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9월7일
가을걷이 시작해요
3주 만에 시골집에 갔다. 날씨가 덥기도 하고 아들이 휴가 중에 집에서 있어서 아들과 지낸다고 시골집에는 남편만 갔다. 집에 들어서니 텃밭에 심어놓은 대추나무며 홍매화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혈기왕성한 청년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뙤약볕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다. 고추며 가지도 기운이 철철 넘쳐났다. 감탄이 절로 터졌다. 바람과 비와 햇볕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오순도순 지내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호박넝쿨이 마당을 점령하고 있다. 여기저기 호박이 익어가고 애호박도 눈에 띄었다. 얼마 가서는 마당을 온통 차지하고 말 태세다.
냇가 건너편 밭에 뿌려놓은 열무가 파릇하게 싹이 났다. 배추는 군데군데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 텃밭에 뿌려놓은 배추 씨앗은 새들이 모두 쪼아 먹어서 다시 뿌렸는데 새들이 씨앗을 뿌려놓은 것을 아는 건지 밭을 헤집어 놓아서 웃음이 나왔다. 흙으로 목욕하는지 야트막하게 패인 텃밭 풍경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새들이 노는 모습이 그려져서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다시 씨앗을 뿌렸다. 다시 쪼아 먹으면 이웃에게 물어봐서 방법을 생각해야지 않을까?
붉은 고추를 따서 마당에 널어놓았다. 색깔이 얼마나 고운지 툇마루에 앉아서 꽃을 보듯 바라보았다. 뙤약볕에 붉은 고추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가지도 막바지다. 추석에 쓸 반듯한 가지를 몇 개 땄다. 모양이 구부러지고 장난꾸러기 같은 가지는 말려서 나물로 먹으면 된다. 저번 주에 눈여겨 봐준 호박이 보이지 않는다고 남편이 긴 작대기로 뒤적인다. 아뿔싸. 호박 꼭지가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는 호박을 들어 보였다. 반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정성을 다해서 키운 호박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잘게 잘라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겨울에 된장찌개 끓일 때 넣으면 좋다.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가 호박을 손질하는 우리 부부에게 ‘올해는 가물어서 호박 꼭지가 다 떨어져여!’하면서 밭에 내다 버리러 간다고 전동차를 타고 가셨다.
땅콩도 한 두렁 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땅콩 캘 때 되었다고 걱정하신다. 고구마 캐러 형제들이 다 오면 그때 캐려고 내버려두고 있다. 한 두렁이 캐보니 아직은 이른 감이 들었다. 나중에 형제들과 함께 캐기로 했다. 고구마도 한 번 캐 볼까? 남편이 신이 난 듯 나에게 응원해달라는 눈빛으로 보낸다. 조금만 캐보자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직도 땅속에서 이런 고운 빛깔의 고구마가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누가 키우는 걸까? 우리는 모종을 사다가 심어 놓은 것밖에는 없다. 10개 정도 캐고 흙을 덮었다. 고구마 줄기를 따서 한 보따리 들고 땅콩과 고구마를 차에 싣고 벼가 익어가는 논둑길을 달렸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무더위에 나뭇잎이 타버린 걸까? 올해 단풍은 얼마나 고울까? 조금은 이른 가을 정서에 빠져든다.
자동차 안이 엉망이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조심해도 난장판이다.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내고 발바닥 시트도 빨아서 말렸다. 마당에서 수돗물로 시원하게 자동차도 목욕을 시켰다. 자동차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조심해서 청결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비닐에 꼭꼭 싸고 쌌다. 시장바구니 두 개가 철철 넘쳐난다.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동그랗게 익어가는 호박처럼 충만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