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5.3.9.) 말씀/ 룻기 1~5
주의 길을 선택하라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지난 한 주는 큐티를 통해 룻의 신앙을 배우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룻의 신앙과 결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한번 총체적으로 세겨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선택이라고 생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룻의 신앙을 살펴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 룻의 신앙의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선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니다. 마태복음을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네 여인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한 여인이 룻은 모압의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는지 우리는 룻기를 읽으면서 ”아하 이런 믿음의 여인이었구나“ 하고 감탄하며 믿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 우리도 배워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어머니의 길을 택한 룻 시어머니가 유대 땅으로 돌아가면서 홀로 남게 된 두 며느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남편도 잃고 어머니는 유대로 돌아가는데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남아서 재혼을 하여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 동서 오르바는 그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었지만 롯은 시어머니를 따라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어디든 갈 것이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고백합니다. 결코 죽는 일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으니 자신을 만류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녀의 결심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인생의 두 갈래의 갈림 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동서 오르바는 사실 모든 사람이 가는 합리적인 길을 택하였고, 룻은 자신의 장래보다 늙은 시어머니를 따르므로 비합리적인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주 상반되었습니다. 오르바는 선택을 잘못해서 멸망의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 믿음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룻은 어머니를 쫓음으로 구원받을 백성과 함께 생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멋진 신랑 보아스도 만나 재혼도 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자격없는 이방 여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믿음의 여인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과 함께 함으로 믿음 가치관 사상도 닮게 되고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역사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배우고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쫓는가? 중요한 것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잘 모르기에 주저하게 됩니다. 두 길 앞에 헷갈립니다. 이럴 때 사리를 판단하여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구와 동행할 것인가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미래가 결국 내가 선택한 사건과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룻은 이 선택을 잘해서 본래 하나님의 회중에 들 수 없는 모압의 이방 여인으로 남편도 잃어버린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딱 한가지 믿음의 여인인 어머니를 택함으로 결과 모든 축복이 호박 넝쿨처럼 따라왔습니다. 물론 선택에는 쫓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머무는 것, 잡은 것을 놓는 것, 포기하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믿는 자로서의 덕을 생각해서 롯과 다투지 않으려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소알의 좋은 목초지를 롯에게 양보하고 안 좋은 땅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4-15)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젖과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고, 그는 하늘의 뭇별같은 후손을 얻고, 복음의 근원,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신앙 성장의 과정을 살며 보니 선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 잘 한 것이었고, 과도기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이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무너졌을 때 성장 방향을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은 교회를 택하여 내면의 성숙의 방향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목회철학은 나부터 자유한 영혼이 되어 행복하기로 결심하고, 외적 큰 성장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 방향으로 독서를 선택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탁월한 선택 이었습니다. 이런 선택이 오늘 매일 큐티와 독서 모임을 이루게 되었고 우주교회를 출발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목자를 시어머니처럼 남아서 따른다는 재중 집사님, 가까이 배우며 함께 이 길을 가는 지홍, 명남 정미 그리고 우리 모든 지체들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우주교회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선택은 배와 같이 아주 중요한 운명 공동체입니다. 잘 못되면 함게 침몰하고, 잘 되면 함께 천성의 항구까지 가게 됩니다. 침몰하는 배라면 떠나야 하고 대양으로 향하는 배라면 승선해야 합니다. 그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많은 일들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탁월한 선택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평소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믿음과 사유 깊은 사람으로 내공을 쌓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착한 행실의 본을 보인 룻 모압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온 나오미는 생계가 어려웠습니다. 며느리 룻이 남의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고 보아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이삭 줍기를 하는 룻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소녀들과 함께 이삭을 줍도록하고, 보리를 베는 소년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단단히 명하고, 목이 마르거든 언제든지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자유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들에게 곡식 단에서 조금씩 뽑아 일부러 뽑아버려서 줍게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룻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왜 이방 여인인 저에게 이런 과분한 은혜를 베풀며 돌아보시느냐?“고 묻습니다. 룻에 대해서 이미 소문을 들은 보아스는 룻이 남편이 죽은 후로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다고 대답합니다.(룻기 2:11) 룻이 몸가짐 단정히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조용히 살았지만 이미 착한 행실이 널리 알려져 알 사람은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인품 있는 보아스는 이런 착한 룻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롤 통해 이런 룻을 축복하셨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의 밭에서 이르게 된 것도, 보아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도 요행이 아닌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렇게 축복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 여러분, 착한 행실은 이처럼 말과 글보다 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착한 행실의 사람을 축복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심리학 박사 이민규 교수는 말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말의 영향력은 단지 7%이고 나머지 93%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 억양, 눈빛, 봄짓, 평상시 실아온 삶의 태도에 달렸다고 합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현옥 집사님 말이 달라지니 아내 박숙 자매님도 달라지고 있다하지 않습니까? 