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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괘는 안절부절 뒤뜰을 서성거렸다.
이틀 전 아침, 그의 장원을 나선 표행이 기어코 흑마방의 무리들에게 당했다
는 소식이 심사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왜 하루만이라도 더 붙잡아두지 못했던가……. 본가의 움직임이 조금만 더
빨랐어도 좋았을 것을……."
몇 안 되는 절친한 벗 석백송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만으로도 못
견딜 판에 하나같이 믿음직스러웠던 표사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더욱 그를 힘
들게 만들었다.
본가의 인물들이 출동한다는 언질만 없었어도 본가의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
로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어길 생각도 해 본 그였다.
하나 금진후가 직접 나타나 특별히 당부한 마당에 그로서는 그저 본가의 움직
임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다.
"흑마방……! 내 기필코 네놈들의 멸망을 지켜보고야 말 것이다!"
자책과 아쉬움은 결국 흑마방에 대한 분노로 귀결되었다.
순간, 표표히 나타난 한 인물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지당한 말이오. 흑마방 따위가 날뛰는 천하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언제고 이
런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거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강현괘가 시골농부 행색을 하고 나타난
금천후의 모습을 발견하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미처 오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일부러 남의 눈을 피한 것이니 개의치 마시오."
하긴, 금진후와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남들의 눈에 뜨이면 곤란한 일이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강현괘의 의심과 불만을 다독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금진후는 자못 비분에 넘치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본 가의 가주께서 조사의 유훈을 어기고 힘을 기르시는 것도 무도한 무리들
이 활개치는 강호의 어지러움을 더 이상 두고 볼수 없다는 충정 때문임을 잘
알고있을 거요. 급기야 놈들의 방자함이 감히 본가의 식솔이 될 사람을 납치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가주의 인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도 장담하지
못하겠소."
강현괘의 눈에 의분(義憤)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확인한 금진후가 슬쩍 말꼬
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봉래도의 인물들이 어찌 나올지 그 또한 걱정이외다……."
대다수 중원 무림인들이 그렇듯 강현괘 역시 봉래도하면 막강한 힘과 편협한
기질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화산.
강현괘는 심각하게 말문을 열었다.
"전후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모두가 흑마방의 야욕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
을 납득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강현괘 스스로도 봉래도의 인물들이 이런저런 사정을 이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의 목소리에는 그다지 힘이 실리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금진후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들에게 그럴 도량이 있으면 애초에 불가피한 사고를 음모라 여기
고 삼십년 간 원한을 쌓아오지도 않았을 거요."
금진후로서는 본가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을 때 무적군영대원들은 물론 강호
의 무림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시 한 번 예측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강현괘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금진후가 말을 이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흑마방의 손에서 봉래도의 군주를 구해 혼사를 원만히 치
르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중원은 봉래도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오. 어쩌면 다시 찾아온다 해도 소용없을지도 모르지……."
순간, 강현괘의 얼굴에서 구름이 걷히고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봉래도의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들의 힘이 중
원을 만만히 볼만큼 강성한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중원천하가 그들에게 유
린당하는 꼴을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금진후가 약간은 감동스러운 얼굴을 보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반응에 고무됐는가.
바위라도 부술 듯 잔뜩 힘이 들어간 강현괘의 주먹이 허공으로 치켜졌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쾌도난마(快刀亂麻)! 차제에 정도협사들의 힘을 모아
오랜 근심이었던 봉래도를 깨부수고 그 여세를 몰아 흑마방을 비롯한 중원의
불칙한 무리들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야말로 무림천하를 반
석에 올려놓으라고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 모릅니다!"
가히 구구절절이 명언이요 정답이었다.
자신은 물론이요 가주를 비롯한 세가인물들의 의도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금진후는 이제껏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격의 없는 태도를 보이며 강현괘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몸을 굽혀 세가의 무공을 배우고 지시를 받기는 하나 모두 가슴속에 품은 파
사현정(破邪顯正)의 대의 때문임은 익히 알고 있던 바요. 오늘 이토록 의기에
넘치는 장한 얘기를 듣고 보니 정녕 강대협(姜大俠)같은 분이야말로 중원을
지키는 힘이요 뿌리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소이다. 대체 이 감격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소!"
감격하기는 강현괘가 더할지도 몰랐다.
무림의 하늘로 군림하는 무적세가의 총관이자 자신에게는 사부나 다름없는 금
진후가 이토록 감격에 겨워 자신의 충정을 높이 평가하니 새삼 가슴속에 불길
이 이는 기분이었다.
"과분하신 말씀! 하나 언제든 세가에서 탕마멸사(蕩魔滅邪)의 깃발을 들기만
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리라는 것만은 분명히 약속하겠습니다!"
정의가 천대받고 불의가 득세하는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기 위해 허울뿐인
군림의 자리를 박차고 무림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그럴듯한 대의명분.
금천후를 비롯한 세가의 인물들조차 그것이 더러운 야욕의 또 다른 얼굴이라
는 것을 모르고 취해있거늘 강현괘처럼 내막을 모르는 무림인이야 더 말할 것
도 없었다.
딴에는 일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믿는 우직한 의기 자체가 천하에 또 다른
근심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강현괘는 그저 치미는 격동을 다스리느라
거친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
별다른 수고를 할 필요가 없고, 한 푼의 은자도 들지 않으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의외로 간단했다.
금진후는 기꺼이 세 치 혀를 놀려 강현괘를 한껏 치켜올렸다.
"아마도 무림의 역사가 바로잡히는 날, 독장나룡 강현괘라는 이름은 협혼강골
(俠魂强骨)을 지닌 영웅의 표상으로 쓰여질 것이오!"
순간, 조금 전만 해도 표사들이 당한 참변에 가슴 아파하고 석백송에게 죄책
감을 느끼던 강현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장이라도 봉래도가 쳐들어오기
만 기다리는 아니, 반드시 쳐들어와야 한다고 갈망하는 호전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사심이 없어서 위험하고 어리석어서 서글픈 또 하나의 꼭두각시!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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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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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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