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물가 3%대로 떨어졌지만…아직도 민생 곳곳에 암초
중앙일보
입력 2023.05.03 00:10
부산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수출이 7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송봉근 기자
금융사마다 연체율 비상, 회생·채무조정 신청 급증
반도체 부진 등에 1인당 GDP 18년 만에 대만에 역전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7% 올랐다. 2022년 7월 6.3%로 정점을 찍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떨어진 건 14개월 만에 처음이다. 물가 상승 폭은 다행히 둔화 추세지만 체감은 쉽지 않다. 피부에 와닿는 외식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7.6%) 중이라서다. 외식 외 개인서비스 물가 상승률 역시 2003년 11월 이후 최고치(5%)를 기록했다. 그나마 물가는 하반기부터 안정을 찾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고물가와 함께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을 급감시킨 고금리 기조가 계속 유지되는 탓에 가계 연체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우려스럽다.
서민 경제 부실을 가늠하는 카드 연체율은 각사 모두 올 1분기 1%를 넘어섰다. 아직 위험 수준(2%)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79개 저축은행과 25개 대형 대부업체의 평균 연체율도 각각 5.1%와 10%로 지난해에 비해 급등했다. 대출을 대출로 막는 다중채무자가 점점 늘어나는 와중에 금리 상승 부담까지 겹치면서 금융권 전체가 연체 대란의 수렁에 빠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결국 채무조정과 개인회생을 신청한 채무자가 올 1분기에만 7만6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신규 신청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8%, 44%나 급증했다.
가계뿐 아니라 기업 연체율도 비상이다. 특히 저축은행 등 비은행권의 기업 대출이 문제다. 대출 잔액은 코로나19 이전보다 82.6%나 늘어난 상황에서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연체율(2.24%)을 기록했다. 문제는 지금 국내 기업들이 연체율뿐 아니라 심각한 복합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영업이익률이 4%대로 급락할 만큼 극심한 실적 부진 때문이다. 올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한 108개 상장사의 영업이익률은 4.09%로, 201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두 번째로 낮았다. 반도체 부진에 따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적자가 주원인이지만 두 회사를 제외한 영업이익률도 6.07%에 그쳤다.
14개월 연속 적자인 무역수지도 이런 위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4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82억 달러가 줄어든 496억 달러였는데, 수출액 감소의 절반(44억 달러)은 반도체였다.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다른 품목의 수출 부진 역시 심각하다는 얘기다. 가령 해외 직구(전자상거래)에서만 올 1분기에 1조3000억원 넘는 무역적자가 났다. 1조원 넘는 적자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여파로 2022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8년 만에 제조업 경쟁국인 대만에 역전당했다. 물가 좀 잡혔다고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