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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그 말의 원조는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영국과 한판 대결을 망설이는 북미 식민지 주민들에게 독립전쟁을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신생 독립국 시절 미국의 앞날은 어두웠다. 참전용사들에게 연금도 지급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생계를 호소하는 상이군인들을 피해 정부 관리들이 사방으로 도망 다닐 정도였다. 1783년 파리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은 나라가 1개인지, 13개인지도 불분명했다. 결국 13개 주를 하나로 묶는 헌법이 필요했다.
워싱턴 장군의 부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헌법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섰다. 궁리 끝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옛날 구호를 상기시켰다. 연방정부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동료였던 토머스 제퍼슨이 제동을 걸었다. 제퍼슨은 연방정부가 주정부를 능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출신 성분부터 달랐다. 제퍼슨은 부유하게 태어나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해밀턴은 카리브해 선술집 여주인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아버지도, 나이도 모르고 자랐다. 해밀턴은 술집에서 잔심부름하며 자란 덕에 돈 문제에는 훤했다. 자기가 만든 헌법에 따라 재무장관이 되자마자 해밀턴은 독립유공자 보훈 경비를 포함한 7546만달러의 국가부채를 확정하고, 국채 발행을 서둘렀다. 제퍼슨이 연방정부가 비대해지는 것을 걱정하며 국채 발행을 줄이려 하자 “독립유공자들을 푸대접하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면서 정면 돌파했다.
1790년 8월 4일 미국의 국채발행법이 통과되었다. 오늘날 31조달러로 커진 미국 국가부채의 시작이었다. 그 법을 만든 해밀턴은 자기 아버지도, 생일도 몰랐지만, 보훈의 중요성은 알았다. 반면 대한민국은 보훈에 소홀했다. 1948년 미군정청이 떠나며 남긴 적자 1563만원의 무게에 눌려서 독립유공자를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 그들이 없었으면 대한민국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