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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ed Arias
"Sacred Arias"는 파바로티, 카레라스, 도밍고 등 이른바 '빅3' 이후 제4의 테너 후보군 가운데 하나인 안드레아 보첼리의 성가곡집이다. 보첼리 특유의 미성과 성가곡의 엄숙함이 잘 어울렸다. 정명훈이 지휘한 산타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합창단과의 앙상블도 절묘하다.
보첼리는 "성가곡들은 신에 대한 작곡가의 영적인 감정을 표출 하는 음악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영적인 것"이라며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서 내 소망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참으로 감동적이고 순수한 아리아를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흐, 구노, 카치니, 슈베르트 등의 다양한 '아베 마리아'와 헨델의 '할렐루야', 베르디의 '레퀴엠'가운데 '죄인처럼 탄 식하고'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캐롤 '고요한 밤'이 실려있다.
▶안드레아 보첼리 (Andrea Bocelli)
열정과 힘으로 충만한 보첼리의 음악은 마치 무섭게 번지는 황야의 들불처럼 전세계를 뒤덮고 있다.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울리는 그의 발성은 강인한 것과 부드럽고 연약한 것의 절묘한 균형을 아울러 들려주고 있다. 마치 음악이 그 자신인 듯 그의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송두리채 흔드는 매력이 있다. 이런 점이 바로 이 가수의 특별한 개성인 것이다.
보첼리의 소리는 일종의 '국제적인 신드롬' 현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도 평가될 정도이다. 그가 처음으로 세계를 향해서 발표했던 '로만자(Romanza)' 앨범은 순식간에 전세계의 음악팬들을 매혹시킨바 있다. 그야말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전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사실상 보첼리의 인생은 음악적 열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어린 시절 이미 이탈리아 출신의 델 모나코(Del Monaco)·질리(Gigli), 특히 그의 우상이었던 코렐리(Franco Corelli)와 같은 위대한 가수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고, 이들의 영향 아래서 보첼리는 장차 자신도 위대한 테너가 되리라는 열정과 야망을 키워왔다. 그가 늘 들어왔던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들은 그의 귀와 정신을 훈련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 결과 10대 소년 시절에 이미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성취를 맛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음악에 대한 그의 목표는 서서히 퇴색되면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피사대학에서 법률학위를 받고 변호사 생활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아노 바에서 연주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나 에디트 삐아프·아즈나불의 히트송들과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속시키고 있었다.
소년시절의 우상이었던 코렐리가 투린(Turin)에서 마스터 클라스를 열자 보첼리는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받기로 하고 선생님 앞에서 푸치니의 라보엠 가운데 한 아리아를 노래해 보인다. 코렐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든 보첼리의 발성과 음색이 전설적인 이탈리아 테너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칭찬과 함께 보첼리를 문하생으로 받아 주었다. 이를 계기로 더 이상 변호사의 일은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음악 연마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1992년, 이탈리아의 록 스타 주케로(Zucchero)가 그의 신곡 '미제레레(Miserere)'를 노래할 부(副)테너로 보첼리를 지목하고 오디션에 응하도록 초청하였다. 이 작품은 파바로티가 매년 열고있는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에서 그 자신과 다른 테너가 듀엣으로 노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오디션은 보첼리에겐 무익한 것이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향에 돌아 온 그는 다시 피아노 바에 나가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쉽게 노래의 아주 중요한 진수를 체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레코딩 프로듀서인 미첼레(Michele Torpedine)가 필라델피아로 날아가 파바로티에게 미제레레를 보첼리와 노래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하고 그의 노래를 들려 주었다. 파바로티는 깜짝 놀랐고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난처해했지만 결국은 미첼레의 제의를 거절했다. 이름 없는 피아노 바 가수와는 함께 노래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1993년, 보첼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있는 음반제작사 슈거 레이블의 회장인 카테리나(Caterina Caselli Sugar)의 파티에 초대받았다. 이 자리에서 보첼리는 푸치니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노래했고 그의 노래에 크게 감동 받은 카테리나는 후일 그녀의 사무실로 보첼리를 초대하여 미발표의 신곡인 'Il mare calmo della sera'를 들려주고 이 곡의 녹음을 아름답고 힘찬 소리의 주인공인 그에게 주기로 결정한다.
1994년, 보첼리는 해마다 모데나에서 열리는 파바로티의 '파바로티 모데나 페스티발'에 게스트 스타로 초대된다. 이 무대에서 그는 독창은 물론 파바로티와 이중창을 노래하는 주인공이었다. 한 때 보첼리와 노래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파바로티도 이제는 그의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날 무대에 등장했던 수많은 스타들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 안드레아스 볼렌바이더(Andreas Vollenveider), 넨시 구스타브손(Nancy Gustavsson), 조지아(Giorgia)-보다도 보첼리의 무대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1995년, 슈거 클래식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 'Viaggio italiano'가 발매되자마자 보첼리의 이름은 이탈리아 성악사에 빛나는 전설적인 테너들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한다. 이어서 1998년에 발표된 앨범 '아리아(Aria)'는 클래식 음반 사상 초유의 놀라운 판매성적을 올린다. 수많은 음반상의 후보에 오르는가하면 팝송 인기 차트에도 오르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1996년, 전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보첼리는 카테리나·미첼레 등 동료들과 함께 산 레모 가요제에 'Con te partiro'를 들고 출전한다.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의 이름도 국제적인 랭킹에 오르게 된다. 이 곡은 'Time To Say Goodbye'라는 영어가사로 번역되고 듀엣 곡으로 편곡되어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과 레코딩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된다.
