공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역혈반혼공이라는 기공이다.
따로 익힐 필요도 없이 운공의 요해와 구결만 알면 되는 기공으로 무림인이라
면 누구나 탐낼만하다.
그렇다고, 절세의 신공은 아니고 원래 서역의 밀종(密宗)에서 전해지는 사술
의 일종인데 오직 하나 폐지 당한 무공을 되살리는 효능이 있을 뿐이다.
단전에 형성되어 전신의 기맥을 도는 내공이 흡정대법 따위에 걸려 소진되거
나 과도하게 공력을 써서 탈진되는 것이라면 모르되 기혈을 봉쇄 당하고 단전
이 파괴되어 내공을 잃은 경우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이 그 효능의 핵
심이다.
만일 잔이 깨져 물이 바닥에 스몄다면 어쩔 수 없어도 그 밑에 큰그릇이 있다
면 다시 모아 잔을 채울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단전과 기혈이 내공을 담는 잔이라면 인체는 큰그릇이라는 말이다.
구시술(拘屍術)을 연구하던 밀종의 술사들이 창안해 불사(不死)의 신공이라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썼다고 한다.
아직 무림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내부반란으로 쫓겨난 밀종의 종주가 원나라
황실에 몸을 의탁하며 전해줬다는 소문이 있다.
원이 천하를 다스리던 시절에도 황실의 지친(至親)이나 비밀근위(秘密近衛)에
게만 전해졌다는 전설의 비전이오, 원이 몰락하며 그나마 잊혀진 전설이 되어
버린 역혈기공이라는 이름이 구태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자네가 원의 후예던가?"
퍼뜩 스치는 생각대로 입에 올린 위사무의 질문에 구태열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흐흐…… 근황비영위사(近皇秘影衛士)라는 거, 거창한 신분을 지니고 이,
있지요."
정확히 어떤 지위인지는 몰라도 그나마 이어지던 저항마저 멈추고 뿔뿔이 흩
어진 원황실과 관계된 인물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순간, 말없이 듣고만 있던 사군명이 고개를 돌렸다.
"하면, 패, 팽선배를 찾아온 이유도……?"
"그, 그렇소."
구태열의 숨겨진 사연은 사군명뿐 아니라 위사무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산발적인 저항을 힘들게 이어가던 원황실의 마지막 희망은 주원장이 이끄는
한족에게 패해 장선 너머로 쫓겨올 당시 혼란의 와중에 종적을 묘연해진 화기
의 명가 눌지(訥只) 가문을 찾는 일이었다.
대초원에 흩어진 부족을 뒤지며 탐문한지 오 년.
눌지가의 여인을 찾았으나 눌지가의 유일한 후손인 자신의 아들은 이미 전쟁
에 나가 소식이 없다는 것 아닌가.
모두 눌지가의 멸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한데 어느 날부터 명나라 군사들이 눌지가문의 비전으로 보이는 화기를 쓰는
것이 아닌가.
패잔병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자리도 황제이라고 서로 적통(嫡統)임을 다투는
십여 명의 황족 중 하나가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라는데 생각이 미쳤
다.
그는 구태열에게 일의 진상을 밝히고 만일 눌지가의 후손이 살아있다면 잡아
오든지 비전의 화기술을 회수해 올 것이며 그도 아니면 눌지가의 화기를 만든
자를 죽여 동족의 원한을 갚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따라 명나라 진영으로 잠입한 구태열은 천신만고 끝에 눌지가의 화기
를 만든 자가 그 공으로 말단 병사에서 소진무라는 벼슬까지 지냈으나 어쩐
일인지 군문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후, 절강성 출신의 팽가라는 것만 알고 중원으로 들어온 지 칠 년.
그는 몇 번이나 헛다리를 짚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유력한 용의자인 팽
상문을 찾아 세권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번 표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팽상문이 눌지가의 화기술을 익힌 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팽상문도 눌지가의 후손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남모르는
아픔을 지니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이 흔들렸으며, 표행이 시작된 후
서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표사들의 충정에 자신도 모르게 임시방편
으로 얻은 표사라는 직업에 동화되어 갔다.
결정적으로, 오늘 새벽 사군명이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비뽑기를 자청
하는 순간 그는 표행을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사군명과의 약속을 반
드시 지키리라 다짐한 것이다.
힘들게 얘기를 마친 구태열의 표정이 처참한 몰골과 어울리지 않게 평온했다.
"크흐흐, 아까 흐, 흑마방주라는 자가 무공을 폐, 폐하겠다고 했을 때 이번
표, 표행이 나에게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뭐요……."
사군명은 구태열의 손을 잡았다.
"구선배……!"
구태열이 역혈반혼공을 익혔다는 것이 확실하고 지금 두 사람의 무공을 되찾
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 이상 위사무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럼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야겠네. 이런 시체더미 속에 계속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두 사람을 양어깨에 들쳐 멘 위사무는 급한 대로 안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예리한 그의 눈은 적당한 장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에 들어서는 즉시 한 자 한 자 성의껏 구결을 외우는 구태열과 고통으로
혼미해지는 정신을 추스르며 구결을 전수 받는 사군명.
두 사람의 초인적인 의지와 뜨거운 동료애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다섯 번을 반복하고 거꾸로 사군명이 외워 한자도 틀리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까지 한 시진 남짓한 시간뿐이 걸리지 않았으니…….
위사무는 운공하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갈천위의 행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염상호의 추적을 따돌리느라
지체한 자신 때문에 사군명에게 위난이 닥쳤다는 자책감을 느끼는 위사무는
구태열이 역혈반혼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모두가 천명(天命)이다. 천하가 피에 잠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늘의
뜻이 군명이에게 이어진 것이다……."
두 시진쯤 지났을까.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지 그나마 희미하게 윤곽을 밝히던 빛이 서서
히 사라져갔다.
하나 위사무의 형형한 눈은 두 사람의 모공에서 흐르는 땀방울 하나까지 놓치
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천명 이로다...
휴~~사군명의 활약을다시보게되넹 ㅎㅎ
즐감함니다.
아~다행이네요
즐독하고 갑니다~^
휴~~~~
다행이다.
즐독합니다,
무협지어 참맛
감사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즐~~~감!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즐감
즐독입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하고 깁니다~~~
즐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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