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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호 8:8-10)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그릇이란 어떤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기구입니다. 밥그릇은 밥을 담고 국그릇은 국을 담습니다. 큰 그릇은 많이 담고 작은 그릇은 조금만 담습니다.
어느 집에든지 여러 형태의 그릇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넙적한 접시들로부터 길쭉한 병이나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그릇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든 재료에 따라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사기 그릇, 플라스틱 그릇 등 참으로 많은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이 많은 그릇들은 각기 필요한 용도에 따라 여러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금이나 은그릇은 아주 귀한 그룻 입니다.
옛날 왕실에서도 이러한 귀한 그릇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고 귀한 그릇이라 하더라도 이것에 지저분한 것이 묻어 있거나 더러워져있다면 또는 금이 가 있거나 흠이 있는 그릇이라면 주인이 이 그릇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마 깨끗한 질그릇이나 나무그릇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릇의 가치는 그 그릇이 비싼 그릇이냐 싼 그릇이냐 하는 값어치에 있지 않고 주인의 손에 얼마나 쓰임을 받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들도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2장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옛날 이스라엘에도 질그릇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그 그릇들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그마한 흠집이 생겨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 그릇을 깨뜨렸습니다.
본문에서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은 ‘깨진 그릇’이나 ‘이빨 빠진 그릇’이란 뜻입니다.
어떤 집에 손님으로 갔는데, 만약에 이빨 빠진 그릇에 밥을 주거나 국을 줄 경우 굉장히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것이 본차이나고 한국도자기 라도 밥맛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빨 빠진 그릇을 자기 집 식구들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버리거나 개밥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개밥그릇 신세였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왕따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을 의지하다가 이미 강대국에게 먹히고 말 것이며 그들은 세계 만민 속에서 잊혀진 그릇처럼 쓸모 없이 버려진 듯 될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패망하여 열국 중에 흩어지는 장면을 눈으로 보는 듯 이미 지나간 사건인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았습니다.
1.이스라엘은 이미 삼켜 젔기때문(8)
“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며 경고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왕과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국 군대를 의지하다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시제를 써서 확실히 이루어 질 것으로 예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삼킴을 당했다는 진술은 그들이 이방 나라들과의 국제 관계 속에서 종교 문화적으로 흡수를 당하거나 (7:8)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혼합주의 및 정체성의 상실 또는 정치적 자주성의 상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적 특권이 상실되었다는 것과 긴밀한 연관을 지닙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권의 상실, 정체성의 상실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임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파멸의 심판밖에 없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옥스포드 성경원어 사전 ]
행여나 이스라엘이 뿌린 씨앗 중에서 어떤 것이라도 조금 자라게 되더라도 결국 이방이 삼키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결국 이미 삼켜진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많은 기술자를 일본으로 데려가 자신들의 기술로 삼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 기술자들입니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어도 일본인들이 탐낼만한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이 점령한 후, “즐겨 쓰지 않는 그릇”처럼 되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도 언급한 내용입니다(렘 22:28; 48:3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삼켜졌은즉”는 히브리어로“발라”인데“삼켜버리다, 게걸스럽게 먹다, 탐욕스럽게 먹다”을 뜻하며, 비유적으로는“소모하다, 파괴하다, 파멸하다”을 뜻하는 것으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징벌을 묘사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호세아 아직 멸망 당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패망한 것처럼 완료의 뜻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대언의 성취를 확신하는 대언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만국 중에 이스라엘은 이미 먹힌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미 정복을 당해서 이무런 힘도 쓸수 없는 그런 처지가 되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당할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처지를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집에 있기는 하지만 쓰지 않는 그릇은 잊혀진 그릇입니다, 존재가치가 없는 처지가 될 것 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철저하게 모든 나라에 사람에게 소외당하는 처지가 될것 입니다,
본문7절에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욥기와 예레미야에 따르면 바람은 헛됨과 공허함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바람이 무심하게 불어와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풍은 전혀 다릅니다. 태풍을 몸으로 부딪혀 본 사람은 잘 압니다. 그 세력은 방파제를 파괴하고 항구에 있느 그 무거운 삼바리를 번쩍 들어 내동댕이치는 무시무시한 공포입니다. 괴력을 발휘하는 초 강풍이 지나간 자리는 당연히 초토화되고 맙니다.
