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적 생활의 비결 (요한계시록 3장 14-22절)
예수님께서 인간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옛날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주를 믿기는 믿지마는 실상은 주님을 마음 문 밖에 서 계시게 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교회에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기를 부자로 여깁니다. 모든 것이 부유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 심령의 형편은 심히 가난하고 빈곤하고 헐벗고 눈이 어두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교회 출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중심에 영접하여, 주임을 모시고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옛 이스라엘 민족과 개인적 신앙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압박의 나라, 죄악의 땅 애굽을 떠나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부터는 애굽 사람들이 더 쫓아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메마른 광야에서 40년간이라는 오랜 세월을 헤매면서 가난안 복지로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물론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지도가 있은 것입니다.
목이 심히 갈(渴)할 때에 생수를 열어 먹여 주시기도 하였고 만나를 내려서 주림을 면하게도 하신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四十년간의 생활은 메마른 생활이요, 곤비(困憊)한 생활이요, 불평과 불만이 많은 생활이요, 여러 가지 범죄도 많았던 생활입니다. 심지어 우상을 섬긴 일도 있고 많은 사람이 간음죄를 범한 일도 있고 무리로 당을 지어 반역을 꾀한 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의 신앙생활은 이것과 비슷합니다. 말하자면 죄악의 세상을 떠납니다. 애굽을 떠나기는 떠났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이 세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복지에 온전히 들어가지는 못하고 메마르고 황막한 광양에서 헤매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평과 불만이 계속됩니다.
근심과 염려도 계속합니다. 여러 가지 죄도 계속하여 짓습니다.
애굽에서 떠나기는 떠났지마는 온전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는 들어가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것은 결코 메마른 황야에서 헤매기 위해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 목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는 들어가기가 매우 더디었습니다.
오늘 내 심령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심령인가?
참 승리적 생활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다.
「승리적 생활」이란 가나안 복지에 온전히 들어가서 세상을 이긴다고 하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 이 요한1서 5장에 기록한 바와 같이『대저 하나님께로 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여기에도 이기는 자는 나와 함께 보좌에 앉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 신앙생활은 세상을 이기는 생활입니다.
세상에 속한 모든 죄악을, 적은 죄에 이르기까지 이기는 생활인 것입니다. 시기, 원망, 혈기, 거짓말, 근심, 교만에 이르기까지 온갖 죄를 이기는 생활입니다.
따라서 승리적 생활이란 온전한 안식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내가 너와 친히 같이 가리라, 또한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참된 신앙생활에는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모든 원수를 이긴 후에는 안식의 생활이 계속된 것입니다.
내 신앙생활이 참되어서 승리적 생활에 들어갔다고 하면 마음속에 안식의 체험이 따를 것입니다.
따라서 승리적 생활이란 참된 평화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기록했습니다.『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갈릴리 바다가 매우 험악했습니다. 풍파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일어나셔서『잠잠하라 고요하라』말씀하실 때에 물결은 잔잔해지고 바다는 고요해진 것입니다.
옛 시인은 자기의 신앙 체험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혹은 이렇게도 기록하였습니다.
『그 노여움은 잠깐이요, 가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사도 바울은 연로할 때에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승리적 생활은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신앙은 모든 죄를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을 의미합니다. 평안을 의미합니다. 능력을 의미합니다.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 이와 같은 승리적 생활을 하는 중에 있습니까?
그 승리적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우리가 과연, 예수 님을 우리 중심에 영접하였습니까?
이와 같은 승리적 생활의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를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내 중심에 영접해서 주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5장에 주님 자신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저절로 과신을 못 맺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신앙 체험을 갈라디아 2장 20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또 빌립보 1장 20절에는『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사실 때에 우리는 이와 같은 승리 적 생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려 한다면 내가 꼭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마음 문을 스스로 열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열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억지로 인간의 마음 문을 여시는 예수님은 아닙니다.
이것은 내 스스로 문을 열고『주님이여 들어오소서』하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비어야 주님을 영접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있지 않아야 할 손님들이 많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문을 연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마음속에 있는 온갖 허영심, 오만한 마음, 정욕,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을 없애야 주님께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상보훈에 여덟 가지 목을 말씀하실 대에 제일 먼저『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때 우리는 마음을 열지마는, 마음의 방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아서 일부부만 주님을 영접하고 다른 부분은 다른 것이 그대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신앙생활, 승리 적 생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전체에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 깊은 자리에서 다스릴 때에만 참된 승리의 생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하는 간절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계시면 모든 유혹과 시험은 자연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내 자신은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이것들을 이기어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면 모든 염려도 자연히 소멸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서 대신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은 나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은 사랑하기 힘듭니다.
오직 주님께서 마음속에 계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실 때에는 모든 슬픔도 자연히 사라지고, 언제든지 만족한 은혜를 주시는 가운데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계실 때에 절망은 없습니다.
절망 가운데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암흑 도 없습니다. 암흑 가운데 광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망도 없는 것입니다. 사망 가운데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축복은 주님을 우리 가운데 영접하고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주님의 뜻대로 매일 매일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만 온전한 승리적 생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