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는 '1948년 건국설'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기준에 관한 관습법을 성문화한 몬테비데오협약에 따른 국민•영토•정부•주권의 네 가지 요소를 근거로 한다.
이에 비해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보는 '1919년 건국설'은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단락을 근거로 한다.
저자는 건국 시점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1919년의 3•1독립선언에서 1948년의 정부 수립까지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건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신용하는 '대한민국 건국은 어느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國父論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파와 좌파의 양대 진영은 이승만을 두고 '신화화'와 '악마화'의 극단적인 담론 대결을 펼치고 있다. 우파진영에서는 이승만을 신화적인 인물로 추앙하면서 '건국 대통령'으로 호칭한다. 이에 반해 좌파진영에서는 이승만에 분단 책임을 전가하면서 '악마와 같은 독재자'로 매도하고 1948년 건국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승만대신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로 내세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국부라는 호칭 대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미국처럼 독립에 기여한 다수의 역사적 인물들을 선정하여 '건국의 아버지들'로 함께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극한적인 진영 대결을 지양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친일잔재 청산, 군사독재 청산, 4•19로부터 5•18에 이르는 민주화운동의 정리 등의 세 갈래로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