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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영광
마태복음 27:50-53; 28:1-10;
(참고 고린도전서 15장)
2024년3월31일 부활주일
주은혜 교회 진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오늘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일반 사람 죽음은 세상에 별로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의 죽음은 큰 파도와 폭풍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스테판 집사님 죽음, 순교는 초대 교회 핍박을 촉발시키고 지중해 연안 나라들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피해 퍼져 나가고 복음이
함께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죽음은, 우리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택함받은 온 인류를 구속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사람 육체는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도 자지도 않는 불멸의 본질이 있어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직접 돌아갑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장 1항, 생명의
말씀사, 1998, 181).
누가복음 23장43절에 예수님이 옆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창 3:19하).
죽으면 매장할 것인가, 화장할 것인가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실때 고 정용우 성도님처럼 오후 점심 밥 숫가락을 드시다가 주무시듯 집안에서 돌아가시면 가장 복된 죽음이라 생각합니다.
임종을 앞두고 가급적 병원에서 누워있다 가시지 않도록 우리가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병원에 누워있으면 의사 좋은일 시키고 가족과 본인이 고통당하고 돈을 다 날리게 됩니다.
그래서 한 두달 더 살겠다고 산소 호흡기를 꽂거나 호스로 목에 구멍 뚫어서 억지로 죽을 넣는 것은 의사 좋은일 시키는것입니다.
병원은 생명보다 돈을 좋아합니다.
환자와 가족은 있는 돈 다 날리고 병원에 재산 다 바치고 고통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영상으로 혹은 글로 연명치료를 하지말라, 그냥 집에서 곡기 끊고 간다고 자식들과 자손들과 가족에게 유언을 미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튜브 황창연 신부가 생명 존엄사 강의를 잘했으니 그 내용을 시청하고 참고하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모두 집안에서 누워계시다가 마지막에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존엄사는 신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마태복음 27:52-53 KRV에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두 구절은 난해 구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석이 어렵습니다.
마태만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난(마 27:52)"기적을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한 추가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여 얼마동안 살았는지, 몇명 정도가 부활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부활한 사람들에게 "영광스런 몸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런 몸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부활한 사람들이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마 27:53). 즉 많은 이들이 그 부활한 이들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그 부활한 이들 모습이 당시 살고 있던 일반 사람들과 어떤 모습의 차이가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그 부활한 사람들이 얼마나 더 살고 다시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혹은 에녹이나 엘리야나 예수님처럼 하늘로 올리운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참고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414 ).
데살로니가전서 4:16-17 KRV에 보면,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4:1-3 KRV의 예수님 말씀 성취입니다(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800).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까지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살전 1:10).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습니다(마태복음 28:1).
안식일은 토요일 해가 지면 지난 것입니다.
그때 여인들은 향료를 구입하여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눅 24:1).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누가복음 24:1).
주의 첫날, 일요일, 즉 안식일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다른 마리아'는 마리아 보다 어린 마리아, 즉 야고보 어머니입니다(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415).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마 28:2).
그리스도 죽음과 관련해 두번째 지진입니다(27:51).
첫번째 지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셨을때 일어났습니다(마 27:50).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즉 지진이 나고 바위가 터졌습니다(마 27:51).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마 27:52).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마 27:53).
일어난 자들은 무덤에 대기하다가 예수님 부활 후,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그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일 수 있습니다.
그 부활한 사람들은 뭔가 믿음의 귀감이 되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일으킴 받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두번째 지진은 무덤 주변에서 일어난 지진이었을 것입니다.
한 천사가 초자연적으로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무덤을 옮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오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체를 입으시고 시간, 공간을 초월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 여인들과 그 사도들이 그 무덤을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8:6; 참고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415).
마태복음 28:3-4 KRV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순간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은 초자연적으로 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가 그 바위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천사의 모습은 보통 사람 모습과 너무 달랐습니다.
모습이 번개 같고 그 옷이 눈 처럼 하앴습니다.
그 무덤 입구를 지키던 자들이 천사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 떨고 죽은 사람 처럼 되었습니다.
2절의 지진, "헬, 세이스모스"와 '떨었다' 즉 "헬, 에세이스쎄산"은 어원이 같습니다. 어원, "세이오" 즉 "흔들다"에서 온 것입니다.
그 천사의 갑작스럽고 특이한 모습은 무엇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28:4;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415).
천사가 여자들에게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라고 말했습니다(28:5).
무덤을 찾은 그 여인들 역시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상태였습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6)".
"와서 보라"는 말은 복음서에서 익숙한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1:44-46 KRV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었습니다(요 1:44).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말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되물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했습니다(요 1:46).
수가 성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요 4:28).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와 보라" 혹은 "와서 보라"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습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주님이 다시 사셨으니 그가 누우셨던 자리를 "와서 보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습니다.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눅 24:1-3).
이를 인하여 여인들이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눅 24:4).
누가복음만 천사가 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여인들은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들은 그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눅 24:3).
그 여인들이 무덤 안에 있을 때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눅 24:4; 막 16:5).
그 천사는 예수님의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눅 24:6-8).
즉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눅 24:7).
그리고 그 여인들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보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알리도록 했습니다(마 28:7-8; 막 16:7-8; 눅 24:4;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526).
그 여인들은 천사들이 말한대로 행했습니다(눅 24:9-11).
그 여인들이 주님이 부활했다고 전하니, 제자들은 처음에 냉소적이었습니다(눅 24:11).
그러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요한이 가장 먼저 달려가 도착했습니다(요 20:4).
요한은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세마포 놓인 것을 들여다 보았습니다(요 20:5).
시몬 베드로는 무덤 안에 들어가서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었습니다(요
20:6-7;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526).
머리를 쌌던 수건을 누가 일부러 갠 것인지 천사가 갠 것인지
초자연적으로 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정황상 사람 손으로 갠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천사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천사들을 보았지만, 요한과 베드로에게 천사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천사는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택한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놓여 있고 예수님 시체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다시 사신 증거였습니다(눅 24:12; 요 20:6-8).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눅 24:12; 요 20:10).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그 무덤에 돌아왔습니다.
그녀가 무덤 입구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녀 앞에 나타나셨습니다(요 29:11-18).
예수님 부활 후 최초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막 16:9;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1526).
이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길을 가던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마 28:9-10).
그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아마 부부였던것 같습니다, 에게 나타나셨습니다(누가복음 24:13-32).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눅 24:34; Mac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1526).
바울은 자신이 받은 것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고전 15:3).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고전 15:3-5).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고전 15:9).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신자들의 믿음도 헛되고, 모두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입니다(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 믿는 자들이 더욱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 15:21).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고전 15:23).
인생에서 가장 복된 일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 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