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생각하라[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동아일보 2021-10-20 03:00
<139> 부모의 지나친 불안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부모가 되고 나서 더 불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치료를 요하는 정도의 불안이 생겨나는 경우, 진료를 해보면 그 불안의 뿌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했던 기억에서 발견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정되고 충분히 사랑을 받았던 느낌이 없었다.
한 엄마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했다. “저희 아버지는 잘해 줄 때는 무척 잘해 주셨는데, 뭔가 잘못되면 불같이 화를 내셨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의 화는 대부분 본인의 불안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당시 아버지의 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성격이 유별나서 그렇지, 나를 미워하셨던 것은 아니었지’라고 좋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 느꼈던 죽을 것 같은 공포는 해결되지 않은 불안으로 자신 안에 간직하게 됐다.
아이를 낳으면, 간직된 불안은 다른 형태의 불안으로 표출된다. 이 엄마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 아이를 밖으로 한 발짝도 데리고 나오질 못했다. 아이가 찬바람을 한 번만 쐐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았고 밖에 나가서 뭘 만지기라도 하면 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쩌다 밖으로 데리고 나오게 될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를 꽁꽁 싸맸다. 이 엄마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불안 때문인 줄도 몰랐다. 단지 아이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불안은 무의식적인 행동을 지배한다.
왜 어린 시절 몸속에 잔존해 있던 불안이, 미혼일 때는 드러나지 않다가 아이를 낳으면 밖으로 표출될까. 무의식 속에 있는 엄마들의 보살핌 본능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로 아이를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과잉 반응하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누구나 아이를 100% 무결점의 결정체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문제가 있을 경우, 혹 그것 때문에 아이가 오염되고 상처를 받을까 봐 더 예민해진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상황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 아버지가 가진 불안이 다른 형태로 자식이던 아이 엄마에게 전해진 것처럼 다시 아이에게 대물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극단적으로 용납을 못할 때, 남들이 보기에 지나친 행동 뒤에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불안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절대 안 돼” “결단코 싫어” 같은 말이 붙는 행동에는 살며시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있다. 어렵더라도 내 마음이 편안한 대로가 아니라 아이나 배우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내 불안에 영향을 덜 받는다. 혹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는 게 어렵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
엄마들만 어린 시절로 인한 불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빠들의 불안은 ‘강해야 한다’를 강요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아이에게 “강해야 해! 너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니?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는 세상이야”라고 말하고 있다면 자신의 근본 불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빠들은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그로 인해 세상에 대한 불신감을 키우고 불안이 커진다. 아빠가 가진 불안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 아이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 아이에게 부적절한 기준을 만들어주고, 부적절하게 지침을 줄 가능성이 많다.
어른이 되면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겠지만 그 순간에는 부모의 진심을 알 수 없어 아이의 마음에 불안이 싹튼다. 칭찬할 때는 칭찬하고, 위로할 때는 위로하고, 바로잡을 때는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 마음속에 ‘아,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확실히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라는 기준이 생긴다. 기준이 분명해야 불안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원인을 보면 지금 엄마 아빠들의 불안은 그 부모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부모들의 의도는 언제나 선했다.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잔뜩 겁을 주었던 부모도,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하면서 지나치게 조심시켰던 부모도, ‘무조건 부모 말을 따라야지’라며 윽박질렀던 부모도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데…”라고 말한다.
우리네 많은 부모님은 자식을 목숨 바쳐 사랑하셨지만, 올바른 사랑을 주시는 데는 조금 미숙하셨던 것 같다. 올바른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자식이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하셨다. 그것은 각자의 배우자에게도 마찬가지셨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기준의 사랑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