따라서 바람이 공허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면 광풍은 하나님의 진노를 묘사한 말입니다. 곧 이 비유는 바람이 상징하는 우상숭배와 광풍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번영과 풍요를 바라며 벌린 헛된 일 때문에 이방사람의 삼킴을 받아 국가의 패망으로 결실 맺었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호 날개 아래에서 벗어나 원수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신명기31장17-18절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숨기시고 보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사야59장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대적에게 점령당할 것을 가리키고, 신령한 뜻은, 성도가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삼키운 바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마귀에게 마음과 재물과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자녀들까지 불의와 악 사상과 악도(惡徒)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인의 손에 삼킴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와 채찍을 드십니다. 그런데 그 징계와 채찍을 누구를 통해서 드시느냐 하면 이방인을 통해 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망신을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렇게 공격을 받아서 패전으로 기울어질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회복해야 될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이 되고 맙니다.
2.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기 때문(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정치적, 종교적 선택이 하나님을 기초로 하지 않을 때, 결국 그 선택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되며,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하나님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의지하고 세상의 것들에 의존할 때, 결국 그 모든 것이 파멸로 끝나게 됨을 경고합니다.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홀로 떨어진”은 히브리어로“바다드”인데“나누다, 분리하다, 외롭다, 고독하다, 떨어지다. 홀로”돌아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어리석게 행동하며 이성없이 자신의 고집대로 홀로 떠도는“들나귀”로 비유하였습니다.
들나귀는 히브리어로“페레”인데 “맺다, 빨리 달리다”을 뜻하는“파라”에서 유래한 것으로“야생 당나귀”를 말하는데 발이 빠르고 길들여 지지 않은 들에서 자유로이 뛰노는“야생 나귀”를 의미합니다다(창16:12, 욥39:5-8 시104:11,호8:9).
들나귀는 흔히 들에 사는 처량한 동물로서 욕정이 강한 짐승입니다(렘2:24). 그런데 호세아는 이방인과 교제하는 이스라엘을 욕정에 찬 들나귀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앗수르로 갔고 이 말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교제하며 도움과 원조를 청한 사실를 지적한 것입니다(5:13, 10:6, 12:1).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왕 므나헴은 앗수르 왕의 선처(善處)와 도움을 위해 뇌물을 바친적이 있습니다.(왕하15:17~20).
한편 “홀로 떨어진”이란 뜻은 처량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길을 걷는 고립성을 나타냅니다. 들 나귀처럼 거칠게 뛰어다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다가 굶주리고 목말라서 죽는 처량한 동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홀로 떨어진 들 나귀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당시 강대국이었다는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정치적 외교력을 발휘합니다. 앗수르의 힘을 등에 업고 왕권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버리고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맺습니다.
공동체를 찾지 못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서 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들나귀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들나귀가 받아 주는 공간이 없자 많은 돈을 들여서 앗수르에 가서 조공을 바치고 보호를 요청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재를 말합니다.
여기 이스라엘을 “들나귀”로 비유한 것은 그들이 마치 성욕으로 인하여 통제할 수 없는 들나귀가 짝을 찾아 이리 저리 날 뛰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줄 나라를 찾아다니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습니다.
그리고 홀로 떨어진 들나귀는 에브라임의 절망적 상황을 반영하는 비유입니다. 여호와를 무시한 동맹정책은 그분의 진노를 돋울 뿐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앗수르의 사랑을 사서 살아남으려는 에브라임의 시도에 여호와께서 징벌로 응답하십니다. 뇌물과 조공으로 주변 나라들의 환심을 살지라도 확정된 멸망을 막지 못합니다.