'아리아' 앨범의 성공에 이어서 정명훈의 지휘와 싼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발표한 새 앨범 '종교 아리아(Sacred Aria)' 역시 히트앨범에 반열에 올라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2000년 가을엔 주빈 메타의 지휘로 발표된 앨범 '베르디 아리아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앨범은 베르디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발표된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2001년에 발표된 푸치니의 라 보엠은 보첼리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오페라 가수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 시켜준 완벽한 성공을 가져다준 앨범이 되었다. 이로써 보첼리는 일시의 유행에 의지한 가수가 아니고 이탈리아 위대한 성악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테너라는 진실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음반에서 뿐 아니고 콘서트·갈라(Gala)·팝 가수들과의 크로스 오버 무대 등 보첼리의 연주무대는 날로날로 확장되고 있다. 그의 콘서트 투어도 프랑스·영국·이스라엘 등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고, 오페라 무대도 다투어 그를 초빙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오페라는 라보엠·베르더(Werther)·맥베드·윈저의 유쾌한 과부 등이고 친구 프릿츠·토스카·아이다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2000년 가을엔 베로나의 아리아 야외극장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을 노래했고 이 때의 실황이 음반으로도 발표되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보첼리의 존재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오페라 아리아, 콘서트와 리사이틀의 가수로 때로는 피아노 반주자로 그의 활동영역은 너무도 거침이 없이 넓기만 하다. 특히, 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로마교황 앞에서 행해진 공연에서 그가 보여준 탤런트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1995년, 보첼리는 네델란드, 벨지움, 독일, 스페인, 프랑스를 연주여행 하였고 45만여명이 그의 연주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유럽 투어엔 수퍼트렘프의 멤버인 자로(Al Jarreau)·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로저 헛슨(Roger Hodgson) 등이 동행하였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무대를 함께 하였다. 이 무렵 그는 2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한다. 특히, 두 번 째의 앨범은 이탈리아에서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벨지움에선 6배 플래티넘을, 독일과 네델란드에서는 4배 플래티넘이라는 경이로운 판매기록을 세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노래 'Con te Partiro'는 프랑스에서 6주간이나 톱 차트에 올랐고 트리플 골드 상을 받았다. 벨지움에선 12주간 연속 톱 차트에 올랐다. 모두가 다 일찍이 클래식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신기한 기록들인 셈이다.
보첼리의 세 번 째 앨범 'Viaggio Italiano'가 최근(2001년 10월 현재)이탈리아에서 발매되었다. 발매 수개월만에 벌써 30만장이 팔렸다는 소식이니 대단하다. 이 음반엔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들과 나폴리 민요들이 수록되어 있다. 음반 제작자의 상업적 아이디어와 보첼리의 남다른 매력은 이 음반 역시 새로운 기록들을 세울 것이라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다.
또한 ROMANZA 앨범은 서방세계에서 폭풍같은 히트를 기록한다. 이 앨범은 영국의 뮤지컬 스타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과 노래한 이중창 "Time To Say Goodbye" 같은 팝송들을 담고 있다. 이 음반에서 보첼리와 입을 맞추는 팝스타들은 트로바토(Gerardina Trovato)·보니 타일러(Bonnie Tyler)·존 마일스(John Miles) 등이다. 물론 이 앨범도 발매 즉시 차트의 톱을 차지한다. 3백만장이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7배 플래티넘 상(sextuplet platinum award)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Time to say Goodbye'는 싱글로만 1백만장이 팔려나갔고 독일에서는 이 노래가 14주간동안 차트의 탑을 차지했다. 게다가 보첼리의 음반 가운데 이 앨범이 최초로 영국에서도 발매되었는데 불과 7일만에 탑10 차트에 오르는 인기를 모았다.
보첼리는 분명히 매우 열정적인 사나이이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설명해주는 일화 하나가 있다. 어느 날, 고향의 비행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라슈트 클럽(낙하 클럽)의 한 회원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비행장을 방문한 보첼리는 즉석에서 회원들을 설득시켜서 수천 피트 상공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렸다. 물론 사전에 그 어떤 전문적인 훈련도 받아보지 못한데다 앞을 못보는 시각장애자인 몸으로 그런 모험을 즐겼으니 얼마나 열정이 많은 사람인가?
보첼리의 음악은 작금의 성악계 뿐 아니라 팝 세계에도 엄청난 휘오리를 몰고 있다. 언제까지 이 휘오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는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의 라이아티코(Laiatico)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산드로 보첼리는 "치안티 보첼리(Chianti Bocelli)'라는 상표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포도농장주이고 지금도 보첼리의 아내 엔리카(Enrica)와 두 자녀(아모스와 마테오)가 고향에서 살고 있다.
보첼리의 부모는 아들이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6살 때부터 피아노를 공부시켰고, 나중엔 푸르트와 색소폰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고향의 피사대학에 입학해선, 법률학을 공부하였고 법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연히 보첼리는 대학 졸업 후 약 1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였다.
보첼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독한 약시였는데 12살 때 축구를 하다 사고를 당해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재능마저 어둠에 쌓인 것은 아니었다. 보첼리는 발라드에서 오페라 아리아에 이르는 음악의 모든 장르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을 능숙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제 안드레아 보첼리는 클래식은 물론 팝 세계에서도 단연 최고의 스타의 위치를 누리고 있어서 과거 사라 브라이트만이 이룩하였던 경이로운 성공을 거둔 또 한 사람의 크로스 오버 싱어로 평가되고 있다.
첫댓글 Ave Maria-Caccini/Mercurio--Amen/Stabat Mater-Rossini까지 7곡 잘 듣고 갑니다. 정명훈 지휘 잘 보고 갑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