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유’ 지성호 21대 국회의원
본문: 마태복음 25:40
왜 욕을 먹는 정치의 길을 갔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그간 해온 북한인권 활동, 그리고 탈북자 구조활동(500여명의 인명 구조)도 충분히 값진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냐는 질문이었다.
몇 년 전 국내의 탈북자 모자가 아사한 일이 있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탈북한 이들이 풍족하다는 남한에서조차 굶어 죽는 것은 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이 있어 기도를 했고, 더 어려운 길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든, 하나님을 내 구주로 모시고 신앙을 지키며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그것을 감당할 때 길을 열어 주시고 성장을 주셨다.
본인은 왼쪽 다리와 왼쪽 손이 없다.
그럼에도 전국 방방곳곳 탈북자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찾아가 보고, 눈물을 닦아줬다.
우리가 3만여명의 탈북자들을 품지 못하면, 북한 땅을 품지 못한다.
우리가 이미 함께하는 이웃들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통일을 주셔도 북한 주민들을 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꽃제비로 살던 거지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다. 이것이 자유 대한민국이다.
꽃제비가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면
통일이 한층 더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통일을 위한 준비를 대한민국 교회가 눈물의 기도로 함께 한다면,
본인이 그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지금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꽃제비 생활을 해서 그런지 본인이 나이에 비해 노안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막내로 많은 예쁨을 받는다.
하나님이 많은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펼치시는 하나님의 기적에 매일 감탄하고 있다.
평양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출신인 본인이 목발을 짚고 탈북한 것도 기적이다.
남한에 와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쓰임 받기 위해 세워진 것도 기적이다.
몇 년 전 사랑의 교회에서 탈북민 상을 받으며 담임목사님이 옷을 사줬던 일이 기억난다.
그것이 사랑의 교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옷을 입고 수많은 국가들을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 북한에도 실재한다고. 그리고 그들이 고통받는다고.
미국 사람들이 북한 인권법을 만든 것을 보고 경탄했다.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구나.
악은 선을 이길 수 없고 결국에는 자유의 함성이 북한에 울려 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것이 북한이니 살 수밖에 없었던 25년의 삶은,
남한에서 태어났더라면 겪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고난의 행군 가운데,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수령을 신격화하고 북한이 무릉도원임을 세뇌당하던 시절.
가족이 다같이 굶주림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와중에 할머니가 견디지 못하고 아사했던 때가 생각난다.
가족에 아사자가 나오면 2kg의 옥수수가루 배급이 나온다.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가족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던 게 생각난다.
아버지는 옥수수가루를 받으러 가고 어머니는 조리를 준비하고 본인은 물을 길으러 갔던 기억.
그렇게 할머니 시체를 옆에 두고 옥수수가루를 끓여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에 본인이 살았고, 지금 국회의원이 되었다.
14살 때, 영양실조에 걸려 뼈밖에 없는 상태에서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졌다.
기차에 치어 왼다리왼손이 짓이겨져 나가고 병원에 도착하였으나,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던 것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그 공포와 떨림과 고통과 피의 냄새가 선명하다.
환자랍시고 어머니는 사람들 먹다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어렵사리 구해 먹이셨다.
탈북을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꼭 구하러 오겠다고 말했던 것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두만강에서 익사할 뻔했지만, 어렵사리 중국에 도착했어도 남한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6천키로미터를 멀리 돌아와 한국에 와보니 신세계였다.
중국에 돈 벌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가 새 삶을 찾아 도망갔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찾아 중국에 간 여동생도 같은 전처를 밟았다.
그런 식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25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탈북을 하다가 두만간에서 잡혀 보위부에서 고문끝에 돌아가셨다.
쌀밥에 고기국 쉽사리 먹는 남한에 오니 고생만 더럽게 하고
빛을 보지 못한 가족들에 대한 슬픔과 애환이 몰려왔다.
그런 본인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남은 삶을 통해 통일을 준비할 수 밖에는 없다.
이 간증은 본인 혼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분들께 북한의 영혼들에 대해 그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적 통일을 오는 것, 그것이 본인의 꿈이다.
탈북민들이 성공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10명 보좌진중 탈북민 3명을 채용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정치를 하는 본인을 보며 같은 꿈을 키워낼 수 있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통일 대한민국에서 지도자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평양에서 특새하는 그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