또한 홀로 떨어진 들나귀는 고집이 세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열왕기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은 일천 달란트나 조공을 바치고 아양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앗수르에게 망하게 됩니다.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이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며 그들을 의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그들을 쇠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앗수르를 의지하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8:10)”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조공을 바치며 앗수르를 의지한 바로 그때부터 쇠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의 자손들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이며, 야곱의 아들이 되었습니다(창48:5),
그러므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한 지파가 되었습니다(창 48:8~22). 이들은 그 지파 출신 여호수아(대상7:27)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수16:1~8, 17:17, 삿7:24).
여기서는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출신 지파로서 이스라엘 자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4:17, 5:3, 사7:2,5,7,9, 9:9). 그러나 그들은 쇠잔하여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앗수르 뿐 만 아니라 애굽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손길을 뻗치며 예물을 제공했음을 나타냅니다(12:1).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에서 보듯이 세상적인 것으로 조공을 바치고 화친하고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버리고 외국의 세력을 힘으로 타협하는 일들을 해서 평화를 얻는 일들을 여기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도움을 찾아 앗수르로 갔습니다. 도움을 주는 나라가 없어 앗수르로 갔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홀로 떨어진 들나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이 되고 맙니다.
3.쇠하기 시작합니다.(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말씀에 순종하기 싫고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싫어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방 나라의 침략에서 그들을 지켜주시고, 재난과 질병에서 보호해주시고 값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스스로 고난과 고통의 길로 들어 간 것입니다.
본문 10절의 말씀은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다 사람의 지도자와 이방나라를 의지하다가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말씁입니다.
그러니깐 자신들이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들을 쇠하게 만드는 올무가 되어버리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합니다. 줄타기 외교를 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닌데, 문제는 애굽의 신을 수입해서 섬기고. 또 앗수르의 신도 수입해서 섬기는 짓을 행한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이 섬기는 신이니깐, 그 신을 잘 섬기면 자신들도 강해질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과 정체성으로 모두 던져 내버리거 그렇게 그러한 신을 섬기다가,오히려 안 섬겼던 때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스라엘은 단순히 앗수르 한 나라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힘이 되고 원조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어떤 나라에게도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도움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라들에게 조공을 바쳐 생존을 유지합니다.
조공을 바치다 보니, 그 부담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커다란 멍에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겠지만, 결국은 쇠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두고두고 짐이 되어, 결국은 어렵게 된다는 말입니다.
돈은 돈대로 주고, 아부는 아부대로 하고, 치욕은 치욕대로 당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목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으로 가면 많은 유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어리석고 정욕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더 크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사모하고 열애하는, 그들이 도움을 청하러 가는 그들을 사용해 그들을 해치고 멸망시킬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좋아하고 의지하고 연애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어렵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질적인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의지한 이방 나라는 그들에게 물질적인 부담을 안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도움을 얻기 위해 열국에 재물을 바쳤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나라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되면 도리어 의지한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들만 쇠하여지고 수치스럽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고 한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열방에 갖다 바친 재물 때문에 오히려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질 것이란 뜻입니다. 역시 하나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생각하게 합니다.
돈을 주고 이웃 나라의 도움을 구하던 북이스라엘, '막대기 산다고 돈은 돈대로 갖다 바쳤으나, 그 '막대기'는 하나님이 들고 사정없이 휘두르십니다.
이때 애굽과 앗수르에 바치느라 백성들을 쥐어짠 대가는 고스란히 나라경제를 직격합니다.
나라의 곳간은 물론, 백성들의 주머니까지 털어버렸고, 돈주고 사온 우상에 만취한 북이스라엘은 재생불능의 파탄 속으로 추락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그 어떤 것으로 값을 지불하고도 얻지 못하는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도움을 얻기를 원하지만 우리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람을 의지하다가 쇠하지 시작하면 하나님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이 되고 맙니다.
1.이스라엘은 이미 삼켜 젔기때문(8)
2.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기 때문(9)
3.쇠하기 시작합니다.(10)
들나귀처럼(호8:8-14)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의 운명 [호 8:11-14] 4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하는도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주를 삼키리라) (호 8,10-14)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호8: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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