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너머 '진짜 보건의료 문제' 취재기 - 대한민국 의료계에 켜진 비상 신호, 의료 붕괴를 취재하다.
의사 수만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바이탈과 인력 부족, 대비하지 못한 고령화, 외면당하는 공공병원, 한국 의료의 '진짜 문제'를 밝히다
의료라는 서비스를 매개로 만나는 의사와 환자는 정보가 비대칭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의사가 값비싼 시술을 권하거나, 자주 병원을 찾도록 유도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입원을 권유해도 비전문가인 환자는 알아챌 수 없다. 일반적으로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수요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의료 시장은 의사라는 '공급자'가 수요를 자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공급자 유인 수요'라고 부른다. 의사가 무분별하게 늘어나거나, 직업윤리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의사가 배출된다면 잘못된 의료 수요를 과다하게 유발할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의대 정원을 규율하고, 시험을 통해 의사 면허를 발급한다. 사회적 필요에 알맞게 의사 수를 통제하고,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한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독점적 신분은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사가 비교적 높은 수입과 안정적 지위를 누리는 바탕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노인의학이 전문 분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노인과를 개설하지 않고, 노인의학을 하는 사람들도 갈 자리가 없다. 고령화의 해일이 몰려오지만 한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그 속에서 한국의 노인들은 오늘도 병원 여기저기를 미로처럼 헤매고 있다
의대 증원은 의과대학 정원뿐만 아니라 '의료 개혁'이라는 우리 시대의 필수 과제를 여는 관문이다. 의대 정원 확대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 살리는 의사'를 늘리는 것이다. 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는 여러 험난한 골짜기가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의사 수를 채워야겠지만, 이를 필수의료에 흘러가도록 세심하게 물길을 내는 작업은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