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 궁정과 루이 14세 이야기
베르사이유 궁정을 건설하게 된 이유는 루이 14세가 어린 시절에 파리에서 프롱드의 난으로 비참한 광경을 체험한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되어 파리를 싫어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1682-1789, 107년간 궁정으로 사용되었고, 유사이래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바로크식 궁정으로, 1662-1710년 약 50년간 공사를 하였는데, 공사비용은 일반성을 500개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기가 공사하고 자신이 들어가 산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 루이 14세는 자신이 들어가 살았다. '짐이 국가이다'라는 절대왕권의 상징으로 전 유럽의 군주들이 부러워하며 감탄하였다. 합스부르크의 쉰부른 궁전이 이 궁전을 모방하였다고 하며, 귀족과 문학 및 예술인이 모여 호화로운 궁정 생활이 전개되어 지금의 서양식 예의 범절이 탄생되었다. 정치적 권력을 잃은 1,000명(시종 4,000)이 넘는 귀족들은 국왕에게 아첨하고 봉사하며 바라는 것은 왕의 자비뿐이었다. 그들은 의상계(契), 의자계, 조리계도 귀족 중에 임명되고 놀이의 상대가 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궁전의 둘레는 처음에는 약 40Km나 되었고, 대운하 소운하의 십자로 호수의 정원과 높은 곳의 호수는 사람이 물을 채웠다고 하니, 그 고통을 당한 국민이 불쌍하였다. 유럽의 여행 때에 정원과 공원에서 영국식은 자연 그대로 둔 것을 말하고, 프랑스식은 인공으로 자연과 나무를 가꾼 것을 말한다고 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원의 나무도 유럽에 없는 것을 구하기 위하여 미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들을 열거하여보면, 궁정은 변소가 없어 냄새 제거용으로 향수가 발달한 것, 방귀 냄새 제거용 향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 궁정 숲에서 귀족과 귀부인이 함께 볼일을 본 것, 비데(조랑말의 뜻)를 처음 사용하여 관계 전 후에 남녀가 세척한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애첩의 침실을 방문하였다는 것, 루이 14세가 1년에 한번정도 목욕하여 이가 많았다는 것, 돌팔이 추치 의사가 이를 빼서 만성 소화불량에 걸려 요강 위에서 의전 행사를 한 것, 장이 비어야 건강에 좋다고 설사약을 매일 복용 한 것, 대식가여서 어릴 때에도 유모가 여러 명이 있었다는 것, 식사요원만 약 500명이나 되었고 식사도 64개의 접시를 비웠으며 식사시간도 몇 시간씩 걸려 다는 것, 루이 14세 때에 커피와 파인애플이 처음 소개된 것, 루이지애나(후에 나폴레옹이 1500만 불에 미국에 팔았음)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 *넥타이가 유행한 것, 대관식 왕관에 장식하였던 '리젠트' 다이아몬드 이야기와 밤새도록 연회하고 새벽이면 귀족과 여인들이 도살장에 가서 정력제로 소의 피를 마신 것 등의 많은 이야기가 전하여 지나 실제로 있어는 지는 의문이 가는 것도 있다. 그는 벼룩서커스를 무척 즐겼다고 한다. 갑옷 입힌 30마리의 벼룩에 미니 창을 들려 행진시키는가 하면 황금으로 만든 미니수레에 왕관을 쓴 임금님이 타고 2마리의 벼룩으로 수레를 끌게 하는데 자기 몸보다 200배를 뛰는 뒤 다리 힘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는 벼룩의 축구시합이다. 조작자의 구령에 맞추어 룰도 잘 지키는데, 구령할 때 특수 자극제를 번갈아 뿜어 시합을 진행시킨다고 한다. 이 벼룩의 곡예는 돋보기로 확대시켜 보았다고 한다. 근간에는 동물보호회원들이 동물학대라고 규탄하여 사양에 접어들고 있다한다. 그를 '태양 왕'이라고 하는 것은 카트린이 가지고 온 발레에도 직접 참여하여 1653년 '밤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위엄에 찬 태양의 역할을 맡은 것에서 연유한다고 하는데 역할과 실제가 서로 부합되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672년 네덜란드는 침공 때에 수문을 열어 바닷물 때문에 점령에 실패하였으나 나폴레옹 3세 때에도 수문을 열었으나 바닷물이 얕고 날씨가 몹시 추워 열어 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공격에 도움이 되었다. 당시에 '철가면'을 쓴 한 죄수는 여러 특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면만은 벗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 소문이 돌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로서 왕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감금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이야기를 알렉산더 뒤마는 '철가면'이라는 소설을 써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필자도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이 책을 밤새워 읽은 최초의 책으로 이 책을 통하여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베르사이유의 궁전의 입장수입이 삼성전자보다 많다는 이야기에 조상 중에는 더러는 반미치광이 덕분에 후 손들이 잘사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77세에 국민의 미움과 조소 속에 인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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