반면 저는 요즘 우리 나라 정치 상황이 걱정이 되어서 한번씩 유튜를 열어보는데 귀가 더러워지는 것 같아서 닫곤합니다. 왜들 말이 거칠고 부정적이고 욕을 많이 하는지 문제는 극우세력뿐 아니라 독교인들, 목사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튜버가 그럽니다. 저는 목사님 얼굴을 보면서 마귀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영상을 잠시 틀어주어서 잠깐 봤는데 현재를 박살 내라느니 심판하라느니 마치 종말인 듯 입에서 욕이 터져나오는데 그냥 꺼버렸습니다. 아무리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도 목사의 입에서 욕과 저주는 덕스럽지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과거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에게 덕이 안될까봐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하고, 이삭도 그랄 목자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곤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덕을 보여야할까요? 정직, 진실, 정의는 힘들더라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욕한다고 우리도 욕해서는 안됩니다. 악은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라도 일상의 삶 속에서 선한 행실의 본이 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셋째, 어머니 말씀대로 순종한 룻 나오미는 보아스가 며느리 룻에게 은혜 베푼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고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니하였으며 그는 우리의 근족으로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자 중 유력자임을 안 나오미는 하나님의 하실 일을 보기 위해 룻에게 다음 같은 일을 지시합니다.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 내러가 누우면 살며시 발치에 가서 이블을 덮고 누우라". 룻은 순종의 여인 이었습니다.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 어디든지 가고, 어머니가 죽는 곳에 자신도 묻히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어오라면 가서 이삭을 주어왔고, 어머니가 하라고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지시는 좀 그렇습니다. 보아스가 타작마당가서 먹고 마시기를 다하고 잠들 때 그곳을 알아뒀다가 목욕하고 기름 바르고 그의 이블 발치를 들고 들어가서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부라지만 서슴없이 외간 남자의 잠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경건한 여인으로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조금도 토를 달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5) 룻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 순종했습니다. 보아스가 누워 자다 밤중에 한 여인이 발치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너는 누구냐” 깜짝 올라 묻습니다. 룻이 대답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그리고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사실은 보아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입니다. 룻이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보아스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도리어 룻을 축복하며 두려워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겠다고 약속도 합니다. 룻이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치에 맞아서가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족으로 기업 무를 유력자였습니다. 룻 자신도 기업을 이을 사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순종이라고 해서 무조건 생각 없이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아스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돌아가는 상황.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오미도, 보아스도 룻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것입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무엇입니까? 여기에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느끼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룻의 순종은 맹종이 아니라 영적 민감함에 나온 믿음의 순종 이었던 것입니다. 충실한 사람은 무조건 맹종도 할 수 있겠만 참된 순종의 사람은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믿고 반응하며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행할지 막연하고 방황될 때 기도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룻이 순종하자 하나님은 일사천리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자신보다 더 유력한 근족을 찾아가서 나오미 가계의 기업을 무르겠느냐고 먼저 묻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룻과 결혼도 하고 나오미의 기업을 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 순위 당사자는 손해를 볼것 같아서 포기하였습니다. 결국 다음 유력자인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13)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여호와께서 오늘날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고 찬송하며,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자 그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이새의 아비입니다. 자격 없는 이방여인 이었지만 어머니를 택하고 하나님의 길을 택한 룻의 아름다운 결단을 하나님은 축복하셔서 해피엔딩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룻이 나은 아들 오벳은 단지 한 가정에 아들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은 불행한 운명같은 나오미 가계에 룻을 통해 멋지고 아름다운 성품의 사람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로 세우시고 가문의 혈통을 잊게하셨습니다. 처음에 룻이 돌아왔을 때 동네 여인들이 "이가 정말 나오미냐?"고 반가워서 소리칠 때 나오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1:20∼21) 이 처음 고백을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하셨고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룻이 아들을 낳자 사람들은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나은 자라고 칭찬합니다. 또 사람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며 오벳이라 합니다. 오벳은 '섬기는 자'란 뜻입니다. 노년에 나오미를 봉양하고 더 나아가 영적으로 그리스도 구속 역사에 한 부분을 섬길 자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여러분, 빈털터리 경험해보셨습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금방 회복됩니다. 저도 적금 전세 다 날리고 완전 빈털터리가 되어본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자칭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미 룻이 어머님의 하나님을 선택하였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하셨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돌아올 때 비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축복의 씨앗을 안고 돌아온 것입니다. 오갈데 없는 며느리 한 사람만 온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란 부요하고 멋진 사위가 따라왔고, 노년을 봉양할 아들도 따라왔고, 장차 이새 아들 다윗 등 역사의 인물들을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빈털터리를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길을 선택하고 우주교회를 선택한 여러분들의 앞 길에 이러한 축복의 열매가 줄줄히 맺힐 것을 믿습니다. 결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 형편을 보면 빈털터리 같고 장래ㄹ르 보면 막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룻처럼 주님을 택하고, 주님의 길을 택한 여러분들은 결코 빈털터리로 남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8:34-35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저와 여러분들 언제나 룻처럼 주님을 택하고 따르는 자 되어 룻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결과를 보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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