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연은 대동법으로 나라 구한 영의정 김육의 환생인가?
(경기도지사 김동연을 널리 알리기 위한 글이지만 한 글자도 사실이 아닌 게 없고, 진실이 아닌 건 쓰지 않았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화로 온 팔도가 짓밟히고 수십만 민초가 공녀로 끌려갔다. 왕은 머리를 찧으며 항복했고 백성은 굶주림과 슬픔 속에 이리저리 떠돌며 걸식했다. 그 와중에도 조정의 정객들은 예송논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실현 불가능한 북벌론만 공허하게 외쳤다. 백성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때 참혹한 세상에서 백성을 구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흙수저 재상 김육(0440, 金堉, 1580.08.21 ~ 1658.11.01)이다.
김육은 10대 시절 부모를 여의고 가평 잠곡에서 직접 숯을 굽고 농사를 지으며 뼈저린 가난을 겪었다. 이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경험은 양반 지주의 극렬한 반대를 뚫고 '대동법'을 관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장개설권을 틀어쥔 채 이권을 독점하던 이들의 착취 수단이 된 공납을 없애고, 토지 면적 기준으로 세금을 통일한 대동법은 파탄 난 국가 재정을 살리고 백성을 건져낸 조선 최고의 개혁이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대동법으로 벌떡 일어난 상공업 도시 안성에 기념비를 세울 만큼, 김육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시대의 구원자였다.
이제 김육에서 김동연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육이오전쟁의 폐허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지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 경제의 청사진을 그린 이가 바로 김동연이다.
그는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과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 천막집을 전전하며 소년 가장으로 자랐다. 열일곱에 생업에 뛰어들어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밤에는 남이 버린 책을 붙잡고 공부하여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세계은행 근무 후 돌아와 기획예산처 신설 국장을 맡았을 때, 국가는 IMF 외환위기의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60명의 전문가와 함께 2030년 선진국 도약을 위한 국가 전략인 <비전 2030>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내가 받은 보고서 중 최고"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5년 국민소득 1만 6천 달러 시절에 그는 3만 달러, 4만 달러를 꿈꾸고, GDP 7,880억 달러 시절에 1조, 2조 달러를 설계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세금 폭탄'이라 비난하며 좌파의 망상이라 짖어댔다. 당시 노무현을 탄핵했던 야당 민주당 소속의 일부 정치인들(지금 아주 잘나가는 의원들이다)도 사사건건 반대했다. 정쟁에 밀려 보고서는 좌초되는 듯했으나,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이라는 혜안의 청사진은 그가 몸담고 있던 재정경제부를 중심으로 꿋꿋이 추진되었다.
그 정점에 문재인 정부의 경제부총리로 발탁된 김동연이 있었다. 그는 2030년이 되기도 전인 2017년에 이미 그 목표를 현실로 증명해냈다. 2017년 국민소득 3만 1734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7번째로 '30-50 클럽(선진국 기준인 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가입을 이끌어내고, GDP 1조 6233억 달러를 돌파하며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된 첫해를 만들어냈다.
이제 그는 경기도지사로서 '경기도 2030'을 쥐고 있다. 현재 약 3만 4000달러 수준인 경기도의 1인당 소득을 5만 달러 시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다. 용인, 수원, 화성, 평택, 이천, 안성, 성남을 잇는 거미줄 같은 반도체 및 IT 벨트에서 밤낮없이 불이 밝혀지고 있다. 김동연은 이미 100조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특히 용인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고 있다.
과거 실리콘밸리가 세계 IT의 심장이었다면, 이제 경기도가 세계 반도체의 중심이자 미래의 심장이다. 김육이 대동법으로 백성의 숨통을 틔웠듯, 김동연은 경제라는 실력으로 경기도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고 있다.
지금 경기도가 서 있는 이 지점에서도 그의 꿈이 망상이라 말할 텐가? 역사는 증명하고 있고, 김동연은 오늘도 그 길을 걷고 있다. 당신들이 전기를 이류로 반도체 클러스터를 방해하면 지방도에 전력선을 묻어 지켜내고, 또 4대강 보를 터뜨려 물이 없다고 또 방해해도 그는 확실한 대안으로 경기도를 지켜낼 것이다. 대동법 재상 김육은 죽여라, 유배보내라는 정치 협빅을 받으면서도 기어이 대동법을 펴서 나라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