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글과 인연. 186
[평화 포럼 2]
안보 전시관을 내려온 일행은 작은 어죽 집으로 들어선다. 오래된 단골집처럼 주인이 기쁘게
맞아준다. 주인의 모습이 주는 느낌은 시골 학당의 훈장 같은데 식당 안은 고풍스러운 옛 것들
로 가득 차있다.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이렇게 일
년에 한 두 번 이 식당에서 어죽으로 식사를 나눈다고 한다. 벌써 십년 넘는 세월 동안,
일행 중 일부는 헤어지고 남은 이십 여명으로 가득 찬 식당, 어죽을 차려주며 술은 무제한 서
비스라고 호탕하게 웃는 주인은 함께 어울려 잔을 나눈다. 그러고 보니 막걸리를 마음껏 제
공하는 식당들이 간혹 있다. 특히 안성의 몇 식당은 김치찌개를 주문하면 막걸리가 셀프인 곳
이 있는데, 그래야 두 세잔이면 고작이지만 그래도 정겹게 느껴지는 식당인 것은 맞다.
막걸리, 문득 정선의 옥수수 막걸리가 생각난다. 그리고 이동 막걸리, 아! 전라도의 찹쌀 고
택 막걸리는 가격이 많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막걸리이고, 연천의 율무 막걸리도,
그리고 이곳에서 마신 메밀 막걸리도 과히 마실 만한 막걸리라 할 수 있다, 나는 막걸리를 즐
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술로서 자랑할 만 한 술이다. 물론 공주의 밤 막걸리나 청송의 사
과 막걸리도 있지만,
즐기는 동안 바깥은 어두워지고, 우리 일행은 다시 길을 잡는다. 화천 읍을 지나 산내 면까지
의 길은 멀다고 느껴질 만큼 한 참이나 가야하는 곳이다. 그러나 숙소가 그곳에 있다하니 가
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왜 숙소를 그렇게 먼 곳에 정했는지, 조금은 불평한 것이 사실이다.
내일의 행사인 포럼이 바로 화천 읍에서 열리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일행의 동선을 짧게 잡아
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짧은 소견, 오늘 숙소는 이 행사의 회원이며 목사인 분의 자택을 제공하기
때문인데, 그 집을 보면서 그저 숙소를 제공받는다는 느낌보다는 우리 일행의 숙소로 사용하
기에 부족하지 않은 자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주 오래된 저택, 어쩌면 조선시대의 양반이 그 자리를 물러나 귀향하여 지냈을 것 같이 보이
는 한옥인데 크기가 그리 느껴질 만 큼 대 저택이다. 거실에서만도 20여 명이 누워도 충분할 정
도로 보이고 방도 내 눈에 보이는 숫자가 여섯은 되며 황토방도 있고, 여기에 덧붙인 저택 또한
그 정도의 크기로 보이니,
아침에 일어나 그 주변을 돌아보니 드문드문 가옥들이 보이고, 면 소재지에서도 꽤나 들어온
곳이며,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이 한옥은 초대한 목사께서 젊어서 이곳에 자리하고 이 집을
지은 것이라 하는데, 어쩌면 이리 고풍스럽게 지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지금은 그의 후배 목사
부부가 집을 관리하고 때때로 우리 같은 객을 맞이하기도 한다니, 휴양을 생각한다면 추천할 만
한 곳이라 느껴진다.
저녁 식사 후 좌담과 놀이가 시작된다. 술 한 잔에 얼큰해진 일행은 장구를 잡고 북을 치며 노
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긴다. 나는 마을에서 말이 나올까 염려했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일 뿐,
그들은 한껏 마음을 열고 즐기는데, 그 놀이 또한 나는 해 보지 않은 방식의 놀이였고, 하지만
어릴 적 어른들께서 그런 방식으로 즐기셨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게 그들은 새벽 1시 넘어 까
지 즐기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든다.
*내일 아침 일찍 대륙문인협회의 제주 문학기행 행사가 있어 출발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26일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